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이끈 마르치오네 회장…네덜란드로 본사 옮기며 글로벌 공략 승부수

Chrysler Group LLC Chairman and CEO Sergio Marchionne speaks with the media after the dedication a of transmission manufacturing facility in Tipton, Ind., Tuesday, May 13, 2014. (AP Photo/AJ Mast)
Chrysler Group LLC Chairman and CEO Sergio Marchionne speaks with the media after the dedication a of transmission manufacturing facility in Tipton, Ind., Tuesday, May 13, 2014. (AP Photo/AJ Mast)
‘세계 3위 자동차 제조사 탄생.’ 1998년 5월,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 충격을 안긴 사건이 일어났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그룹이 크라이슬러와 합병을 선언한 것이다. 360억 달러 규모의 인수를 주도한 위르겐 슈렘프 회장은 다임러그룹 회장에서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으로 직함을 바꿔 달았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닷지와 지프부터 메르세데스-벤츠까지 모든 차종을 아우르는 글로벌 자동차 제국의 완성판을 이룬 것이다. 자동차 업계는 이 합병을 가리켜 주저 없이 ‘세기의 결혼’, ‘천상의 합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합병 발표로부터 10년을 채우지 못한 채 ‘세기의 결혼’은 ‘최악의 선택’으로 바뀌었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는 끝내 융화되지 못했고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못한 합병은 서로의 자본을 갉아먹었다. 두 회사가 함께할 방법은 더 이상 없었다. 다임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은 크라이슬러는 다른 유럽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와 한 가족이 됐다. 크라이슬러는 유럽과 미국을 수시로 오간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회장의 쉴 틈 없는 현장 지휘에 힘입어 단기간에 경영이 정상화됐다. 마침내 새로운 가족이 탄생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가 그 주인공이다.


기업 사냥꾼의 먹잇감으로 전락
1978년 포드에서 크라이슬러로 자리를 옮긴 리 아이아코카는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1980년대 전성기에 이어 크라이슬러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990년대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생산능력은 수요를 초과했다. 여기에 도요타·혼다 등 일본 제조사들이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현지에 공장을 세워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차를 만들어 파는 도요타와 혼다에 미국 업체들은 이렇다 할 대항을 하지 못한 채 안방을 내줬다. 특히 크라이슬러는 1989년 도요타에 판매 3위 자리를 내줬고 혼다의 거센 추격을 받는 처지가 됐다.

크라이슬러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다른 경쟁 업체에 비해 경쟁력이 취약했다. 유럽과 중국 등에 글로벌 판매망을 갖고 있던 두 회사와 달리 크라이슬러는 미국 내 판매 의존도가 95%에 달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프랑스 르노로부터 인수한 AMC도 그룹의 재정 상황을 악화시켰다. AMC는 지프 브랜드를 갖고 있었지만 신차 개발 여력이 바닥난 크라이슬러 밑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크라이슬러는 유럽 시장 진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 때 르노와 공동 생산을 추진하던 크라이슬러는 이내 피아트로 눈길을 돌렸다. 피아트는 미국 시장이 필요했고 크라이슬러는 유럽과 피아트의 소형차 기술을 원했다. 두 회사의 깊은 인연은 1990년부터 시작된 셈이다.

다양한 회사와 합작·협업을 거듭하던 크라이슬러는 아이아코카가 회사를 떠난 후 기업 사냥꾼 커크 커코리언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1995년 4월 12일 주식 10%(3600만 주)를 보유한 커코리언의 투자회사 트래신더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커코리언은 90%의 주식을 전일 주가 수준보다 40% 비싼 주당 55달러에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총 매수액이 228억 달러에 달하는 당시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였다. 흥미로운 건 500만 달러 규모의 주식을 들고 있던 아이아코카 역시 커코리언의 매수에 동참한 것이다.

로버트 이튼 당시 크라이슬러 회장은 공식적으로 매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뒤이어 노동조합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커코리언이 단순한 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또 사측은 아이아코카를 기업 정보 누설 혐의로 제소하기도 했다. 커코리언과 크라이슬러의 공방전은 결국 크라이슬러가 커코리언에게 이사 자리를 내주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크라이슬러 경영진은 그와 싸우느라 경영에 전념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슈렘프 회장이 이끄는 다임러그룹이 크라이슬러에 내민 손길은 따뜻했다. 양산 브랜드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을 원한 다임러그룹, 앞선 기술과 투자금, 유럽 시장을 갈망한 크라이슬러는 서로를 채워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크라이슬러를 집 안에 들인 다임러그룹은 좀처럼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벤츠와의 협업을 기대한 크라이슬러에는 뜻밖의 홀대였다. 벤츠가 브랜드 위상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크라이슬러와의 교류를 피했다. 이 때문에 크라이슬러는 합병 후에도 여전히 미국 시장 내 경쟁 심화에 따른 판매 부진 등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벤츠와 크라이슬러 간의 부품 공용화를 거친 첫 모델은 합병 후 5년이 지난 2003년에야 등장했다. 독일 본사는 2000년 11월 벤츠 임원 중 한 사람을 크라이슬러의 새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했다. 바로 디터 제체 사장, 지금의 다임러그룹의 회장이다. 벤츠 출신이 경영을 맡으면서 자연스레 두 회사 간 교류에 물꼬가 터졌다. 첫 합작품은 크라이슬러의 스포츠카 ‘크로스파이어’였다. 제체 사장은 이 차량의 디자인에 만족했고 양산을 추진했지만 문제는 자금이었다. 그런데 2001년 미국 북미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모터쇼)에 출품된 크로스파이어를 본 벤츠의 한 경영진이 “차체 길이를 줄이면 벤츠 SLK와 플랫폼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었다. 슈렘프 회장은 두 회사 간의 부품 공용화 등 협업을 전담하는 전략실행기구(EAC)를 발족했다.


벤츠의 브랜드 가치 손상을 우려한 다임러
부품 공용화, 플랫폼 통합은 오늘날 신차 개발 시 경쟁력 향상, 원가절감을 위한 필수 요소다. 당시 다임러그룹의 경영진도 이 장점들을 모르지 않았다. 문제는 다임러그룹의 경영진이 벤츠의 브랜드 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를 씻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회사 간의 뒤늦은 협업도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끝내 크라이슬러는 벤츠의 후광효과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다임러그룹은 크라이슬러 후에 미쓰비시자동차 인수를 추진했고 현대차와의 제휴도 꾀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슈렘프 회장의 공격적인 몸집 불리기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5년 말 사임했다. 임기를 2년 남겨 둔 상황에서 비참한 퇴장이었다. 슈렘프 회장의 자리는 디터 제체가 이어 받았다. 지휘봉을 잡은 그는 그동안 맺었던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 냈다.

2007년 5월 다임러는 크라이슬러의 지분 80.1%를 사모 펀드인 서버러스캐피털매니지먼트에 매각했다.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가 1998년 합병한 지 9년 만이다. 매각 가격은 74억 달러였다. 다임러그룹이 크라이슬러 인수에 쏟아부은 360억 달러의 5분에 1에 지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다임러는 잔여 지분 19.9%도 2009년 서버러스에 모두 넘겼다.

2007년 홀로 내던져진 크라이슬러의 운명은 위태로웠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문을 닫을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나돌았다. 서버러스가 연방 정부에 “회사를 1달러에 팔겠다”고 제안할 정도였다. 결국 2009년 4월 30일 크라이슬러는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오바마 정부는 크라이슬러 회생 방안을 고민했다. 결론은 이탈리아의 피아트그룹과 합병하는 것이었다.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에서 일하는 4만7000명의 근로자들이 한 배를 타는 순간이었다. 합병은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인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 회장이 진두지휘했다.
<YONHAP PHOTO-0236> Roger Germonprez holds an old Pentastar flag during a ceremony for employees outside Chrysler corporate headquarters in Auburn Hills, Mich., Monday, Aug. 6, 2007.  The New Chrysler marked the "First Day" of a new era today by bringing back its Pentastar corporate logo. The first day events follow the Aug. 3 contract signing under which New York-based Cerberus Capital Management assumed majority ownership of the company. (AP Photo/Carlos Osorio)/2007-08-07 05:57:04/
<저작권자 ⓒ 1980-200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뉴욕의 세르베러스 캐피털 매니저먼트가 크라이슬러 주식 절대분을 (다임러 크라이슬러사로부터)되사들이는  계약을 지난 3일 체결함으로써 (온전한 미국3대자동차메이커) 크라이슬러자동차  새 출발을 기하는  3일 미시건주 오번힐즈 크라이슬러자동차 본사 바깥  크라이슬러 새출발 기념식에서 옛날 크라이슬러 펜타스타기를 들고서있는 로저 저몬프레즈(AP=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oger Germonprez holds an old Pentastar flag during a ceremony for employees outside Chrysler corporate headquarters in Auburn Hills, Mich., Monday, Aug. 6, 2007. The New Chrysler marked the "First Day" of a new era today by bringing back its Pentastar corporate logo. The first day events follow the Aug. 3 contract signing under which New York-based Cerberus Capital Management assumed majority ownership of the company. (AP Photo/Carlos Osorio)/2007-08-07 05:57:04/ <저작권자 ⓒ 1980-200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뉴욕의 세르베러스 캐피털 매니저먼트가 크라이슬러 주식 절대분을 (다임러 크라이슬러사로부터)되사들이는 계약을 지난 3일 체결함으로써 (온전한 미국3대자동차메이커) 크라이슬러자동차 새 출발을 기하는 3일 미시건주 오번힐즈 크라이슬러자동차 본사 바깥 크라이슬러 새출발 기념식에서 옛날 크라이슬러 펜타스타기를 들고서있는 로저 저몬프레즈(AP=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크라이슬러를 되살리겠습니다. 약속드리죠.” 2009년 6월 미국 디트로이트 인근의 크라이슬러 본사를 방문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그룹 CEO가 직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정장이 아닌 스웨터와 면바지 차림,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는 골초의 말을 신뢰하는 직원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2년 뒤 직원들은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마르치오네는 2년 만에 미국과 캐나다 정부로부터 받은 융자 76억 달러를 예정보다 일찍 상환했다.

말로는 합쳤지만 따로 운영됐던 다임러크라이슬러와 달리 피아트크라이슬러는 한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 마르치오네는 크라이슬러의 경영권을 쥔 지 6개월 만에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이탈리아 특유의 디자인과 장인 정신을 담아 제품 경쟁력과 수익성을 높인 뒤 이른 시일 내에 단일 그룹을 탄생시키는 게 목표였다.


투박함 벗어던지고 이탈리아 감성으로 재탄생
그는 크라이슬러 경영진을 대폭 축소했고 전임 회장들이 사용하던 크고 화려한 사무실도 없앴다. 본사 기술센터 4층에 엔지니어링·디자인·생산담당 중역들과 비슷한 사무실을 마련했다. 일밖에 모르는 워커홀릭답게 크라이슬러의 조직 구조를 수평화한 뒤 25명의 임원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다. 2009년 132만 대까지 곤두박질쳤던 크라이슬러의 판매량은 2010년 152만 대, 2011년 186만 대, 2012년 219만 대까지 급증했다. 작년엔 240만 대를 기록했다. 피아트와 합병하면서 지속적인 회복세를 보였다.

마르치오네는 2011년 9월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로부터 2년 4개월 뒤인 2014년 1월 1일 피아트는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 산하 퇴직자건강보험기금(VEBA)이 보유 중인 크라이슬러의 잔여 지분 41.46%를 36억5000만 달러(3조8150억 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피아트는 인수 조건으로 향후 4년 동안 7억 달러의 현금을 VEBA에 연금신탁으로 맡기기로 했다.

피아트가 크라이슬러를 완전히 인수함으로써 이탈리아 직원 8만 명을 포함해 전체 직원 19만7000명을 거느리게 된 거대 자동차 기업이 완성됐다. 이에 따라 피아트그룹 산하의 피아트, 알파 로메오, 란치아, 아바스, 피아트 트럭, 마세라티, 페라리와 크라이슬러그룹의 크라이슬러와 지프, 닷지, 램, SRT, 모파 등 연간 430만 대 이상을 판매하는 세계 7위의 자동차 업체가 된 것이다. 두 회사 간의 장점을 결합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도 빠르게 결과물을 내놓았다. 크라이슬러 300C와 지프 그랜드 체로키 등은 이탈리아의 세련된 감각으로 빚은 실내외 디자인과 꼼꼼한 끝마무리로 미국 차 특유의 투박함을 벗어던졌다. 시장은 판매 증가로 화답했다. 미국 시장 회복기와 맞물린 크라이슬러의 고성장은 이탈리아 경기 침체로 자동차 판매량이 위축된 피아트그룹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지분 인수를 통해 합병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간판도 FCA로 새로 달았다. 1899년 처음 둥지를 튼 후 115년간 유지해 오던 본사의 자리도 옮겼다. FCA의 새 등기상 본사를 네덜란드로 정한 것이다. 지역 중심의 브랜드를 넘어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그룹의 의지를 보인 것이다.

마르치오네 회장은 2014년부터 5년간 신차 연구·개발(R&D)과 자본 투자에 480억 유로(68조3000억 원)를 투자하는 내용의 5개년 계획도 발표했다. 이를 통해 5년 뒤 글로벌 자동차 판매 대수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60% 증가한 700만 대, 연매출은 52% 늘어난 1320억 유로로 잡았다. 순이익 목표치는 47억~55억 유로로 지난해 19억5000만 유로보다 두 배 이상 높였다. 일각에선 이 목표가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르치오네 회장은 자신만만하다. 이제 다시 출발점에 선 FCA의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최진석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