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비중 과장돼 경제정책 혼선…미 상무부서 ‘총생산(GO)’ 도입

각종 소득 지표는 특정국에 속한 모든 경제 주체가 일정 기간 새로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금액으로 평가해 합산한 것으로 경제 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대표적인 거시경제 지표다. 포괄 범위 등에 따라 국민총생산(GNP)·국내총생산(GDP)·국민순소득(NNI)·국민처분가능소득(NDI)·국민소득(NI)·개인가처분소득(PDI)으로 구분된다.

다양한 국민소득 개념 가운데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지표로 GDP가 널리 사용돼 왔다. GDP는 소유에 관계없이 국내에 있는 노동·자본 등 모든 생산요소를 결합해 만들어 낸 최종 생산물의 합인 생산 활동 지표를 말한다.


대공황 때 경제 타격 가늠 위해 GDP 통계 개발
GDP가 처음부터 특정국의 경제를 판단하는 ‘절대 지표’는 아니었다. 1940년대 들어서야 GDP가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정국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측정하려는 시도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태동으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1800년대부터 나타났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이 논의가 구체화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로, 경제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점검하고 부양책을 쓰기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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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필요성에 따라 1937년 미국에서 GDP의 원조 격인 국민소득 통계가 처음 나왔지만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는 처음으로 개인과 기업, 정부의 생산 활동을 더해 특정국의 경제 규모를 판단하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 이후 GDP가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국내 생산 규모를 토대로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했고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1990년대 들어 GDP가 GNP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은 글로벌화 진전과 다국적기업 때문으로, 국제 자본 이동과 기술이전이 활발해지다 보니 ‘우리 국민이 얼마나 벌었나’를 보는 것보다 ‘우리 땅에서 얼마나 물건을 만들었나’를 보는 게 더 유용했기 때문이다.

특정국의 경제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핵심 지표로 자리 잡은 후에도 GDP에 대한 비판은 계속해 제기돼 왔다. 이른바 ‘삶의 질’ 논란으로, “국민의 행복은 GDP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차원에서 새로운 지표가 많이 개발됐다. 대표적으로 1972년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부탄 국왕은 ‘국민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이란 새로운 개념을 들고나와 “GDP가 절대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해 반향이 컸었다.

그 후 이 논란이 지속돼 오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부터 국민행복 차원에서 GDP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조셉 스티글리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등 석학들을 초빙해 결성한 ‘스티글리츠위원회’가 대표적이다. “GDP가 올라가도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의 통계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삶의 질을 측정하는 새 지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유럽연합(EU)의 일부 회원국을 중심으로 불법적인 경제활동이나 지하경제를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올 들어 영국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성매매와 마약 거래를 GDP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분야에 가장 비중 높은 이탈리아도 영국보다 한 달 앞서 “약물·성매매·밀수 등을 GDP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GO는 중간재 생산까지 포함…기업 활동, 투자 부각
가장 주목되는 것은 올해 4월부터 미국 상무부가 처음으로 총생산(GO:Gross Output)을 분기별로 발표하기 시작한 점이다. GDP는 최종 생산재만 계산하다 보니 중간재가 오가는 기업 간 거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소비의 비중이 너무 높아 경제정책에 혼선을 준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비해 중간재 생산까지 모두 합산하는 GO는 기업가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비보다 저축과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같은 경제활동을 가늠하는 잣대인 GDP와 GO의 차이를 산에서 채취한 생나무로 가구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알아보자. 가구 제품을 만들려면 널빤지가 필요하고 널빤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통나무, 통나무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나무, 생나무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산 속에 나무가 있어야 한다. 이때 생나무·통나무·널빤지는 최종적으로 가구 제품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중간재인 셈인데, GDP는 최종 소비재인 가구 제품의 가격만 따지지만 GO를 계산할 땐 생나무·통나무·널빤지와 가구 제품 가격을 모두 더해 산출한다.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일한 생산 과정인데도 GDP로는 350만 원인데 비해 GO로는 950만 원으로, 중간 단계가 많으면 많을수록 GDP와 GO와의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GO는 ‘만드는 경제(make economy)’, 즉 경제의 공급 측면을 잘 보여주는 잣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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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는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거래(B2C)뿐만 아니라 기업 간 거래(B2B)를 반영할 수 있고 각 중간재 생산 단계에서 물가와 고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따져볼 수 있다. 실제로 GO를 산출해 보면 전체 경제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GDP보다 훨씬 적게 나온다. 지난해 미국 GDP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한 비중은 68%인데, GO 기준으로는 그 비중이 40% 밑으로 떨어지고 기업의 투자 비중은 5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방법을 한국 경제에 적용하면 미국과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의 GO는 3598조765억 원으로 GDP로 파악된 1377조4567원에 비해 161.2% 더 많게 추정된다. 연도별로 보면 해가 갈수록 GO로 추정된 국민소득이 GDP로 파악된 국민소득보다 더 높아지는 점이 미국과 다른 점이다.

미국과 한국 경제에서 GO와 GDP로 파악된 국민소득 차이는 경기 침체 시 부양 대책을 달리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미국 경제는 경기 침체 시 민간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주는 방향으로 초점을 둬야 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오바마 정부의 위기 극복과 경기 부양책은 이 점에 우선순위를 둬 추진했다. 하지만 한국의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기업의 설비투자를 늘려 줘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2기 경제팀이 기업을 중심으로 한 종전의 부양책과 달리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주는 방향의 부양책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