구매 보조금 세계 최고 수준, 3.47km마다 충전소 설치돼
기획 연재 제2 자동차 혁명의 최전선, 세계 ‘전기차 도시(EV City)’를 가다⑥ | 제주도 “제주에서는 바람으로 자동차가 달린다.”제주도는 미래 스마트 그리드 도시를 꿈꾼다.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청정에너지인 풍력으로 모든 전력을 생산하고 섬에 다니는 자동차는 이 전력을 이용한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30 탄소 없는 섬’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2030년까지 제주도 내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의 전기차 사업은 이제 단순한 보급에서 벗어나 관련 산업 육성을 통한 지역 내 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8월 12일 제주국제공항 옆 렌터카 하우스, 휴가철을 맞아 제주를 방문한 국내 관광객들이 차를 빌리기 위해 북적였다. 기자는 1박 2일 동안 제주도 전역을 돌아다니는 데 전기차를 렌트하기로 하고 스피드메이트에서 기아 쏘울 전기차를 빌렸다. 스피드메이트는 기존 레이 전기차 운영에 이어 지난 7월부터 쏘울 전기차 10대를 새로 투입했다.
렌터카를 배정받고 탑승하니 차량 안내원 외에 별도의 전기차 전담 안내원이 전기차 사용에 대해 설명해 줬다. 주행 가능 거리, 제주도 내 충전소 위치 찾는 법, 충전하는 법, 방전 등 위급 상황 대처 요령 등을 알려줬다. “요즘 전기차를 찾는 고객이 많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제주도를 3박 4일 돌아다니면 렌트비 외에 추가로 유류비가 10만 원 드는데 전기차는 무료 충전할 수 있어 경제성을 추구하는 고객들이 최근 많이 찾고 있다”고 답했다.
섬 횡단에 100km…전기차 운행에 최적 환경
실제 렌트 비용은 24시간 기준으로 3만9600원, 현재 정상가에서 55%를 할인해 줘 저렴하게 빌릴 수 있었고 직원의 설명처럼 일반 가솔린 엔진차를 빌리는 것에 비해 추가 연료비가 들지 않았다. 현재 제주도에서 전기차 충전은 무료다.
시동을 거니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 가능 거리는 풀 충전 상태에서 160km로 나타났다. 제주도를 횡단해도 채 100km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제주도 전역을 돌아다니는 데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제주도에는 고속도로가 없고 전반적으로 제한속도가 시속 50~70km이므로 전기차 운행에 아주 적합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일 제주도 전역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충전도가 60%로 떨어져 있었다. 아직은 약 90km 더 운행할 수 있다고 표시됐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어 충전하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에서 충전소 위치 버튼을 누르자 가장 가까운 ‘제주소방서 항만 119센터’를 안내했다. 현재 제주에는 공공 충전소가 203기 있고 민간 충전기까지 포함하면 532기의 충전 인프라(2014년 5월 기준)를 갖추고 있다. 공공 충전소 중 한 곳인 소방서에 진입하니 한켠에 1기의 충전기가 눈에 띄었다. 차에 비치돼 있던 충전 카드를 충전기에 인식하고 급속 충전 케이블을 차량에 연결했다. 때마침 전화가 걸려와 8분 정도 통화하고 나니 이미 급속 충전이 다 돼 있었다. 급속 충전은 풀 충전까지 최대 20분이 소요된다. 주유에 비해 충전은 다소 시간이 걸리므로 무엇을 하며 기다려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전화 한 통화하는 동안 간단히 충전을 마쳤다.
제주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전기차가 주는 또 다른 효용을 알 수 있었다. 제주의 풍광과 바람을 즐기면서 창을 열고 달릴 때 차량 소음으로 방해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차량 자체 소음이 없어 매우 평온한 상태에서 드라이브를 하며 제주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또한 청정 지역 제주에서 이산화탄소를 뿌리지 않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은 전기차 운전자만이 갖는 특별한 긍지다.
개인적으로 전기차를 잠깐씩 운전해 본 적은 있었지만 종일 몰고 다니거나 실제 충전해 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전기차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 즉 한정적인 주행거리나 충전소 찾기 힘든 점, 충전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 등의 우려를 날릴 수 있었다. 차량 반납까지 기자는 아무런 불편 없이 전기차를 이용했다. 적어도 국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전기차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제주도에서는 말이다.
전국 전기차 중 21% 제주도에 집결
제주도는 2012년 세계 환경 올림픽인 제주 세계자연보전총회(WCC)를 계기로 전기차 도입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태생적으로 전기차에 가장 적합한 입지와 각종 환경 조건을 갖추고 있다. 100km 정도의 운행 거리, 저속 도로 환경, 따뜻한 기후(배터리가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겨울철 운행 거리가 줄어든다), 청정 관광 도시 등 조건은 전기차 프로젝트에서 전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궁합이다. 제주도는 그동안 도청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보급 사업, 인프라 구축 등을 추진한 결과 현재 전기차 사업이 조금씩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5월을 기준으로 전국에서 판매된 전기차 1931대 중 21%(408대)가 제주도에서 운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 전국 최초로 전기차 민간 상용 보급 사업이 추진됐다. 기아 레이·쏘울, 르노삼성 SM3, 한국GM 스파크, BMW i3 등 전기차를 대상으로 구매하는 제주도민은 차량 가격과 상관없이 2300만 원의 구매 보조금, 충전기 설치비용 700만 원 등 합쳐 총 3000만 원을 지원받는다. 세계 그 어느 전기차 도시에 비해서도 파격적인 지원금 규모다. 구매 보조금에 힘입어 고가의 전기차를 1000만~2000만 원에 살 수 있는 것이다. 제주도민 이금숙(66) 씨는 “지금 액화석유가스(LPG) 차를 10년 동안 몰았는데 유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번에 아예 전기차로 바꿀 계획”이라며 “아무래도 지원금 혜택이 있을 때 구매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전기차 구매를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보급 지원 사업과 제주도민의 호응에 힘입어 제주도에는 지난해 160대, 올해 상반기 226대의 전기차가 보급했다. 올 하반기에 추가로 225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올해 1000대의 전기차가 보급되고 있는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전기차가 제주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제주도의 충전기는 총 532기로 전국 2119기 중 25%를 차지한다. 제주도에서는 3.47km마다 1개의 충전 시설을 갖춘 셈이다. 국내에서는 단위면적당 전국 최고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충전기는 올해 말까지 총 984기로 늘릴 계획이다.
제주도는 탄력 받은 전기차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홍두 제주도 에너지산업과 전기차육성담당 과장에 따르면 공공기관, 공기업 차는 전기차로 바꾸도록 정하고 렌터카 등 상용차도 단계별로 전기차를 도입할 것을 골자로 하는 조례를 오는 9월께 도입하기 위해 현재 법적 검토를 하고 있다. 심지어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전국 기관장 중 처음으로 전기차를 업무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원 지사는 쏘울 전기차 모델을 관용차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제주도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36만 대 수준이다. 특히 제주도의 가구당 차량 등록 대수는 1.5대로, 전국 17개 광역 시도 중 가장 많고 인구당 차량 등록 대수도 0.6대로 전국 1위다. 화물이나 승합차보다 승용차가 절대 다수(27만4000대)여서 전기차 도입 사업에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주도는 현재 도민을 중심으로 전기차 보급에 힘을 싣고 있으며 차후 택시·렌터카·화물차까지 전기차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택시의 전기차 도입을 위해 ‘전기차 택시 운영 시스템 개발’ 과제를 통해 전기차 택시의 연료비 절감 분석, 충전 시나리오 등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이 과제를 맡은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의 현승근 매니저는 “제주도에는 주행할 때 배터리 소모가 없이 자동 충전되는 일명 ‘배터리 소모량 제로 구간’이 많은 편”이라며 “연구 결과 중형 택시를 전기차로 바꾸면 연료비를 한 해 600만 원까지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전 과금 체계 마련 중…상용차에는 세제 혜택
제주도 측은 1단계 전기차 택시를 도입할 때 개인택시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법인택시는 고가의 전기차를 다량 구입하는 데 금전적 부담이 있지만 개인택시는 상대적으로 차량 구매가 용이하고 연료비 절감 혜택이 바로 개인 운영자의 수익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제주도청 김 과장은 “1단계 개인택시 전기차 도입 사업 후 전기 택시 모델이 적립되면 단계적으로 법인택시 도입을 권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기 버스도 제주도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제주도에는 장거리 노선이 없다. 현재 천연가스(CNG) 버스도 없고 전량 경유 차량이다. 그래서 전기차로 전환할 때 버스 연료비를 기존의 5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즉 한 해 1억~2억 원 수준의 버스 연료비를 2000만~4000만 원 선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버스 사업자에게 큰 메리트로 작용한다. 현재 제주도 내 교통항공과와 에너지산업과가 함께 전기 버스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한편 전기차 공유 시스템도 현재 검토되고 있다. 해외 대도시에서의 전기차 셰어링과 차별적으로 한국형·제주형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대도시에서 불특정 다수가 전기차를 공유하는 것과 달리 집단 주거지 아파트가 전기차 공유의 중심이 된다는 구상이다. 아파트에 공유할 수 있는 전기차와 충전 주차장을 설치할 때 전기차 1대로 자가용 10대를 대체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의 상용차를 전기차로 바꿀 때 세제 혜택을 줄 계획이다. 현재 제주도에서 전기차 충전은 무료이지만 과금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월 기본요금 1000원에 심야에 가득 충전할 때 약 1800원 정도(135km 주행 가능)로 예상된다. 반면 시내 공공 충전소에서 급속 충전할 때는 1만 원 정도로 과금해 차별적으로 적용할 구상이다. 이때 영업용 전기차는 충전 비용에서 세금을 환불해 주는 식으로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전기차 테스트 베드로 일컬어지는 제주도의 전기차 프로젝트 로드맵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초기 보급 단계는 5000대 이상 1만 대까지 전기차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제주도에 보급된 전기차는 450대인데 내년부터는 한 해에 1000대 이상 보급이 가능할 것으로 제주도는 보고 있다.
그리고 수년 후 제주도 내 전기차 1만 대라는 규모가 달성되면 관련 인프라 구축이 완료되고 전후방 산업이 생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과장은 “전기차 1만 대가 달성되면 마치 주유소에서 세차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과 같이 카페·휴게소·주유소 등에 충전 서비스가 보급될 것”이라며 “충전소 관리, 전기차 개조, 안전장치, 전기차용 내비게이션 개발 등 다양한 전기차 관련 틈새 사업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국내에서 제주도가 전기차 프로젝트에서 한 발짝 앞서 나가고 있는 덕분에 국내 전기차 관련 비즈니스들이 제주도행을 결정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는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 등 충전기 업체 8개사가 모여 있고 국내 전기차 제조사 파워플라자의 조립 공장의 제주도 내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제주대에서는 3년 과제로 전기차 부품 및 내비게이션 연구·개발이 90억 원 단위로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제주도에 전기차 관련 산업군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1만 대 규모 돼야 다양한 비즈니스 가능
지난봄 세계 최초로 제주에서 ‘전기차 엑스포’도 개최했다. 국내 업체들은 물론 외국계 기업인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 독일의 BMW, 프랑스의 르노와 MIA, 일본의 닛산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참여했다. 그동안 전기차의 국내시장 진출 계획을 밝히지 않았던 닛산은 지난 엑스포에서 세계 판매 1위 전기차 모델 리프를 출품했고 BMW는 i3를 한국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한국 시장에 미온적이었던 해외 글로벌 전기차 플레이어들이 한국 시장 진출 확대를 선언했고 국내 전기차 관련 중소기업이 모여 기술력을 선보이는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도를 세계의 모든 전기자동차, 차세대 자동차가 몰려드는 테스트 베드로 만들겠다”며 제주도지사 출마 선언 후 첫 공식 행보를 전기차엑스포 참석으로 할 정도로 전기차 보급 사업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그는 “전기차 운용에 관한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는 등 제주에 글로벌 전기차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주도의 전기차 사업은 스마트 그리드 도시를 향한 환경적인 측면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제주의 미래 먹을거리 승부수를 여기에 걸겠다는 자세다. 김 과장은 “한국에서 모든 제조업 인프라가 구축됐고 육지에 모두 다 있는 가운데 제주가 경쟁력을 갖춘 부분은 관광과 1차산업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헤게모니”라며 “제주에서 전기차와 관련해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기 위한 정책 방향이 잘 잡혔고 현재 전기차 사업에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이용은 아직 불편한 게 많다’는 대중의 인식을 바꾸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해외 주요 전기차 도시에 비해 아직 이용자의 인식 변화가 더딘 편으로 전기차에 대한 선입견을 서둘러 전환하는 게 전기차 대중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돋보기 │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 탐방 충전기 70% 관리…운영 현황 한눈에
현재 제주도의 전기차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 기업을 찾았다.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에 들어선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는 전기차 충전기 제조 및 유지·보수 등 전기차 인프라 운영을 담당하는 회사다. 2012년 포스코 ICT를 주축으로 대경엔지니어링·중앙제어주식회사·피엠그로우·메가베스 등 5개사가 모여 출범한 전기차 컨소시엄이다.
이 회사에는 전기차인프라운영센터가 있어 제주도 내 충전소의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제주도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532기는 각각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한국환경공단·KEPCO·GS칼텍스·SK이노베이션에서 설치했는데 이 중 약 70%를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가 관리하고 있다.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는 올해 EV콜센터를 출범하고 멤버십 서비스를 시작했다. 콜센터를 통해 충전기 사용 방법, 차종별 충전 타입, 충전소 위치 등을 안내하고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장 출동 서비스를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충전 과금 시스템 등을 개발하고 있고 종합EV인프라운영센터를 통해 모이는 데이터를 모아 연구하고 있다. 일례로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는 최근 전기 택시 도입을 위한 타당성 검토 과제를 수행했다. 현승근 제주전기자동차서비스 매니저는 “제주도의 택시들의 운행 노선 및 패턴 데이터를 분석해 전기차 도입 시 배터리 소모량이 제로인 구간의 지도를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전기 택시 도입 시 충전 시나리오를 여러 방법으로 뽑아 배터리 소모량, 전기요금, 택시 요금 수입 등을 종합해 얼마나 비용을 줄일 수 있는지 등을 연구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기차 관련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다 효율적인 배터리 충전기, 배터리 교환 시스템 등이다. 제주도 내에는 제주전기차서비스와 같은 전기차 관련 서비스 회사가 자생적으로 하나 둘씩 늘면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현재 개발되고 있다.
제주=글·사진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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