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혁신의 시대인가. 스티브 잡스라는 혁신의 아이콘이 풍미한 시절이니 혁신이란 단어가 늘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안 되는 게 없는 모습은 분명 1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혁신의 표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다. 모바일 플랫폼과 인터넷의 발달이 음악 감상이나 쇼핑을 편하게 만든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전기와 자동차의 발명, 세탁기와 냉장고의 등장 등이 우리의 삶 자체를 바꾼 진짜 혁신이라면 인터넷의 발달은 단순한 ‘생활의 개선’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인터넷이 발달했다고 해서 노동시간이 대폭 감축됐거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증가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오늘날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공짜 전기 같은 대단한 혁신이 없기 때문에 생산성의 둔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세계경제가 왜 저성장으로 흘러가는지 든 이유 3가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생산성의 둔화다.
손 교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후 미국으로 건너가 피츠버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플로리다주립대와 하버드 경제대학원을 졸업했다. 웰스파고은행 수석 부행장 및 최고경제책임자, 백악관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선임 경제학자 등 세계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경제학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석학으로 꼽힌다.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저자는 2016년까지 전 세계적인 저성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왜 글로벌 성장이 둔화될 수밖에 없는지, 어떤 국가가 경제적 위협에 직면할지, 새로운 패러다임 속 기업의 승자는 누가 될지, 개인의 성공적인 투자 분야는 어디인지 등이 책 안에 담겨 있다.
느려지는 중국의 경제, 부활의 미국, 시들해진 신흥국을 비롯한 한국의 미래, 리버스 이노베이션으로 상징되는 기업의 전략 등이 모두 흥미롭다.
특히 1930년대 대공황 당시를 예를 들며 엔화 대비 고평가된 한국의 원화를 평가절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영국, 특히 일본은 양적 완화를 도입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수출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저자는 한국의 무역 대부분이 아시아 국가들과 이뤄지는 만큼 한국은행이 원화 가치 평가절하를 도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종우의 독서 노트
‘정도전과 그의 시대’
세상이 다시 부른 역사의 영웅
태종 이방원은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정몽주와 정도전. 똑같이 살해했지만 집권한 후 두 사람에 대한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정몽주는 복권시켜 성리학의 태두로 남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줬다. 조선 중기에 사림들이 공자를 모시는 사당에 위폐를 안치하는 ‘오현종사(五賢從祀)’ 대상에 정몽주를 넣을 것인지 고민한 것도 태종의 복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정도전은 간신이란 단어를 안고 살아야 했다. 실록에 그렇게 기록했고 심지어 영원히 복권시키지 말라는 얘기까지 남겼다. 참 이상한 일이다. 조선의 국왕이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가 죽은 사람은 받들고 건국의 틀을 만든 사람은 버리다니…. 역사의 평가보다 살아있는 권력이 더 강했던 모양이다.
정도전 만큼 후세의 평가에 의해 운명이 뒤바뀐 인물도 없다. 조선 전체를 통틀어 광해군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 태종이 정도전을 간신으로 몰아버린 건 이유가 있다. 아버지인 이성계가 건국에 공이 컸던 자신을 제쳐 놓고 막내아들을 태자로 삼는 데 찬성했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정치’란 걸 만들어 왕권을 제약하려고 한 인물이기도 했다. 절대군주를 꿈꾸던 태종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정도전이 500년이 지난 후 역사가들의 재평가를 통해 위민(爲民)을 생각했던 혁명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도 정도전이란 존재에 대해 토를 달지 않는다. 진정한 역사의 승리자가 된 셈이다.
정도전은 천재다. 학문이 깊은 건 물론 불교에 관한 책도 쓰고 한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 궁궐의 위치와 이름을 지었다. 법전을 편찬하고 심지어 아악을 정리하는 책까지 만들기도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시를 쓰는 정치가, 거기에 종교와 건축에 능하면서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인 셈이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한 것도 놀랍지만 게다가 잘하기까지 했으니 능력의 끝이 어딘지 알기 어렵다.
조선은 문을 닫는 날까지 정도전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가 채택한 유교 이념의 나라라는 틀이 500년 동안 계속됐고 재상 중심의 정치 역시 태종·세조 같은 몇몇 왕 때를 제외하곤 변함없이 이어졌다. 정도전 열풍이 불고 있다. 드라마의 영향도 있지만 지금 상황이 답답한 이유도 있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하지 못하면 다른 대상을 통해 대리 만족이라도 얻으려고 하는 존재다. 지금 느끼는 행복 지수가 고려 말의 행복 지수보다 높지 않는 한 정도전 열풍은 계속될 것이다.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ee@imvestib.com
사내기업가정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e메일 서비스 지메일(Gmail)은 구글의 엔지니어인 폴 부크하이트의 제안으로 세상에 나왔다. 기존 e메일 시스템에 불편함을 느낀 그는 재미 삼아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구글 경영진은 그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획기적인 아디이어는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에게서도 나오지만 조직 구성원들에게서도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조직 내에 사내 기업가 정신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은 조직 자체에 혁신 DNA를 심는 것과 같다.
케빈 데소자 지음│벤자민홍 옮김│IGM북스│366쪽│2만 원
스냅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느낌’에 따른 판단과 예측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 드포대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괴짜 심리학자로 통한다. 그는 책을 통해 사진을 찍을 때와 같이 매우 짧은 순간에 포착한 외부 단서를 가지고 우리의 예측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증명해 낸다. 수십 년 전 사진 한 장, 소리 없는 1분짜리 비디오, 심지어 20분의 1초라는 짧은 순간에 지나간 얼굴만으로도 지능지수, 성적 취향, 선거 결과 등을 정확히 판단해 낸다.
매튜 헤르텐슈타인 지음│강혜정 옮김│비즈니스북스│336쪽│1만5000원
대구
물고기가 인간의 전쟁과 혁명을 좌우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마크 쿨란스키는 논픽션 분야 명저로 손꼽히는 ‘대구(Cod)’에서 “그렇다”고 단언한다. 어부 집안 출신으로 대구잡이 저인망 어선에 승선한 바 있는 저자가 시카고트리뷴의 카리브해 특파원으로 대구의 모든 것, 즉 역사상 대구의 역할과 생태, 요리법까지 7년간 밀착 취재하고 고증한 역작이다. 1998년 처음 출간됐던 한국어판에서 대거 누락됐던 내용을 온전히 살려 보완했다.
마크 쿨란스키 지음│박중서 옮김│RHK│363쪽│1만6000원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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