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스마트폰은 어느 회사 것이 더 좋은지, 아들에게 과연 최신형 태블릿이 필요한지 설명해 줄 사람은 없을까. 애프터서비스는 ‘고장 나면 고쳐주는’ 일이 아니라 고급 ‘시스템 통합 컨설팅’으로 진화할 수 있다.


고객의 집에 초대 받는다는 것은 장사하는 사람에겐 엄청난 일이다. 남을 믿지 못해 문을 꽁꽁 잠그고 살고 있고 회사 제품을 한 번 알리기 위해 광고비를 쏟아붓는 현실에서 고객을 직접 찾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고객과 호흡할 수도 있지 않은가. 화장품 방문판매, 학습지 서비스, 정수기 필터 교환 등은 모두 고객의 집에 들어가는 엄청난 기회를 통해 성공한 사업들이다.

이렇게 보면 고객 접점에서 가전제품·케이블·인터넷을 설치해 주고 보수해 주는 애프터서비스 기사들은 무한한 잠재 가치를 안고 있다. 대용량 세탁기를 수리해 주면서 아이를 키우는 집에 소용량 세탁기가 하나 더 있으면 얼마나 편한지 설득할 수도 있다. 기사가 조금 더 유능하면 신발 세탁, 세제 선택까지 ‘전문적 조언과 추천’도 가능하다. TV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TV에 컴퓨터를 연결해 주고 동영상 다운로드를 가르쳐 주면 고객은 며칠 내로 외장 하드를 찾게 된다. 시간 맞춰 TV 앞에 기다리는 ‘본방 사수’를 떠나 보고 싶던 드라마 영화를 무더기로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잔뜩 복잡해진 정보기술(IT) 기기들을 생각해 보자. 수백 만 원 하는 최신형 TV의 기능을 과연 얼마나 알고 쓰고 있을까. 케이블은 잘 안 나오고 인터넷이 끊기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는 고객이 얼마나 되고 컴퓨터·스마트폰·태블릿을 자유자재로 업데이트 하고 주소록과 사진을 백업하는 고객이 얼마나 될까. 혹시 할 줄 알아도 먹고살기 바빠 미루다가 먹통이 되고 후회하는 일은 없을까. 또 신형 스마트폰은 어느 회사 것이 더 좋은지, 중학생 아들에게 과연 최신형 태블릿이 필요한지 설명해 줄 사람은 없을까. 이쯤 되면 ‘고장 나면 고쳐주는’ 일이 아니라 고급 ‘시스템 통합 컨설팅’이 된다. 한 가족의 집안 살림 전반을 조언하는 셈이니 IT 기기, 전자제품, 나아가 홈 인테리어 구매를 이끌 수도 있다.

사실 기업 현장에서는 이런 통합과 조언의 서비스가 이미 각광받고 있다. 삼성SDS와 SK C&C 등이 대표적인 회사들이다. 최고경영진은 직장은 물론 집이나 출장지에서도 불편함 없이 IT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검토하고 지원한다. 그렇다면 일반 가정은 케이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서비스 기사와 가전제품 애프터서비스 기사가 도와주고 거리마다 있는 통신 대리점에서도 도와줄 수 없을까.

전통 산업에 인터넷·문화·정보를 더해 가치를 만든다는 창조 경제, 누가 현장에서 묶어주고 더해줄까. 애프터서비스가 창조 경제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얘기고 IT 산업에서 고용 효과가 가장 크고 재교육 가능성도 높은 부분이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제대로 된 방문 기사를 키우고 지원하는 투자가 더해져야 한다.

그러나 애프터서비스의 현실은 다르다. 자칫 사용법도 모르는 ‘사모님’ 심기나 건드리는 날엔 불호령이나 듣는 ‘빛 안 나는 일’이다. 찬란한 경력의 ‘전문가’들이 고액 연봉을 자랑하는 판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새로운 사업의 기회가 자라고 있다. 현명한 경영자라면 (요란하게 ‘첨단기술’ 운운하기 전에) 꼭 한 번 살펴야 할 일이 아닐까.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1964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삼일회계법인, 대우그룹. 2002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