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에 투명 테이프 붙였다 떼자 놀라운 일이…쓰임새 다양한 탄소의 힘

그래핀_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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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을 약속하며 건네는 결혼반지. 지구상의 수많은 보석이 사랑의 징표인 결혼반지를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사용되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다이아몬드다. 다이아몬드는 금강석이라고도 불리는데, 천연 결정 광물 중에서는 가장 단단하며 아름다운 광택 등으로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보석으로 사용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서기 7~8세기께 인도다. 고대 로마 시대의 기록에도 다이아몬드가 등장하는데, 17세기까지는 인도가 유일한 다이아몬드 생산국이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귀한 보석이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연마법이 개발된 것 역시 17세기였기 때문에 고대에는 천연색의 루비나 에메랄드 같은 보석이 제대로 연마되지 않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높은 지위의 보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후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대규모의 다이아몬드 매장지가 발견되면서 그나마 대중성을 조금 갖게 됐다.

특히 다이아몬드는 단단한 특성 때문에 절단 등의 공업적 용도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를 현미경으로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한 외모에 비해 단순한 구성에 놀라게 된다. 다이아몬드는 순수한 탄소로만 이뤄져 있으며 불순물이 섞이면 색깔을 띠는 변종이 된다. 대개 다이아몬드에 질소가 포함되면 노란색, 붕소가 들어가면 파란색을 띤다.

비록 대중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귀한 몸인 다이아몬드와 구성 성분은 동일한데 겉모양이 다른 광물 중 대표적인 것이 흑연이다. 투명함을 자랑하는 다이아몬드에 비해 흑연은 검은색을 띠며 광택 역시 금속의 느낌이 살아있다.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에 비해 무르기 그지없는 흑연은 단지 다이아몬드와 탄소가 서로 연결된 결정구조에서 다소 차이를 보일 뿐이다. 값비싸고 귀한 다이아몬드에 비해 흑연은 연필심이라는 이름으로 문구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와 연필심은 형제 사이
물론 흑연은 필기도구 이외에도 원자력발전소의 감속재·내화재 등의 용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흑연 매장량은 엄청난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극적인 생산에 나선다면 세계 최고의 흑연 생산국 지위에 등극할 수 있는 정도가 묻혀 있는데, 결정구조가 조금 바뀐 다이아몬드가 그만큼 매장돼 있다면 보다 많은 경제적 가치를 띨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흑연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이미 1950년대에 인공다이아몬드의 제조에 성공했으며 한국에서도 여러 회사가 인공다이아몬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히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촉매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공업용 다이아몬드로만 활용되는 실정이다.

다이아몬드였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자아내던 연필심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사건이 몇 년 전 있었다. 연필심에 투명 테이프를 붙였다가 떼면 만들어지는 신소재를 찾아낸 발견자에게 2010년 노벨상의 영예를 안겨준 그래핀이 그 주인공이다. 그래핀은 탄소가 얼기설기 얽힌 다이아몬드나 흑연과 달리 아주 얇은 한 겹으로만 이뤄져 있는데, 가지고 있는 특성이 매우 뛰어나 꿈의 신소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그래핀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얇은데 비해 구리보다 전기가 잘 통하고 강철보다 강하며 대부분의 빛을 통과시켜 투명할 뿐만 아니라 신축성 또한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구부릴 수 있는 디스플레이, 전자 종이, 고효율 태양전지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돼 세계 각국이 서로 이 분야에서 앞서기 위한 치열한 연구·개발(R&D)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보다 좀 더 일찍 발견된 꿈의 신소재 후보는 탄소 나노 튜브인데, 매우 가늘고 긴 대롱 형태로 탄소가 배열된 물질이다. 탄소 나노 튜브 역시 머리카락의 10만 분의 1에 불과한 크기이지만 전기 전도성이나 강도가 매우 뛰어나다. 1991년 합성에 성공한 탄소 나노 튜브는 이후 반도체를 비롯해 초강력 섬유 등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탄소섬유로 항공기 연비 대폭 줄이다
조금 더 시계를 과거로 돌리면 탄소 원자 60개를 축구공 모양으로 배열한 풀러렌이라는 물질이 1985년 발견됐다. 헬륨 가스 안에서 흑연에 레이저를 쏘아 만들게 된 풀러렌은 이후 보다 많은 탄소 원자를 사용하거나 탄소 원자 하나를 다른 원자로 바꾸는 등의 응용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풀러렌 역시 다이아몬드의 단단함을 뛰어넘고 절삭 도구나 아주 단단한 플라스틱으로 활용하는 등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1996년 노벨상의 주인공이 된 풀러렌은 이후 나노 기술 분야를 화려하게 열었다는 의의도 가지고 있다.

그래핀과 같은 꿈의 신소재에서부터 연필심과 다이아몬드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탄소가 인류의 삶에 주었던 윤택함에 더해 앞으로 펼쳐질 화려한 변신에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탄소로 이뤄진 물질을 일컫는 탄소 소재는 적용 분야가 대단히 넓다. 가령 배기가스에서 중금속을 모으거나 유해가스를 제거하는 데에도 탄소 소재가 활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타이어의 보강재로 카본블랙이 활용되며 리튬 이온 전지에도 쓰이고 있다.

탄소섬유 역시 쓰임새가 활발하다. 100% 탄소로 이뤄진 다이아몬드나 그래핀 등과 달리 90% 이상의 탄소 함유율을 가진 섬유인 탄소섬유는 강철보다 강하지만 무게는 훨씬 가벼워 제품의 경량화를 위한 소재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세계 항공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보잉과 에어버스는 가장 최신 기종인 B787과 A350에 탄소섬유를 적극 활용해 항공기의 무게를 줄이고 연비를 대폭 개선했다. 특히 날개와 동체의 대부분을 탄소섬유로 제작하고 있다. 자동차 역시 최근 한국에 소개된 BMW의 야심작인 순수 전기차 i3 차체를 탄소섬유로 제작했다. 전기자동차는 배터리 등의 무게 때문에 기존의 자동차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BMW i3도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탄소섬유가 없었다면 2000kg에 육박하는 헤비급 챔피언일 뻔했지만 탄소섬유의 힘을 빌린 경량화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체중 감량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낚싯대, 골프채 등에서도 탄소섬유를 통한 체중 감량 효과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스마트폰에도 탄소섬유가 조만간 적용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더욱 가벼우면서도 강한 스마트폰이 시장에 쏟아질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최근 애플이 탄소섬유를 활용한 아이폰, 아이패드나 맥북프로 등의 디자인 및 관련 기술 특허를 취득하면서 카운트다운만 남기고 있는 상황이다. 탄소섬유 시장의 선두 주자는 일본 회사들로, 소수의 일본 회사가 세계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 업체가 이를 추격하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다. 현재는 탄소섬유의 가격이 철강에 비해 대단히 비싸지만 수요와 생산이 나날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대폭 하락하며 대중화될 것으로 예상되니, 그때까지 한국의 기업과 과학 기술인들이 노력해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렇게 쓰임새가 다양하고 미래를 주목받는 탄소는 모든 생명체의 구성 원소다. 특히 인간의 몸에는 산소 다음으로 많이 존재하며 전체 무게의 약 20%를 차지한다. 우주에서도 넷째로 많은 원소로 알려져 있다. 지구의 대기에는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주로 존재하기 때문에 온실가스의 주범이기도 하다. 특히 온실가스를 만들어 내는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주된 구성 원소다. 그리고 원자의 질량을 정의하는 표준이 되는 원자질량 단위로 탄소가 채택됐으며 문화재 등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에도 탄소가 활용된다. 이렇게 너무나도 많은 곳에 쓰이는 탄소이긴 하지만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탄소 소재는 숯불갈비를 구워 내는 시커먼 숯이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