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통화정책 자문위원의 苦言…디플레이션 가능성 없나 꼼꼼히 따져봐야

이주열 한국은행총재 내정자가 3일 한국은행 별관에서 소감을 밝힌 뒤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이주열 한국은행총재 내정자가 3일 한국은행 별관에서 소감을 밝힌 뒤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존경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님. 우선 통화정책의 수장으로 내정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내정자께서 부총재로 있을 때 저는 통화정책 자문위원을 하면서 내정자를 곁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1.3% 오르는 데 그쳐 한국은행이 목표로 하는 2.5~3.5%보다 아래로 크게 벗어났습니다. 올 들어서도 2월까지 1.1% 상승해 안정세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물가 안정이 일시적인지 아니면 디플레이션을 예고하는 것인지 판단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 능력을 재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일시적 현상인가 구조적 문제인가
경제성장 능력을 따질 때 우리는 흔히 잠재성장률을 이야기합니다. 2013년 말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추정해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지난 5년(2008~2012년) 동안 잠재성장률은 연평균 3.8%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2.9% 성장에 그쳤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3~2017년 잠재성장률을 연평균 3.5%로 추정했습니다. 이렇게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이유는 우선 생산을 결정하는 노동 증가가 거의 없을 것이고 이미 자본이 많이 축적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본도 크게 늘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잠재성장률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총요소 생산성이 증가해야 합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3년 이후 5년 동안 총요소 생산성의 잠재 성장 기여도가 2.2% 포인트로, 그 이전 5년(1.4% 포인트)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슈 인사이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께
한국 경제가 잠재 성장 능력 이하로 성장하는 것은 국내외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1996년에 총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였지만 2012년에는 57%로 높아졌습니다.

문제는 세계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다는 데 있습니다. 우선 세계경제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미국 경제가 능력 이하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의 GDP가 한 단계 떨어졌습니다.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2013년 4분기 현재 실제 GDP를 잠재 GDP보다 약 7% 낮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한편 중국 경제도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2009년에는 세계경제가 1990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0.4%)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는 2009년 오히려 10%나 성장, 올림픽을 개최했던 2008년 9%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지요.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졌는데도 중국이 어떻게 이처럼 높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수를 부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중국 정부는 투자 중심으로 경기를 부양해야 했고 이에 따라 총고정 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에 35%에서 2011년에는 48%까지 상승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각 산업에서 과잉투자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철강 산업의 가동률이 70% 정도로 매우 낮은 수준이고 다른 산업도 대부분이 공급과잉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습니다.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늘어나 디플레이션 상태가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한국 가계 부채가 이미 높은 상태에 있고 저축률이 낮기 때문에 가계 소비가 증가해 경제성장을 주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진행되는 나라인데, ‘노인들은 디플레이션을 좋아한다’는 말도 귀담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주열 내정자님, 수요 공급 측면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능력을 재평가하고 지금 존재하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일시적인 것인지 구조적인 것인지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장과 소통 능력도 중요
다음으로 물가 목표에 대해서도 다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최근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니 한 위원이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높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매월 가계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9%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1%인 것을 고려하면 소비자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 심리는 여전히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기대 인플레이션은 실제 인플레이션에 후행합니다. 실제 인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 목표를 오랫동안 밑돌면 기대 인플레이션이 낮아집니다. 제가 분석해 봐도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기대 인플레이션율의 상관관계는 3~4개월의 시차를 두고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후행했습니다. 특히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소비자물가를 구성하는 음식 및 숙박 물가와 상관계수가 매우 높았는데, 2012년 하반기 이후부터 음식 및 숙박 물가 상승률도 1%대에서 안정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이만큼 떨어지면 아마도 한국 경제는 디플레이션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행 총재의 역할 중 하나로 시장과의 소통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시장과의 소통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을 직관하고 대응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25년 동안 경제 분석가로 일하면서 시장이 참 똑똑하다는 사실을 지켜봤습니다.

시장이 보내는 신호 중 하나는 장·단기 금리 차이와 경기의 관계입니다. 제가 분석해 본 결과 장·단기 금리 차이는 경제성장률에 2분기 정도 선행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과관계를 검증해 봐도 장·단기 금리 차이가 경제성장률에 일방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장에서 매일매일 금리를 관찰하면 미래의 경제를 내다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올 들어 국고채 수익률(10년)이 3.5% 안팎(3년물은 2.9%)으로 한국은행이 예상하는 경제성장률 3.8%보다 낮습니다. 국채 수익률이 실질금리의 대용 변수로 사용되는 실질 경제성장률보다 낮다는 것은 앞으로 경제성장률 둔화나 물가 상승률 하락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과거 통계를 보면 그해 국채 수익률이 실질 경제성장률보다 낮을 때 다음해 경제성장률이 떨어졌습니다. 시장과 소통하면 선제적 통화정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내정자께서 한국은행 총재로 취임할 무렵에도 미국의 양적 완화의 축소 지속,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 등의 문제로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할 전망입니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그 지속성은 자신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2008년에 그러셨던 것처럼 차분히 대응하고 특히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