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 한류 인식 조사, 드라마·영화·음악 경쟁력 높게 평가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210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430만 명으로 전년 대비 53% 증가하며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힘’을 과시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단연 ‘한류’가 자리 잡고 있다. ‘K팝’과 문화 콘텐츠에서 촉발된 한류의 영향력은 화장품·의류·가전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며 ‘한류 3.0’ 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지속 가능한 한류와 경제적 파급력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13년 현직 최고경영자(CEO) 2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류가 향후 5년 이상 지속할 것이라는 응답은 40%인 반면 5년 이내에 그칠 것이라는 답변은 47%였다. 한류가 수출 증대 등의 경제적 효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많은 연구와 콘텐츠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와 관련한 설문 조사가 나와 눈길을 끈다. 서울 진선여고 허재인(18) 양이 진행한 ‘한류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 조사’가 그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류 문화의 가능성을 물었으며 같은 질문을 내국인에게도 던졌다.

외국인 대상 ‘가장 좋아하는 문화 공연 장르’를 묻는 질문에 K팝이 아닌 영화와 TV 드라마가 1순위로 꼽혔다는 점, 한국의 전통문화 예술인 판소리가 최하위를 차지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반면 내국인은 다소 다른 답변을 내놓으며 한류를 놓고 인식 차이를 나타냈다. 외국인 인식조사 내용을 중심으로 한류가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한류가 주목받은 지도 한참 됐다. ‘대장금’과 같은 한국의 TV 드라마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 한국 문화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됐다. TV 드라마 ‘겨울연가’와 욘사마(배용준) 열풍이 오래 지속됐고 K팝은 동남아를 넘어 파리 등지로 퍼져 나갔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한류를 전 세계로 확장했다. 이제 젊은 아이돌 가수와 인기 배우들의 해외 진출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기획 진출,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TV 드라마는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큰 투자 사업으로 기획, 진행되고 있다.


영화·TV 드라마 ‘인기’
연예인들의 개성 넘치는 문화가 무엇보다 큰 바탕이 됐을 것이다. 여기에 큰 기업으로 성장한 연예 기획사들(SM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의 체계적인 기획 상품화 노력도 한몫했다. 이처럼 연예 사업이 해외를 염두에 둔 사업이 되자 고수익을 노리는 여유 자금의 투자도 이어졌다. 연예 사업이 투자 사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 것이다.
[CULTURE] 전통 공연 선호도 하위권…갈 길 먼 한류
그 사이 해외의 중요 영화제에서 의미 있는 상을 받은 한국 영화 작품이 나왔고 관객 1000만 명을 넘는 영화도 국내에서 나왔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 등지에서 인기를 끈 인기 작품이 서울에서 바로 공연될 정도로 국내에서 문화 공연 시장도 커졌다. 한류가 해외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된 데는 우리 내부의 문화 시장이 탄탄하게 성장한 게 크게 기여한 셈이다.

그렇다면 여러 장르에 걸친 한류에 대해 정말로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여러 문화 장르가 성공적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고 어떤 공연물이 외국의 문화와 쉽게 접목할 수 있을까. 외국인 관광객에게서 한류 문화의 이런 가능성을 직접 물었다. 이번 조사는 2013년 10~12월 남이섬을 찾은 외국인 및 내국인 505명을 상대로 진행됐으며 그중 외국인은 212명이었다. 외국인은 중국·말레이시아 등 12개국에 걸쳐 분포됐다.

‘한국 방문에서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것은 무엇이었나’는 질문(복수 응답 유도)에서는 ‘한국 문화 체험’과 ‘한국 음식 체험’이 나란히 34%로 가장 많이 나왔다. ‘한국의 명승지 탐험’이 24%로 그 뒤를 이었으며 ‘레포츠 체험+쇼핑’이라는 답도 5%였다. 내국인들도 이 질문에서 같은 순서로 답했다.
[CULTURE] 전통 공연 선호도 하위권…갈 길 먼 한류
이번 설문 조사의 핵심 내용인 한류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선호도 조사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문화 공연 장르는 무엇인가’라는 문항에서는 ‘영화(26%)’ ‘TV 드라마(26%)’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음악(K팝, 22%)’이 그 뒤를 이었다. K팝이 한류의 대명사인 것처럼 알려진 측면이 있지만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한류 장르라는 대답이 TV 드라마와 함께 제일 많이 나온 점이 주목된다. ‘클래식 음악(7%)’과 ‘연극(5%)’보다 ‘판소리 및 사물놀이(3%)’라는 응답이 적었다.

한국 전통의 고유문화라고는 하지만 전통적인 국악의 세계화·국제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 질문에서는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들이 다소 차이를 보였다. 내국인들은 영화(31%), 뮤지컬·오페라(17%), TV 드라마(13%), 음악(K팝, 12%)의 순으로 답했다. 영화가 가장 좋다는 응답이 가장 많은 것이나 판소리 및 사물놀이(4%)에 대한 호응이 적다는 점은 똑같다. 다만 TV 드라마는 확실히 외국인들이 내국인보다 더 좋아하는 한국의 문화 공연 장르로 나타났다.

한국의 문화 공연물이 해외로 진출할 때 가장 경쟁력 있는 장르는 무엇일까. 한류의 국제화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할만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여러 한류 문화 중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지원할 때 필요한 정보이기도 하다. ‘한국의 문화 공연물 중 해외 문화 시장에 한류 상품으로 내보낼 때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 장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외국 관광객들은 ‘TV 드라마(28%)’, ‘영화(26%)’, ‘음악(K팝, 25%)’을 주로 거론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세 장르는 거의 비슷한 비율로 응답이 나왔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문화 장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거의 같은 대답 구조였다. 외국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해외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 사실상 같았다.


판소리 수출, 희망 사항에 그칠 수도
이 설문에서 내국인들은 음악(K팝, 30%)이 가장 경쟁력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TV 드라마(24%)도 낮은 응답도는 아니었지만 순위에서 밀려 외국인과의 인식 차이가 나타났다. 다만 영화(20%)는 비교적 높게 나타나 TV 드라마·K팝·영화가 한류 문화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3대 장르로 볼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한류 문화가 해외 공연물과 결합한다면 어떤 분야에서 가장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 물었다. 이 질문에서도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영화(24%)’, ‘TV 드라마(23%)’, ‘음악(K팝, 22%)’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 질문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르’, ‘가장 경쟁력이 있을 것 같은 장르’에서의 응답과 같은 대답이 나온 것이다. 이 대답에서 ‘판소리 등 한국의 전통예술’은 8%에 그쳐 ‘클래식 음악(6%)’이나 ‘연극(5%)’ 수준에 머물렀다. 그만큼 판소리나 사물놀이와 같은 전통 국악류는 국제 공연물과 거리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 질문에서는 외국인들과 내국인들의 시각이 다소 엇갈렸다. 영화(18%), 음악(K팝, 23%)은 비슷했지만 판소리 및 사물놀이(22%)가 해외 공연물과 직접 결합 대상이라는 대답이 상당히 높게 나왔다. 외국인(8%)보다 월등히 높은 응답 비율인데, 전통 공연물을 내보내고 싶다는 ‘희망 사항’을 피력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일종의 문화의 애국 마케팅 차원의 대답일 수도 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