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 없이는 작품 제작 불가능, 한류 타고 해외 진출 노리는 기업 적극적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는 작품의 인기만큼이나 주인공들이 사용한 옷과 신발·액세서리·화장품 등이 연신 화제에 올랐다. 도민준 운동화·코트, 천송이 망토·립스틱 등 일일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른바 PPL이다. PPL은 프로덕트 플레이스먼트(Product Placement)의 약자로, 드라마·영화·예능 등에 기업의 상품이 간접적으로 광고되는 것을 통칭하는 말이다. 최초의 PPL은 1982년 영화 ‘E.T.’에서 나왔다. 주인공 외계인이 먹은 M&M초콜릿이다.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M&M초콜릿 판매량도 급속도 늘었다. 애초 PPL을 제안했던 경쟁사는 “외계인과 초콜릿이 어울리기나 하느냐”며 제안을 거절했다는데, 영화가 상영되면서 땅을 치며 후회했을지 어땠을지는 안 봐도 훤하다.

국내에서 PPL을 포함한 간접광고가 허용된 것은 2010년 5월 들어서다. 생각보다 짧은 역사지만 시장 규모는 해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무분별한 광고 남발을 막기 위한 규제도 있다. 총 방송 시간의 5% 이내, 브랜드당 30초 이내, 제품 크기가 전체 화면의 4분의 1을 넘지 않는 선에서 브랜드를 노출할 수 있다. 이 같은 방송법시행령 개정으로 PPL은 정식 방송 광고 유형으로 도입됐고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판매하고 있다.

업계에선 PPL을 통상 네 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가장 비싼 것이 ‘직업군’이다. 남녀 주인공이 일하는 직장이 극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방식이다. 2009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 구혜선이 일했던 죽 전문점 B사는 드라마 방영 후 40% 이상 매출이 뛰어오르며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죽 전문점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직업군 PPL은 다시 주인공이 일하는 메인과 조연급이 일하는 서브로 나뉘는데, 협찬 금액은 보통 5억~8억 원 사이다. 대형 사극에서 세트장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경우 10억 원 선이다. 매회 종영 시 등장하는 협찬 기업 자막도 1순위가 바로 이 직업군 PPL이다. 50부작 드라마라면 50번씩 화면 가득히 기업 로고가 광고되는 셈이다.


직업군·자막·상품 협찬 등 종류도 다양
직업군에 이어 ‘장소 협찬’도 중요한 PPL이다. ‘신사의 품격’에서 이종혁이 운영하는 것으로 나온 스무디 전문점 M사가 대표적이다. 주인공이 사용하는 제품 PPL의 경우 회당 2~3회가 일반적인데 비해 직업군과 장소 협찬은 꾸준히 노출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직업군과 장소는 구별하기가 모호한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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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자막’이다. 자막 노출에도 순서가 있다. 직업군 PPL 등 메인이 1번, 서브 직업군이 2번이다. 3번부터 마지막 직전까지는 금액이 같다. 마지막 엔딩은 노출 시간이 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드라마 엔딩은 15초를 넘지 못한다는 규정 때문에 자막 맥시멈은 12개 정도다. 최근엔 경기가 좋지 않아 3~5개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흔히 PPL로 뭉뚱그려 부르는 건 ‘상품’ 협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라마에선 꾸준히, 예능 프로그램에선 단발성 계약이 이뤄지는데 레벨 1, 2로 나뉜다. 예를 들어 특정 음료가 단순 배경으로 등장하면 레벨 1, 등장인물이 직접 마시면 레벨 2다. 금액은 당연히 레벨 2가 훨씬 비싸다. 아침 일일 드라마는 레벨 1이 500만 원, 레벨 2가 1000만 원 선이다. 인기 있는 수목 미니 시리즈는 레벨 1이 1500만 원, 레벨 2가 3000만 원으로 뛴다. KBS 주말 드라마는 특별 케이스다. 시청률 30~50%가 기본이기 때문에 자막 하나만 해도 2억 원에 이른다. ‘왕가네 식구들’의 경우 공식 PPL로만 50억 원을 챙겼다. ‘K팝스타’, ‘런닝맨’, ‘무한도전’,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인기 예능도 레벨 1이 1500만 원, 레벨 2는 3000만~4000만 원에 달한다. 요즘 가장 핫한 프로그램은 추사랑 신드롬을 일으킨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 ‘추사랑이 한 번 사용한 제품은 1억 원의 가치가 있다’는 게 요사이 업계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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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도민준 운동화’는 제작사와 공식 계약한 PPL이 아니다. 이런 경우 해당 연예인의 소속사나 코디네이터가 개인 협찬으로 물품을 받거나 전속 스타일리스트가 결정하는 사례가 많다. 천송이가 두르고 나온 망토가 어느 회사의 어느 제품이고 가격이 얼마인지는 알 수 있어도 전지현이 그 대가로 얼마를 받았는지는 당사자들만 아는 속사정이다. 실제로 ‘별그대’ 전지현의 경우 유명 스타일리스트인 정윤기 인트렌드 대표가 스타일링을 전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PPL은 기업과 제작사·방송사 등이 계약하는 관계를 말한다. 이에 따라 협찬 금액이 얼마인지도 알려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스타들이 입거나 사용하는 개인 협찬들은 어떤 경로로, 얼마를 받았는지 당사자들 외에는 알기 어렵다. 일례로 ‘별그대’에서 도민준이 신고 나온 M사의 운동화는 김수현의 스타일리스트가 개인적으로 협찬 받은 제품이다. M사로선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엄청난 광고 효과를 본 것. 주인공들이 주고받던 모바일 메신저 ‘라인’도 인기를 끌었지만 조연인 신성록이 ‘카톡개’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카카오톡’ 역시 공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린 재미있는 사례도 있다.

방송국 편성이 확정되면 각 제작사에서는 전문 마케팅 PD들이 영업에 나선다. 공중파 자제 제작물도 마찬가지다. PPL 활용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PPL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드라마·예능을 가릴 것 없이 외주 제작 환경이 커지고 스타들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PPL 없는 제작비 마련은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20억~30억 원 유치해야 작품 제작 가능
PPL 대행 전문사 ‘153프로덕션’의 김시현 대표는 “드라마 한 편당 PPL이 보통 5~12개는 돼야 한다”면서 “메인 직업군에서 5억 원, 서브에서 4억 원, 상품 협찬으로 2억 원, 자막 2억~3억 원 등 20억~30억 원을 유치해야 작품 제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김수현·전지현 조합 같은 경우 메가 히트가 예상되는 특별한 케이스여서 공식 PPL만 10여 개에 달했다”고 밝혔다. 반면 같은 시간대 경쟁작이었던 MBC의 ‘미스코리아’는 흥행 경쟁에서 밀리며 공식 PPL이 3개에 그치기도 했다.

PPL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광고 효과로는 PPL 못지않은 방법도 있다. 제작 지원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동차 협찬. ‘별그대’에서 주인공 천송이가 ‘붕붕카’라고 불렀던 벤츠 E클래스 카브리올레는 대박을 쳤다. 로고를 가리긴 하지만 시청자들이 몰라보는 것도 아니어서 광고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제작사도 공식 PPL이 아닌 제작 지원의 경우 광고비 전액을 회수할 수 있어 오히려 더 반기는 추세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코바코 등에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PPL보다 제작 지원의 규모가 더 커졌다.

드라마에 상품이나 로고가 등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대박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극의 흐름과 스토리텔링을 해치지 않는 것이 PPL의 제1 성공 조건이라고 말한다. 톱스타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흥행하는 건 아닌 것처럼 극의 흐름을 깨는 과도한 PPL 남발은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대박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도 최종회에서 백수건달 주인공이 PPL 피자집 사장으로 변신하자 “개콘을 보는 것 같다”는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 번 재미를 본 업체일수록 PPL에 더욱 적극적”이라고 한다. 커피 전문점, 아웃도어 브랜드, 치킨 브랜드 등이 공격적으로 PPL 마케팅에 뛰어드는 업체들이다. 최근에는 ‘한류’ 스타들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해외 진출을 노리는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업체 등이 PPL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