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소형차 강한 르노·푸조 위한 기술 장벽 역할…한미 통상 이슈화 조짐

<YONHAP PHOTO-0090> New vehicles are parked in a lot in the Sevelnord Automobile factory in Hordain, northern France, November 19, 2008. Sevelnord, which produce vans for Peugeot, Citroen and Fiat, announced the reduction of production and an implemented seasonal factory closure to manage large stocks of unsold vehicles.   REUTERS/Pascal Rossignol (FRANCE)/2008-11-20 01:20:26/
<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New vehicles are parked in a lot in the Sevelnord Automobile factory in Hordain, northern France, November 19, 2008. Sevelnord, which produce vans for Peugeot, Citroen and Fiat, announced the reduction of production and an implemented seasonal factory closure to manage large stocks of unsold vehicles. REUTERS/Pascal Rossignol (FRANCE)/2008-11-20 01:20:26/ <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현재 저탄소차 협력금제를 시행하는 국가로는 프랑스가 있다. 벨기에의 일부 지역(왈롱)과 싱가포르·덴마크·오스트리아 등에서 저탄소차 협력금제와 비슷한 개념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자동차 강국으로서 제도를 실시한 곳은 프랑스가 유일하다.

프랑스는 저탄소 차량 구입을 통해 환경을 보호하고 소비 패턴 변화를 유도하며 친환경 기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2008년부터 보조금-부담금(bonus-malus)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은 300~5000유로를, 부담금은 200~2600유로를 부과하고 있다.

환경부가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프랑스의 ‘보너스-말뤼스’ 제도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는 프랑스 제도가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한 독특한 제도였다는 데 주목한다. 프랑스는 당시 디젤엔진과 소형차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던 르노·푸조 등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사실상 기술적 무역 장벽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자동차 회사의 지분을 보유(르노 15%, 푸조 18.4%)하고 있어 국영기업 성격이 강한 프랑스가 소형 디젤차와 전기차 산업 발전을 국가적 목표로 삼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2008년 도입한 제도였다”고 말했다.


프랑스 CO2 감축량 독일보다 저조해
실제로 2007년 프랑스 자동차 시장에서 르노·푸조 등 프랑스 자국 메이커는 전년 동기 대비 0.2% 시장이 줄어드는 반면 수입차는 전년 대비 7.6% 성장했다. 그러나 보너스-말뤼스 제도가 본격 시행된 2008년에는 프랑스 자동차 시장에서 프랑스 메이커는 전년 대비 2.1% 판매가 증가한 반면 수입차 메이커들은 3.9% 감소세를 보였다. 보너스-말뤼스 제도 도입으로 당시 프랑스 시장에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던 수입차 메이커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았던 중대형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의 판매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프랑스는 그러나 제도가 시행될수록 수익성 악화 등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약화에 부닥쳤다. 소형차나 전기차 시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형차는 경쟁력에서 밀려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경쟁력이 저하된 것으로 판단된다. 2010년 이후 프랑스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감소세로 전환되고 고급차 위주의 독일 업체 점유율은 증가했다.

더욱이 온실가스 저감률도 유럽연합(EU) 평균보다 낮아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 기여했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프랑스의 이산화탄소 감축량이 독일이나 유럽연합(EU) 국가에 비해 더 적다”며 “생각보다 효과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정책을 수정했다. 저탄소차로의 전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제도 시행 초기 재정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찍’보다 ‘당근’을 주는 정책을 통해 제도가 정착될 수 있게 했다. 15년 이상 노후 차량 폐차 후 신차 구매자에게는 추가로 지원금을 주는 ‘슈퍼 보너스’ 제도를 운영해 자동차 내수 시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해 나갔다.

한국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산업 경쟁국이며 자동차가 국가 기간산업인 일본·미국·독일이 왜 시행하지 않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의 시장 중립성과 자국 경쟁력 등을 고려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미국·일본·독일 등은 저탄소 협력금제가 아니라 평균 연비를 높이는 방식으로 평균 연비·온실가스 규제 정책을 시행 중이다.

한국은 자동차 온실가스·연비와 함께 저탄소 협력금제라는 ‘중복 규제’로 경쟁국에 비해 규제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프랑스의 보너스-말뤼스 제도는 기존 등록세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도입됐지만 한국의 저탄소 차협력금 제도는 기존 등록세에 추가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더욱이 한국과 유럽은 자동차 환경이 매우 다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한국은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형 모델을 별도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상황이 엄연히 다른 데도 유럽 모델을 그대로 도입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최준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저탄소차 협력금제뿐만 아니라 환경오염 시설 통합 관리, 대출권 거래제 등 환경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이 다 유럽 쪽 법안인데, 한국의 환경에서 과도한 규제가 아닌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저탄소차 협력금제를 단지 환경부 대 자동차 업계의 대결로 보기보다 거식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새롭게 부각되는 ‘한미 통상 갈등 이슈’도 고려 대상이다. 저탄소차 협력금제와 관련해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미국과 한국 업체가 힘을 합치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같은 수입차 업체라고 하더라도 유럽은 표정 관리를 하는 반면 미국은 정부까지 나서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미국무역대표부가 지난해부터 저탄소차 협력금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데 이어 최근에는 고위 관계자들이 잇달아 제도 시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한 미국무역대표부 브하이언트 트릭 한국담당 부대표는 환경부 고위 공무원을 만나 “부담금 부과 구간이 미국 업체에 불리하게 설계되는 등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며 제도 도입을 전면 재검토하거나 도입 시 충분한 유예 기간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웬디 커틀러 미국무역대표부 대표보도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주제로 미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미국 자동차 업계가 한국의 저탄소 협력금제를 시행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밝혔다.


대미 수출에 불똥 튈라
미국 통상 전문 매체 ‘인사이드US트레이드’에 따르면 미 주한상공회의소가 최근 한국 정부와 미국무역대표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미국산 자동차 구매자는 대당 평균 504만1000원의 부담금을 내야 하지만 한국산은 108만5000원, 일본산은 146만6000원, EU산은 176만4000원을 부담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환경부가 밝힌 안대로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시행되면 지난해 1774대로 가장 많이 판매된 미국차 포드 익스플로러는 235g의 탄소를 배출, 시행 첫해부터 700만 원을 부담금으로 내야 한다. 포드 토러스 2.0은 300만 원, 크라이슬러 지프 차량들은 300만~700만 원의 부담금이 적용되고 친환경차인 포드 퓨전 하이브리드조차 중립 구간으로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이처럼 미국이 강경 반응을 보이면서 대미 수출과 한국 정부가 참여를 추진하고 있는 TPP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이 TPP 협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참여국들의 승인이 필요한 상황에서 저탄소차 협력금제 도입이 도화선이 돼 대미 통상 관계가 악화되면 대미 수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미 수출은 전년보다 6% 증가한 620억 원으로 중국에 이어 둘째로 큰 수출 시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수출 최대 품목인 자동차마저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고 한국 자동차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보조금을 받는 수입차들의 공세로, 해외에서는 최대 수출 시장에서의 견제로 한국 자동차 산업이 안팎으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