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배신’ 저자 이미숙 박사

[만난 사람 맛난 인생] “‘군대 식판’이 최고의 밥상입니다”
“무심코 차린 한식 밥상이 우리 가족 수명을 단축시킨다!”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밥 먹다 말고 화들짝 놀라 뒤로 넘어갈 소리다. 한국인의 먹을거리 건강을 따질 때 일반적으로 급속히 서구화되고 있는 식단을 걱정하는 일은 다반사. 그렇지만 ‘신토불이(身土不二) 우리 한식의 밥심’에 대해선 눈곱만치도 우려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한식=건강식’이란 등식을 내세우며 한식 세계화까지 부르짖는 마당에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거센 항의까지 받을 수 있는 말이다.
워낙 충격적인 얘기다 보니 ‘낚였다’며 넘길 수도 있는데, 그리 쉽게 단정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말을 한 사람이 식품영양학자이기 때문이다.


한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됐다
‘한식의 배신(위즈덤하우스 발간)’의 저자 이미숙 박사. 겉모습만 보면 왜소한 체격의 영락없는 여성이다. 돌팔매를 당할지도 모르는 문장을 책 표지에 넣은 이유를 물었더니 카랑카랑하고 당찬 목소리의 답이 돌아온다.

“이 말부터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단정적으로 한식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한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발전적인 방향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이 박사는 1987년 서울여대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가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연구 테마는 ‘지방산이 암에 미치는 영향’. 학위 취득 후 서울대 의과대학 암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지냈다. 또 모교 초빙교수로 한동안 강단에 서기도 했다. 요즘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한식과 건강, 다이어트 식생활 등과 관련해 인기 강사로 활동 중이다.

사실 제목만 들어도 섬뜩한 책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한식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주기 위해 정리한 글을 출판사에 넘겼더니 자신도 ‘깜놀’한 제목이 달려 나왔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건강한 식생활에 대해 강의할 때 ‘OOO는 건강에 좋지요?’란 질문을 종종 받아요. 그럴 때 맞장구를 치며 ‘물론입니다’라고 즉답을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문제를 살짝 건드려주면 아주 불쾌한 반응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많이 먹는 젓갈의 발암성 같은 그런 거죠.”

일반인이 아닌 TV나 라디오 방송의 PD나 작가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거의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는 ‘오늘의 주인공인 OOO은 최고의 건강식품’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보낸다는 것. 언론까지도 만연돼 있는 ‘한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에 충격을 받아 출간을 서둘렀다고 한다.

책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내 가족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한식’이 하나고 또 하나는 ‘기적을 만드는 새로운 한식 밥상’이다. 제목만 보면 서로 배치되는 내용 같지만 앞의 것은 한식의 문제점, 뒤의 것은 해결책 내지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한식에 대해선 이상할 정도로 맹목적인 찬양뿐입니다. 최소한의 상식을 기본으로 한 ‘합리적인 의심’이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닌가요.”

그녀가 지적하는 ‘위험한 한식’은 이렇다. 일반인이 한식의 뿌리, 한식의 자존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김치·된장·막걸리 등 발효 음식부터 몰아세운다.

“건강 장수 식품으로 믿고 있는 김치나 된장은 물론 고추장의 다이어트 효과, 막걸리의 항암 효능이 과연 우리만의 유일한 발효 식품인 것처럼 찬사를 받을 만한가요. 서양에도 우리가 고린내가 난다며 코를 막는 건강 발효 식품 치즈가 있습니다.”

그녀의 몰아세우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 ‘발암물질’을 끄집어내며 발효 음식이 발암물질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발효와 부패는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둘 다 미생물이 작용한다는 뜻인데, 인체에 유익하면 발효고 유해하면 부패죠. 매스컴에서는 발효 식품의 장점만 부각하고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알리려고 하지 않아요. 대표적인 것이 ‘바이오제닉 아민(Biogenic amines)’인데, 많이 섭취하면 신경계·혈관계를 자극해 식품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심하면 체내 대사를 통해 발암물질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이오제닉 아민은 1960년대 유럽에선 치즈를 먹은 사람들이 갑자기 두통과 고혈압을 호소하는 일이 생기면서 연구가 시작됐다. 이는 치즈의 발효 과정에서 생산된 바이오제닉 아민의 일종인 ‘티라민’이 급격한 혈관 수축을 일으켜 발생한 것. 이후 유럽의 치즈 업계는 바이오제닉 아민의 함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고 정부는 규제 기준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치즈를 먹을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치·젓갈·된장 등 발효 식품을 한식의 대표 주자로 앞세우고 있는 한국에선 아직까지 바이오제닉 아민의 규제 기준조차 없이 방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녀는 김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김치에 대해서도 나쁘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못을 박는다. 김치는 항암·항산화를 돕는 유익한 성분도 많지만 그 안에 있는 소금·고춧가루·젓갈 등이 혈관계 질환이나 위궤양 악화 등의 원인 물질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밥도둑은 건강도둑’이란 이 박사의 주장도 흥미롭다. 전통적으로 한식에서 반찬의 존재는 밥을 먹기 위한 보조 수단이다. 밥도둑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반찬 가운데 특별히 밥을 더 많게 먹게 만드는 반찬을 말한다. 간장게장·굴비·장조림처럼….

“아니 밥도둑은 의적 홍길동이라도 되는 겁니까? 도둑을 나쁜 도둑으로 취급하지 않고 착한 아니 좋은 도둑으로 대접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밥도둑의 실상은 공통적으로 짜다는 겁니다.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짜면 짤수록 반찬을 덜 먹어 살림에 보탬이 되는 효자 반찬이긴 했지만 이제는 나트륨 과잉 섭취에 따른 혈관계 성인병 질환의 원흉이 되고 있습니다.” 따끔한 지적이다.
이렇게 한식이 위태롭기만 한 그녀는 과연 무엇을 먹고 살까.
“군대 식판 같은 밥상입니다. 한마디로 1식 3찬이지요.”
밥과 국, 그리고 메인 반찬 하나, 여기에 나물과 김치를 더하면 밥상 차리기 끝이다. 시부모님처럼 어른이 오시면 메인 요리를 하나 더 추가한다. 예를 들어 고등어구이에 돼지볶음을 추가하는 식이다. 나물은 기본적으로 생채와 숙채를 병행한다. 시금치나물을 무쳤다면 무생채를 만드는 것이다. 구운 김도 기본으로 몇 장 올려놓는다. 김치는 익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 겉절이처럼 바로 무쳐 낸다. 국도 사실 어른 때문에 준비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가장 큰 부담을 주는 나트륨 문제 때문에 평상시엔 국을 챙기지 않는다는 것. 국을 낼 때도 가급적 작은 그릇에 반 정도만 담아서 내고 추가는 정중하게 사절 또는 물을 대타로 내보낸다고 한다.


‘밥 도둑’은 ‘건강 도둑’일 뿐
“이렇게 먹는 건 정찬에 가까워요. 평상시에는 그냥 한두 가지만 놓고 과일 음료로 입가심해요.” 아침 식사를 물어봤다. 감자나 단호박을 오븐에 굽고 달걀 하나를 부쳐서 사과와 요구르트를 갈아 만든 음료와 먹는 게 모두다. 잡채나 빈대떡을 먹으면 밥이나 빵은 먹지 않는다. 탄수화물 과잉 섭취를 걱정해 오래전부터 습관을 들여놓았더니 따로 밥이나 빵을 먹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외식하기도 쉽지 않겠다. 예상대로 외식을 할 땐 비빔밥처럼 단품 메뉴를 먹는다고 한다. 나물 등을 온통 섞어서 먹으니 반찬 재활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그런다고 한다. 그리고 찌개나 전골 같은 메뉴는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함께 담가야 하는 비위생적 행위 때문에 기피한다.

‘기적의 한식 밥상 만들기’는 이 박사의 밥상 차리기에 몇 가지만 더하면 완성이다. 주문 사항 첫째는 하루 세 끼 ‘밥’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 다음으로 밥상에서 국그릇을 치워라. 소금을 식초로 바꿔 밥도둑의 개과천선(改過遷善)을 도와라. 갖은 양념에서 벗어나 본 재료 본연의 맛을 즐겨라. 발우공양을 하듯 뿌리에서 껍질까지 싹싹 먹어라 등이다.

“한식이 최고의 건강 밥상이란 신념으로 그동안 한식 밥상만 고집해 온 주부들에겐 큰 충격이겠지만 이처럼 조금 더 신경 써 밥상을 차리면 가족 수명은 고무줄처럼 쭉쭉 늘어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