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에 사업 철수까지…개인 소유 기업들 ‘헉헉’
에너지 전문 기업인 대성가(家)의 삼형제가 시련의 계절을 겪고 있다. 고 김수근 명예회장이 2001년 타계하면서 삼형제에게 골고루 분리된 대성의 최근 몇 년 새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맏형인 김영대(72) 회장이 이끄는 대성합동지주는 주계열사인 대성산업의 유동성 위기로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한창이다. 대성산업을 살리기 위해 대성합동지주의 주요 계열사가 총동원됐다. 둘째 김영민(69) 서울도시가스그룹 회장은 본업에서 동떨어진 사업을 늘려 쓴맛을 보고 있다. 막내 김영훈(62) 대성홀딩스 회장은 캐시카우인 에너지 사업 외에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대성산업 휘청거리며 위기 맞아
장남 김영대 회장의 대성합동지주는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성산업이 휘청거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2000년대 중반 대성산업을 통해 건설 사업에 손을 댔다가 큰 손실을 냈고 현재 자금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대성산업은 지난 한 해만 215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당기순손실도 3054억 원에 달했다. 1분기 말 부채비율은 413.7%, 총 차입금 규모는 1조4810억 원에 이른다.
반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426억 원뿐이다.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 차입금만 3200억 원에 육박한다. 이렇게 재무 건전성이 좋지 않아 지주사인 대성합동지주가 나서 대성산업에 긴급 자금을 수혈하는 중이다. 지난해 투입한 돈만 해도 2000억 원을 웃돈다. 김영대 회장은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해 지난 6월 10일 대성합동지주가 보유한 대성산업가스 주식 216만 주를 골드만삭스PIA에 처분했다. 이는 전체 지분의 60%에 해당하는 것으로 금액으로 따지면 1980억 원이다. 지난 5월 27일에는 대성합동지주가 대성산업가스에 1000억 원을 단기 차입한 후 이 자금을 당일 대성산업에 단기 대여했다. 지주사인 대성합동지주가 우량 계열사인 대성산업가스를 통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고 이 돈이 다시 지주사를 거쳐 대성산업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성합동지주가 자금 지원의 중간 역할을 하며 막대한 이자 차익을 챙긴 정황이 포착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대성산업에 자금을 대여해 주는 과정에서 차입 금리보다 이자를 1% 이상 더 높게 받았기 때문이다. 대성합동지주는 대성산업가스에서 1000억 원을 연 4.71%로 빌렸다. 그리고 대성산업에 다시 이 돈을 대여해 주면서 명시한 이자는 연 5.78%로 1.07% 포인트가 높다. 대성합동지주는 연 10억7000만 원에 달하는 이자 차익을 챙기게 된 셈이다.
대성합동지주 측은 “대성합동지주가 지급하는 이자를 합쳐 평균 이자 계산을 해 대성산업에 빌려준 것이다. 대성산업가스와 대성산업 간 직접 거래가 이뤄졌을 때 금리는 약 5.98%가 책정됐지만 대성합동지주를 거치면서 오히려 금리가 0.2% 정도 내렸다. 5.78%는 법인세법상 인정 세율의 최소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성합동지주가 부실 계열사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을 하다가 동반 부실에 빠지지 않을까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지켜주기 위해 무리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특히 김영대 회장 일가가 당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에 이러한 지원이 이뤄졌을 때는 논란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성산업가스 지분 전체가 대성산업의 대출 담보로 잡혀 있어 우량사를 잃을 가능성도 있다”며 “부실의 악재가 옮겨 붙어 그룹 전체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경영 일선에 복귀한 김영민 회장의 경영 능력에도 의문 부호가 붙었다. 그룹의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 벌였던 교육 사업, 목재 가공 사업이 실패로 귀결됐다.
서울도시가스는 지난 3월 교육 사업인 ‘굿캠퍼스’와 목재 가공 사업인 ‘SCG포레스트’를 청산했다. 서울도시가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굿캠퍼스는 2008년 서울도시가스가 50억 원을 출자해 설립한 영어 학원이다. 김영민 회장의 장남 김요한(32) 서울도시가스 부사장이 2011년부터 굿캠퍼스 사내이사로, 장녀 김은혜(34) 씨가 기획실장으로 활동할 만큼 오너 일가의 관심도 컸다. 하지만 적자가 누적되면서 부실의 골이 깊어져 결국 작년 8월 문을 닫았다. SCG포레스트도 작년 7월 청산했다. 이 밖에 서울도시가스가 지분 100%를 쥐고 있는 캐나다 자원 계열사 SCGC는 지난해 41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SCG에디오피아도 출범 이후 계속 적자를 내고 있다.
김영민 회장이 벌인 신사업 대부분이 결과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확장은 계속됐다. 올해 평판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SGC디스플레이에 지분을 출자해 지분 51%를 취득했다. 신규 업체인 만큼 아직 매출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울도시가스는 서울 시내 도시가스 공급 비율이 94%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늘리며 욕심을 부리다가 사면초가인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업을 꾸려가고 있는 3남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도 새로 벌이는 사업마다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김영훈 회장은 대성그룹의 본업인 에너지 사업 외에 아동복 업체, 포털·메신저 등의 정보기술(IT), 창업 투자사와 투자 자문사 등의 금융업, 경영 자문 컨설팅, 출판 등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2004년 출범한 아동복 업체 글로리아트레이딩은 2012년 7억 원의 손실을 낸 데 이어 2013년에도 5억 원의 적자를 봤다.
게다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글로리아트레이딩은 김영훈 회장의 친누나인 김영주(65) 대성그룹 부회장과 주요 계열사를 통해 수십 억 원을 빌리고 매년 상환을 늦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금융업인 대성투자자문은 계약액 규모가 88억 원에 그쳐 국내 140여 개 투자 자문사 중 120위에 머물러 있고 포털 사이트 운영 업체인 코리아닷컴도 몇 년째 적자다. 고전을 면치 못해 선박 운송업 제이씨알, 전시 및 행사·광고대행업 나우필 등은 올 초 문을 닫았다.
‘문어발 확장’으로 어려움 더해
대성그룹 측은 “문 닫은 회사들은 특별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며 “적자 기업들도 회사 전체로 보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대성가 삼형제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창립 70주년을 목전에 둔 대성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대성가 2세들은 다른 재벌가 2세들과 달리 체계적인 전문 경영 수업을 받지 못했다”며 “형제 모두 학력이 화려하고 착실한 모범생 이미지가 강하지만 최근 들어 사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 운영만으로 힘든 길을 걷고 있는 삼형제는 이 와중에 ‘형제간’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대성그룹’이라는 사명을 두고 맏형 김영대 회장과 3남 김영훈 회장 간의 법적 분쟁이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피를 나눈 사이지만 이름은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2010년 계열 분리하는 과정에서 김영대 회장이 대성산업을 ‘대성지주’로 사명을 변경해 상장을 추진하자 대성그룹의 김영훈 회장 측이 상호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김수근 창업주가 형제들에게 대성이라는 이름을 공유하라고 했지만 두 형제가 서로 ‘대성그룹’ 회장이라는 상징성을 포기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또 ‘대성홀딩스’ 상호를 두고도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결론은 각각 별개의 ‘대성홀딩스’ 법인이 2개 생긴 것이다. 김영훈 회장이 이끄는 대성홀딩스는 연 4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상장사인 반면 김영대 회장이 이끄는 대성홀딩스는 500만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차남 김영민 회장은 이 싸움에서 한 발 물러선 모습이다. 그는 2010년 계열 분리 뒤 서울도시가스그룹으로 사명을 바꿨다.
대성합동지주가 부실 계열사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을 하다가 동반 부실에 빠지지 않을까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이들의 경영권 분쟁 때문에 각 사들의 유령 계열사만 늘어났다. 재계 순위 40위인 대성가는 모두 76개의 계열사를 보유, 삼성그룹(74개)이나 현대차그룹(57개), LG그룹(61개)보다 더 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반면 대성의 자산 총액은 7조5000억 원, 삼성그룹은 331조4000억 원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밖으로 회사를 성장시켰지만 성장 동력은 찾아볼 수 없다”며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세 그룹 모두 체질이 약해진 상태다. 이러다 결국 투자자나 외부 자본에 의해 대성의 알맹이를 다 빼앗기고 그룹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을지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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