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CJ·오리온·매일유업 등 구조조정 나서…적자 쌓이고 출점 규제도 발목

[비즈니스 포커스] 외식 사업서 줄줄이 손 터는 대기업들
외식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대기업들이 줄줄이 간판을 내리고 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 추진된 각 기업의 외식 사업은 2012년 정점을 찍었지만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몇 개 브랜드들 때문에 적자에 허덕이게 됐다. 결국 기업들은 브랜드를 아예 철수하거나 점포 수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외식업을 미래 먹을거리로 점치며 사업을 이끌어 왔던 신세계푸드·매일유업·오리온 등 대기업 2·3세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여기에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해 5월 발표한 음식업점의 출점 제한 규제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브랜드별로 희비 엇갈려
신세계푸드는 ‘보노보노’, ‘자니로켓’ 등 신세계푸드의 대표 외식 브랜드 매장을 철수했다. 이 두 개 브랜드는 모두 해산물 전문점으로, 해산물 시장 수익이 좋지 않은 데다 일본 방사능 수산물 우려 등으로 더욱 실적이 악화된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세계푸드가 직접 운영하는 해산물 패밀리 레스토랑 ‘보노보노’는 2008년 4월 문을 열고 5년여 동안 운영해 오던 서울 홍대점을 작년 10월 31일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이어 지난 3월 서울 성수점, 4월 서초점까지 문을 닫았다. ‘보노보노’는 지난 3월 평일 점심 가격을 10% 정도 낮추며 활성화를 꾀했지만 가격 조정 한 달 만에 서초점까지 영업을 종료했다. 현재 ‘보노보노’는 삼성·마포점 단 2곳의 매장이 남았다.

신세계푸드의 또 다른 외식 브랜드인 ‘자니로켓’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니로켓’ 강남역점이 지난 2월 27일부로 영업을 종료했다. ‘자니로켓’은 미국 오리지널 햄버거 브랜드로, 2011년 신세계푸드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국내에 들어왔다. 특히 강남역점은 대표 매장이었다. 국내 첫 스트리트 매장이면서 2012년에는 우수 매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강남역점의 운영 종료는 여타 매장의 운영 종료와는 의미가 다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선이다.

신세계푸드 외식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익성도 악화됐다. 신세계푸드의 매출은 2012년 7211억 원에서 2013년 7213억 원으로 소폭 늘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43억 원에서 226억 원으로 30% 이상 줄어들었다.

CJ푸드빌 역시 지난해 운영하던 해산물 레스토랑 사업을 모두 접었다. CJ푸드빌은 지난해 말 해산물 패밀리 레스토랑인 ‘씨푸드오션’ 매장을 모두 폐점한데 이어 지난 3월에는 해산물 뷔페 레스토랑인 ‘피셔스마켓’도 모두 문을 닫았다. 2006년 론칭한 ‘씨푸드오션’은 한때 점포 수를 15개까지 늘렸지만 지난해 12월 31일을 끝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당시 녹번점·대림점·구월점·천안점 등 4곳만이 남은 상태였다. ‘피셔스마켓’ 매장 2곳은 차별화를 강화해 유지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카레 전문점 ‘로코커리’도 지난해 말 CJ가로수타운점, 지난 2월 서울 건대점 문을 닫으며 모든 로드 숍 매장을 철수했다.

잇달아 점포들이 문을 닫는 이유는 외식 부문의 누적된 적자 때문이다. 실제로 CJ그룹의 외식 사업을 총괄하는 계열사 CJ푸드빌은 2011년부터 적자 상태다. 2012년 37억 원의 영업 손실을 낸 데 이어 지난해에는 347억 원(해외 200억 원 포함)의 영업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1년 만에 약 9배 커진 셈이다.
[비즈니스 포커스] 외식 사업서 줄줄이 손 터는 대기업들
외식 업계 한 관계자는 “맥쿼리자산운용펀드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의 정문목 현 CJ푸드빌 대표가 수익이 나지 않는 브랜드를 정리하면서 빠르게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J푸드빌 관계자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외식업 출점 제한 규제 이후 로드 숍 확대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회사 차원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성장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일부 브랜드를 정리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계절밥상’이나 ‘비비고’ 등 선전하는 브랜드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야심차게 외식 사업에 진출한 매일유업도 잇달아 브랜드를 정리하고 있다. 미식가로 소문난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 주도하에 ‘엠즈다이닝’이란 이름으로 외식 사업에 나섰다. 당시 프리미엄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 ‘안즈’, 스시 전문점 ‘하카타 타츠미’, 인도 요리 전문점 ‘달’ 등 브랜드를 늘려가며 꾸준히 사업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최근 폐점 브랜드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이촌동과 청담동 ‘하카타 타츠미’가 문을 닫은 데 이어 일식 전문점 ‘만텐보시’도 문을 닫으며 사업을 철수했다. 올해 시작한 한·일식 요리 브랜드인 ‘정’ 역시 론칭 4개월 만에 접었다. 해외 브랜드인 ‘달’과 ‘안즈’는 해당 업체가 직접 운영하는 형태로 영업권을 양도했다.

현재 남아 있는 매일유업의 외식 브랜드는 프리미엄 커피 전문점 ‘폴 바셋’, 수제 버거 ‘골든버거 리퍼블릭’, 중식 ‘크리스탈제이드’, 나폴리 요리 전문점 ‘더 키친 살바토레’ 등 4개 브랜드가 전부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알짜 외식 사업체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며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외식 사업을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일부 매장을 정리한 것이다. 향후에도 ‘더 키친 살바토레’, ‘폴 바셋’ 등 선전하는 브랜드를 지속 육성하고 대중적인 아이템 선정에 집중하며 운영 효율화에 용이한 모델을 채택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급화에 치중하며 한계 드러내
오리온그룹의 외식사업부도 매장이 줄었다. 패밀리 레스토랑 ‘마켓오’ 여의도점은 지난 3월 14일 문을 닫았다. ‘직장인들의 랜드마크가 되겠다’며 개점한 지 2년 만이다. ‘마켓오’ 매장은 도곡점과 압구정점 2곳만 남게 됐다. 오리온은 한때 ‘외식 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통했다. 2000년대 초 패밀리 레스토랑 붐이 일던 당시 롸이즈온 베니건스를 국내 첫 오픈했다. 2010년 문구 회사인 바른손에 매각됐지만 당시 베니건스 브랜드 위상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한때 1000억 원 이상의 연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베니건스 성공에 힘입어 2004년 패밀리 레스토랑 ‘마켓오’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면서 국내 최초로 유기농 퓨전 레스토랑 개념을 선보였다. 하지만 점차 수익성이 악화되자 ‘유기농’ 식재료만 사용한다는 콘셉트를 변경하면서 마켓오 비즈니스룸, 하우스웨딩 등 부대 서비스로 눈을 돌렸다. 결국 마켓오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게 실적 부진의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들 기업의 외식 사업이 표류하기 시작한 것은 급변하는 유행 패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채 고급화에만 치중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외식업의 방향은 음식의 유행 패턴에 따라 달라진다. 1990년대 말에는 퓨전 음식이 유행하더니 2000년대 이후부터는 각국의 정통 요리나 웰빙 요리가 대세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고급화’ 전략에 치중한 대기업의 외식 브랜드는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브랜드 마케팅 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데 대기업들의 외식 사업은 주로 강남권에서 고급화만 고집한 점이 폐점으로 이어지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은’ 고비용 구조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모아진다. 대부분이 기업 이미지를 고려해 고급 인테리어를 고집하는 데다 임대료가 비싼 지역 위주로 출점했다. 또한 직영점으로 운영하다 보니 초기 투입 자금이 많고 매장 확대도 빨리 이뤄지지 않아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오너들의 전문성 부족도 실패 원인으로 꼽혔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외식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단시간에 투자 대비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시장이 많이 바뀌었다. 급변하는 변수에 대응할 만한 철저한 품질과 마케팅 전략이 전제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반위의 출점 규제로 대기업 외식 업체들의 성장이 멈춘 것도 사실이다. 동반위가 지난해 5월 발표한 대기업 음식 계열사의 출점 제한 권고안에 따르면 CJ푸드빌 등 대기업들은 총면적 2만㎡ 이상인 복합 다중 시설과 역세권 반경 100m 이내에만 신규 출점할 수 있다. 대기업의 확장 자제를 권고하는 규제로 각 업체의 성장 전략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박인구 한국식품산업협회 회장은 “외식산업이 새로운 창조 경제의 산업으로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이 되고 한국 고유의 식문화를 해외에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외식 업체들이 국내에서 중소기업 적합 업종 등 규제 논란 속에서 위축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