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등 한국 기업 이직은 2004년 이후 감소…해외 인력 유치도 성과 못내

일본에서는 연구원과 전문 기술자뿐만 아니라 회계사·변호사·세무사 등 전문직 업계까지 ‘일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법무·재무까지도 글로벌화하면서 일본을 넘어 적어도 아시아 단위에서 경력을 쌓아야 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일반 엘리트 직장인들도 일본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높은 연봉과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 해외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일본의 고급 인재들은 한국·중국·대만 등으로 적을 옮겼다. 일본 고급 인재들이 신흥국에 가면 꽤나 몸값을 높여 대우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일본 탈출’의 주요인이었다.
[한국은 인재 전쟁 무방비] 한국 거쳐 중국행 택하는 일본 연구원들
삼성에서만 500여 명 활동 중
특허를 보유한 일본인 연구원들은 그동안 한국에 상당히 유입됐었다. 일본 도쿄대 지적자산경영연구의 자료에 따르면 삼성으로 이직하는 일본인 연구원은 1994년까지 한 해에 1~2명에 불과했지만 그 후 급속도로 증가해 2004년에는 한 해 25명 가까이 늘었다. 삼성엔 500명 남짓의 일본인 기술 인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외에 LG·현대로 옮긴 일본인 기술 인재도 2003~2004년 정점을 찍었다. 특허의 이동을 통해 일본인 기술 인재의 이동을 추적한 와타나베 도시야 도쿄대 기술경영전략학과 교수는 “일본의 기업들은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했지만 혁신으로 연결되지 않은 반면 한국이나 대만이 급성장함에 따라 일본의 우수한 인재가 한국과 대만 기업 등 아시아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인 기술 인재의 한국 신규 유입은 2004년 이후 점차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또한 삼성 등 한국 기업에서 활약하던 일본 인재들은 다시 일본 기업으로 돌아가거나 중국 등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으로 와타나베 교수는 파악했다. 이 때문에 2004년 이후 한국에 유입된 일본 기술 인력의 감소세와 비교해 중국으로의 유입 수는 크게 늘고 있다.

일본 역시 고급 인재 유출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기술 인력의 한국 등 외국행에 대해 경계심을 높여가고 있다. 인력 이동은 곧 기술 유출로 결부되기 때문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2012년 신일본제철이 포스코를 상대로 기술 유출 소송을 걸고 올 들어 도시바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비슷한 소송을 낸 것도 자사 기술 인력 이동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일본으로선 외국인 고급 인재가 일본 진출을 외면하는 상황도 심각하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2012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약 68만 명이다. 이 중 전문·기술 분야의 체류 자격을 가진 고급 외국 인력은 약 12만4000명 정도다. 다른 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 대기업 100개사에서 일하는 고급 외국 인력은 불과 1000명에 1명꼴이었다.

일본 정부는 외국인 고급 인재의 유입을 장려하기 위해 2012년 5월부터 ‘고급 인력 포인트제에 의한 출입국 관리상의 우대 제도’를 도입했다. 학력·경력·소득 등을 포인트로 평가해 총 70점 이상의 외국인을 우대한다는 내용이다. 외국인 유학생의 유치 계획도 세웠다. 2008년에 발표된 ‘유학생 30만 명 계획’에서는 당시 약 14만 명이던 유학생을 2020년까지 30만 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100% 영어 강좌로 학위를 딸 수 있는 코스를 늘렸고 현재 주요 국공·사립의 13개 대학에서 총 300개 코스가 개설돼 있다. 유학생의 졸업 후 구직 활동 기간도 최장 180일에서 1년으로 연장했다.
[한국은 인재 전쟁 무방비] 한국 거쳐 중국행 택하는 일본 연구원들
하지만 일본의 인재 유치 계획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일본 학생지원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일본 유학생은 13만5000명(어학 연수생 제외)으로 목표인 30만 명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일본 유학생의 거의 절반을 중국인·한국인·대만인이 차지하는데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의 발생, 영토 문제로 인한 주변국 관계 악화 등으로 오히려 감소세에 있다. 한국 유학생은 2013년 기준으로 전체 11.3%를 차지하고 있고 전년 대비 0.8% 포인트 감소했다. 더욱이 유학생 감소의 다른 원인은 일본 기업의 부진으로 일본 내 취업이 힘들다는 점과 폐쇄적인 기업 문화도 한몫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부, 시카고대 MBA를 거쳐 미국과 일본에서 근무한 후 현재 일본에서 인사 관련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계 박숙자 씨는 일본의 고급 인재 유인책에 비판적이다. 그는 일본 경제지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에서 “해외에서는 우수한 사람일수록 능력주의를 선호한다. 외국인 고급 인재들은 (일본의)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 지연, 성과에 근거하지 않는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가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 내에서 이직이 쉽지 않은 노동시장의 낮은 유동성도 글로벌 고급 인재들이 외면하는 하나의 이유다. 여러 회사를 거치며 경력을 키워 나가야 하는데 일정 코스를 벗어나면 다시 도전이 어려운 상황이 외국인 고급 인재가 일본 대학과 기업으로의 진출을 망설이는 이유로 꼽힌다. 일본의 이런 상황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도 한국 상황과 비슷하게 대학·정부·기업이 각자 따로 움직이는 까닭에 일본인 인재들의 해외행을 결정했고 외국인 고급 인재 유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 IT 인력의 일본 진출은 늘어
한편 한국산업인력공단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일본 취업은 2013년 기준으로 국가별 비중이 가장 높았다. 2008년 이후 국가별 해외 취업을 살펴보면 2013년 말까지 모두 3371명이 중국에 취직해 진출자가 가장 많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덕분에 중국 사무 서비스 분야의 진출이 많았지만 2013년 중국 취업 비자(Z) 발급 요건이 까다로워져 중국 취업이 주춤했다. 반면 일본의 정보기술(IT) 인력 수요 급증에 따라 일본은 2013년 국내 인재의 취업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이는 비숙련 노동자와 연수생을 포함한 수치로, 고급 인재 이동에 대한 수치라고 볼 수는 없다. IT 분야의 일본 취업은 2001년 한일 간 IT 자격의 상호 인증 협정을 맺어 IT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일본 내 연수와 비자가 가능해지면서 일본 내 취업자가 늘어났다. 한국 정부의 해외 취업 지원 정책은 취업난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 한편 국내 인재의 유출이라는 점과 세금을 이용해 외국의 기업에 혜택을 준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한국 정부는 10만 명의 해외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청년 실업 대책과 인재의 국제화를 추구하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일본을 포함한 해외 취업을 위해 연수 지원 등에 많이 투자하고 있지만 외국 기업은 고급 인재는 삼키고 그렇지 못한 인재는 바로 뱉어 내기 때문이다. 인재의 이동과 육성 면에서 해외 경험은 필수적일 수 있지만 능력 면에서 성숙한 인재가 연어처럼 모천회귀해 알을 낳게 하는 문제는 별개로 해결책 모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