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츠파로 무장한 유대인들… 끝없는 연구·개발로 ‘기술 창업’선도
기획 연재 창조 경제 시대, 기업가 정신이 희망이다⑥ ‘후츠파’라는 히브리어가 있다. 사전에서는 이를 ‘뻔뻔하고 당돌하다’는 정도로 풀이한다. 하지만 이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들이대’라는 말이다. 가진 게 하나도 없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후츠파 정신’, 즉 ‘들이대 정신’ 하나를 가지고 세계에 도전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기업가 정신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1 이스라엘의 정보 기관에서 일하던 오피르 하손 사장은 ‘사이버짐’이라는 이름으로 작년 창업했다. 창업 아이템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인 ‘정보 보안’이다. 이스라엘의 주요 시설은 하루에도 200여 회씩 사이버 공격을 받는다. 하손 사장은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는 회사를 차린 것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 ‘화이트 해커’들이 모여 있는 사이버짐은 창업 1년도 안 돼 주요 기업들과 계약하고 미국 CNN 등 여러 언론에 소개되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2 본업은 기타 리스트, 부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발명가인 아사프 그루너 에그놀로지 사장은 올 초 한 벤처 투자 업체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그간 킥스타터·인디고고 등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얼마간의 투자금을 모았지만 본격적인 세계 진출을 위해서는 큰 ‘배경’이 필요했다. 그는 곧 투자금을 가지고 제품 생산량을 크게 늘릴 계획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캐나다·중국 등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창업 아이템은 ‘계란찜 제조기’다.
#3 타카두의 아미르 펠레그 사장은 세 번째 창업을 통해 영국·싱가포르· 호주 등에 지사를 세운 글로벌 기업의 오너가 됐다. 첫 창업을 했던 20년 전만 해도 이런 성공을 하게 될 줄 몰랐다.
2009년 설립한 타카두는 ‘상수도 관리’ 기업이다. 상수도망 곳곳에 센서를 달아 둔 뒤 물의 유동량을 체크해 어느 부분에서 물이 새는지 파악하는 게 주된 업무다. 첨단 기술과 전통 기술을 융합한 타카두의 솔루션은 현재 하버드대에서 연구되고 있으며 맥킨지·블룸버그 등에서 대대적으로 소개되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4 이스라엘 출신인 유발 탈 사장은 세계 금융의 1번지 뉴욕에서 2005년 ‘정면 도전’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기술로 페이오니어라는 인터넷 기반의 선불 결제 시스템을 만들었고 뉴욕에 본사를 세운 뒤 세계의 벤처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이끌어 냈다. 현재 페이오니어는 마스타카드와 제휴해 200여 개의 국가에서 200만 명이 불편 없이 쓸 수 있는 대표적 국제 전자화폐로 거듭났다.
이스라엘은 전혀 상반되는 두 개의 모습이 혼재돼 있는 나라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스무 살 초반의 앳된 여군들이다. 주변 아랍국들과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은 징병제를 도입하고 있다. 750만 명 수준의 적은 인구 때문인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군대에 입대한다. 미녀가 많기로도 유명한 게 이스라엘이지만 여군이 많기로 유명한 곳도 이스라엘이다. 그래서인지 번화가에 가면 수많은 여군들을 볼 수 있다. 군복을 딱 맞게 줄여 입은 이들은 교복을 입은 한국의 여고생들처럼 삼삼오오 모여 서로 ‘재잘대며’ 쇼핑을 한다. 한 손에는 핸드백을 들고 어깨에는 소총을 메고 말이다.
이스라엘의 경제도 이처럼 전혀 상반된 두 개의 모습이 섞여 있다. 이스라엘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에 달한다. 이제 갓 2만5000달러 수준인 한국과 1만 달러나 차이가 난다. 성장세도 꾸준하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한 신생 국가다. 건국 후 60여 년간 경제 규모는 50배 이상이나 커졌다. 경제성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금융 위기 이후로도 매년 꾸준히 3%대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국가가 지금과 같은 저성장·장기 불황 시대에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은 정말 ‘가진 것’이 없다. 한국도 ‘가진 것’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스라엘은 한술 더 뜬다. 영토는 한국의 충청도 수준이고 그나마 대부분이 황무지다. 그렇다고 싱가포르 같은 잘사는 도시국가처럼 교역의 요충지도 아니다. 오히려 눈에 불을 켜고 이스라엘을 노려보고 있는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는 형편이다. 자원이 많을까. 그것도 아니다. 주변국들에선 원유가 펑펑 쏟아지지만 이 나라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사해에서 나오는 ‘소금’ 정도가 전부다.
어떻게 이스라엘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부국’이 될 수 있었을까. 이스라엘 현지인 그리고 이스라엘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그 비결에 대해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바로 ‘생존에 대한 절실함’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여러 상황이 워낙 악조건이니 기를 쓰고 일했다는 의미다. 생존에 대한 절실함은 누구든지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절실함이 어떻게 ‘성공’으로 승화하느냐다.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국가들이 부국이 되고자 하지만 대부분이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부국으로 가는 길을 ‘기술 혁신’에서 찾았다. 이스라엘이 기술 혁신으로 난관을 돌파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 당시 하임 바이츠만 박사는 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아세톤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그는 영국에 아세톤 생산 기술을 이전할 테니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들을 위한 국가, 즉 이스라엘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 이 공로로 바이츠만 박사는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 취임 후 그는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소인 바이츠만 연구소를 세우고 이스라엘에 기술 혁신의 뿌리를 내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정부 청사보다 대학 먼저 만든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건국하기도 전에 대학을 먼저 세운 나라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로·다리·건물보다 대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과학과 기술 교육에 ‘선택과 집중’했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가 세운 히브리대는 건국 30년 전인 1918년에 개교했다. 히브리대는 지금까지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적 명문대가 됐다. 또 1924년 개교한 테크니온공과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3명이나 배출하면서 ‘이스라엘의 매사추세츠공과대(MIT)’로 성장했다. 두 대학은 이스라엘의 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핵심 인프라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기술 혁신에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입니다. 또 세계에서 유일하게 10년이 넘도록 GDP의 4%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우디 아하로니 텔아비브대 경영대학장)
이스라엘은 기술 혁신에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존 그리고 번영을 위한 유일한 길은 R&D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구글을 비롯해 인텔·마이크로소프트(MS)·SAP·퀄컴·삼성전자 등 약 250개 글로벌 기업 R&D 연구소가 운영 중이다. 분야는 통신, 기업용 소프트웨어, 반도체 등이다. 이 중 다수는 이스라엘 업체를 인수·합병(M&A)해 설립된 연구소다. 이들이 경제성장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이들 연구소는 R&D에 34억 달러를 지출, 전체 R&D 지출의 40%를 차지한다. 총 R&D 및 생산 인력 수는 2012년 기준 약 5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기술 혁신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뛰어난 유대인들이 모여들었지만 그들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소련이 붕괴하면서 이스라엘은 더 큰 고민에 빠졌다. 무려 100만 명에 달하는 구소련 지역 유대인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것이다. 이들의 합류는 심각한 일자리 부족을 야기했다. 높은 기술력을 갖춘 고급 인재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연쇄 살인마’가 아니라 ‘연쇄 창업가’
“이스라엘에는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라는 말이 있습니다. 창업에 실패한 기업가들이 다시 창업에 도전하고 성공한 창업가도 기업을 매각한 후 다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 창업에 또 도전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이원재 요즈마그룹코리아 한국 지사장)
이스라엘은 자칫 국가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신의 한 수’를 찾았다. 바로 ‘창업’이다. 높은 수준에 올라 있는 기술자들의 ‘기업가 정신’을 일깨우면 자연스레 창업이 늘어나고 일자리도 만들어진다는 논리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현재 벤처기업의 수는 8000개가 넘는다. 한 해 만들어 내는 벤처기업 수만 유럽 전체가 만들어 내는 것보다 많다. 매년 스타트업이라고 불리는 초기 벤처기업이 600개씩 설립되고 있다. 이들은 실패하기도 하지만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2013년 10월 기준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의 수는 61개에 달한다. 나스닥에 상장된 유럽·한국·일본·중국의 스타트업 기업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스타트업 기업을 가진 나라다.
기술 개발에 매진하던 이스라엘이 성공적으로 창업 국가로 거듭난 이유는 기업가 정신에 있다. 이스라엘에서 기업가 정신은 다른 말로 ‘후츠파’라고 불린다. 후츠파는 히브리어로 ‘뻔뻔하고 당돌하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이와 계급에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을 서슴없이 내세우는 개방적인 문화, 주장이 타당하다면 그로 인해 조직에서 어떠한 피해도 받지 않는 문화, 항상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을 즐기며 실패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바로 후츠파 문화다.
“물론 창업으로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죠.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도 90% 이상은 실패합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딛고 또 다른 성공을 향해 나아가느냐 아니면 제자리에 머무르느냐입니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자문 회사인 31디그리노스의 가이 프로스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실패했더라도 후츠파를 보여줬다면 ‘성공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다며 격려하고 손뼉 친다. 반면 창업하지 않는 사람은 ‘후츠파가 없다’며 낙오자로 평가한다. 변호사보다 벤처기업인이 더 대우를 받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이런 문화를 잘 보여준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전기차 회사인 베터플레이스를 창업한 샤이 아가시다. 2000년대 초반 아가시는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대통령과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를 만나 배터리 교환 방식을 쓰면 전기차의 고질적인 문제인 긴 충전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당연히 많은 완성차 업체가 그의 이런 제안을 이미 기술적 문제로 거절한 상태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는 그의 기업가 정신을 높이 샀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들 덕택에 아가시는 2006년 베터플레이스를 창업할 수 있었다. 이후 베터플레이스는 고속 성장했다. 세계는 그의 야심찬 꿈에 주목했다. 그러나 전기자동차 시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크지 않았다. 차량 가격은 여전히 비쌌고 배터리 충전소 부족도 해결하기 어려웠다. 결국 적자가 누적된 베터플레이스는 2013년 5월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그러면 아가시는 어찌 됐을까. 여전히 그는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잠재력을 가진 사업가로 평가된다. 많은 이스라엘인들은 그의 회사가 비록 파산했지만 전기차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가이 프로스 31디그리노스 사장은 베터플레이스의 중역 출신이다. 그는 베터플레이스 시절 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액셀러레이팅 자문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현재 10여 개의 스타트업들에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또 그가 베터플레이스 시절에 개발한 전기차 제어 관련 소프트웨어는 캐나다의 전기차 회사에 비싼 값에 팔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비즈니스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파생되는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다.
슘페터가 생각한 ‘기업가 정신’ 구현
사례는 또 있다. 바로 USB 플래시 메모리를 만든 도브 모란 코미고 사장이다. 그는 2001년 세계 최초로 USB를 개발했다. 개발 1년 만에 4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최초의 USB 제작사 엠스템즈는 2005년 매출 6억1000만 달러로 급상승 곡선을 그렸다. 2006년 샌디스크로 엠스템즈가 매각될 때의 가격은 무려 16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까지는 화려한 성공담이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다음은 ‘모두’라는 모듈형 휴대전화 개발사를 차린 것이다. 모두는 최근 구글이 내놓은 모듈형 스마트폰 ‘아라’의 원형이다. 그러나 이는 금융 위기 그리고 애플과 삼성전자의 급성장에 따라 말 그대로 ‘대차게 말아먹고’ 만다. 파산한 모란 사장은 모듈형 휴대전화의 핵심 특허를 모두 구글에 팔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모란 사장은 어찌 됐을까. 수많은 벤처 투자자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1년 만에 새로운 사업에 나섰다. 바로 스마트 TV 회사와 교육용 소프트웨어 업체다. 성공과 실패를 번갈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벤처기업가’로 손꼽힌다. 이스라엘은 파산한 기업가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실패한 기업가라도 부정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비난은 절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용기를 북돋워 준다. 그의 기업가 정신, 즉 후츠파 정신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회사가 망하고 동시에 수십 개의 회사를 창업한다. 시내에서는 간간이 테러가 일어나고 국경에선 로켓포가 날아다니지만 지금도 해외 투자자들의 자본이 몰려들고 있다. 전설적 투자가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처음으로 투자한 게 바로 이스라엘이다.
유대인의 피를 이어받은 ‘혁신 이론’의 대가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기업가 정신은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꿈을 꾸는 것이다.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남을 증명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며 창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쁨을 좇는 것이다.” 만일 슘페터가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도 살아 있었다면 그가 말한 ‘창조적 파괴’와 기업가 정신에 대한 그의 주요 연구들은 이스라엘의 사례로 가득 찼을 것이다.
돋보기 | 이스라엘의 기업가 정신 교육 시스템
유치원부터 군대·대학까지 끊임없는 ‘창업 교육’
이스라엘의 교육 시스템은 유치원부터 철저히 ‘기술 창업’에 맞춰져 있다. 이는 개개인이 과학과 기술에 능통하다면 고등교육 과정에서 창업에 대한 실무 교육만 받고 바로 창업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스라엘에서는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과학과 공학에 흥미를 유발하는 교육을 시작한다. 교육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 시내의 유치원에는 현미경 사용법만 전문으로 가르치는 과학 교사가 있을 정도다. 초등학교에선 본격적으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친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시범 사업으로 ‘기업가 센터’를 설치했고 모든 초등학생들은 매주 2시간 동안 기업가 정신 교육을 받는다. 기업가센터에서는 여러 가지 회사 운영 방법을 배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수많은 창업 경진 대회에 도전한다. 그들은 가상 회사 또는 실제 법인을 설립해 여러 팀과 경쟁하면서 사업화한다.
군대에서도 기업가 정신 교육이 이어진다.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국민이 만 18세가 되면 병역 의무를 진다.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점과 겹치므로 이스라엘의 고등학생은 졸업 때 대학 선택보다 복무 부대 선택에 더 많은 고민을 한다. 이스라엘 군대는 군사 교육뿐만 아니라 IT·화학·보안 등 첨단 기술을 배우고 실전에 적용하는 제2의 학교로, 경력 개발에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 유명한 특수부대에 입대하게 되면 사회의 엘리트로 거듭나게 된다. 수많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특수부대 출신들이다. 우디 아하로니 텔아비브대 경영대학장은 “이 같은 기업가 정신 교육과정은 이스라엘의 또 다른 수출품”이라며 “미국은 물론 한국 중국에서도 기업가 정신을 배우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이 이스라엘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로니 A. 에이나브 에이나브하이테크애셋 회장&이갈 에를리히 요즈마그룹 회장 “‘고! 글로벌’이 이스라엘 벤처기업 화두”
이스라엘이 창업 강국으로 거듭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기업인들의 투철한 기업가 정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들 기업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정부와 투자가들의 노력 때문이었다. 로니 A. 에이나브 에이나브하이테크애셋 회장이 전자를 상징한다면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그룹 회장은 후자를 대표한다.
“아무리 작은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항상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애초에 작은 목표에 머물러 있다면 큰 성공은 당연히 오지 않습니다.”(에이나브 회장)
에이나브 회장은 ‘이스라엘 벤처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성공 스토리가 이스라엘이 세계적 벤처 강국 거듭나게 된 기본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장교 출신인 에이나브 회장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에이나브 시스템스’라는 소프트웨어 기업을 설립했다. 그는 “애초부터 ‘이스라엘에 머무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좁은 내수 시장 때문에 성장에 분명히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목표는 확실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나스닥에 상장해 기업을 키우는 것이다.
1992년 당시 이스라엘 기업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나스닥 진출 이후 에이나브 회장은 단숨에 350만 달러를 모았다. 나스닥 상장 첫해 회사 매출은 전년의 두 배인 1730만 달러에 달했다.그로부터 10년 후 에이나브 회장은 이 회사를 6억75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에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 BMC에 매각했다. 에이나브 회장은 현재 이 자금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 투자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이스라엘 기업들을 20여 개나 나스닥에 상장시키며 ‘이스라엘 벤처기업의 대부’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그는 현재 30여 개의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에이나브 회장은 “벤처 투자가로서 아직도 끝없이 도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창업 초기의 생각은 일흔 살이 됐음에도 한 치의 변함도 없다.
“이스라엘에서도 요즈마펀드 이전에 정부 지원이나 투자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고민하던 끝에 벤처 캐피털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끌어들였습니다.
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을 창업 국가로 만든 건 바로 이겁니다.”(에를리히 회장)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그룹 회장은 원래 엘리트 공무원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창업 정책의 성공 원동력인 민·관 합동 투자 기금 ‘요즈마펀드’의 설립자다. 그는 “1992년 이스라엘 산업무역부의 수석 과학관으로 근무하면서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결을 연구했다”며 “비결은 자금과 네트워크였다”고 말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1993년 이스라엘 정부와 함께 첨단 과학기술 사업에 투자할 국내외 자금을 유치하는 요즈마펀드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특히 그는 실리콘밸리, 즉 미국의 경험 많은 벤처 캐피털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펀드를 설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자금 확보와 함께 성공 노하우를 이스라엘 벤처기업에 전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글로벌 파트너로서 유대인 네트워크인 디아스포라를 적극 활용했다.
그간 요즈마펀드는 40여 개의 벤처기업과 11곳의 대형 벤처 캐피털 펀드를 탄생시켰다. 요즈마펀드는 2억 달러(약 2200억 원) 규모로 시작해 40억 달러(약 4조4000억 원)로 확장돼 있다. 이스라엘은 요즈마펀드를 기반으로 연간 100억 달러(약 11조 원)의 벤처 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요즈마펀드는 1997년 민영화 이후 1998년 ‘요즈마2’, 2002년 ‘요즈마3’를 설립해 현재 요즈마그룹으로 성장했다. 에를리히 회장은 민영화된 요즈마펀드를 요즈마그룹으로 바꿔 이끌고 있다.
에를리히 회장은 이 같은 요즈마펀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벤처 생태계를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지난 3월 ‘한국형 요즈마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과 궤를 같이한다. 요즈마펀드가 해외에선 처음으로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텔아비브(이스라엘)=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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