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낙관론과 비관론

자기가 자유를 누리고 싶으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먼저 이뤄져야 자유와 평등이 상당한 수준으로 양립하는 복지국가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CEO 에세이] 인간 낙관론과 비관론
노익상 한국리서치 대표

1947년생. 1971년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1973년 고려대 사회학 석사. 2002년 고려대 사회학 박사. 1978년 한국리서치 대표(현). 2007년 대한산악연맹 부회장(현).



아버지에게 사과가 한 알밖에 없다. 이것을 나누어 줄 자녀는 세 명이다. 아버지 (가)는 사과를 균등하게 세 개로 잘라 한 쪽씩 나누어 준다. 아버지 (나)는 세 자식을 불러 사과 한 알을 주면서 너희들이 알아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라고 한다. 당신은 어떤 쪽의 아버지와 더 가까운가?

세 등분해 주는 아버지의 생각을 ‘인간 비관론적’, 그냥 한 알을 주면서 그들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리라고 믿는 생각을 ‘인간 낙관론적’ 관점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맹자와 노자의 차이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하니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대립됐던 인간관인 것 같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의 현재 정치·사회적 리더십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는 고려해 볼만하다.

우리 민족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평등’을 더 자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평등하지 않으면 나쁜 것으로 보는 시각이 퍼져 있다. 반면 ‘자유’는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비록 ‘자유’와 ‘방종’을 구별한다고 하더라도 ‘자유’라는 말은 보수적이고 기득권 옹호 세력의 단어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승만 대통령 통치 시절의 ‘자유당’이 연상돼서 그런 것일까? 그러나 자유는 책임을 전제로 한 사고이고 주장이다. 자유라는 한자는 스스로 시작하고 스스로 끝맺는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유의 영어 단어를 물으면 거의 모두 ‘프리덤(freedom)’이라고 한다. ‘그러면 해방이란 뜻의 영어 단어는?’이라고 물으면 대부분이 대답이 없다. 자유와 해방은 다른 뜻이다. 해방은 무엇으로부터 벗어남을 뜻한다. 식민 통치로부터의 해방, 독재 정권으로부터의 해방 등 부당한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반면 자유는 ‘벗어남’ 만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진다는 뜻을 포함한다.

아버지 (가)는 평등을 더 중시하고 아버지 (나)는 자유를 더 중시하는 인간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혹자는 자신에게는 ‘자유’를 중시하고 타인에게는 ‘평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나는 내 책임 하에 내 뜻대로 해도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내 뜻대로 내가 정의롭게 분배해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은 대체로 독재를 낳는다. 독재자가 백성을 꼭 못 살게 구는 것만은 아니다. 경제개발, 부패 척결, 부국강병 등 통치자의 임무를 독재자가 더 잘 수행한 역사는 많다. 그러나 독재자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나는 잘 살고 싶지도 않고 더 편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 뜻대로 하고 싶다”고 저항하면 독재자는 그런 사람을 ‘반역’으로 몰아세운다.

평등과 자유는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래서 현대의 많은 국가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 자유를 인정하되 법에 의해 어느 정도의 경제·사회적 평등 또한 보장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에서도 자기가 자유를 누리고 싶으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먼저 이뤄져야 자유와 평등이 상당한 수준으로 양립하는 복지국가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