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SK·한화·CJ순, 금융권도 유리 천장 깨기 시작

1990년대 초·중반 삼성은 대졸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여성 공채’를 실시하기도 했고 다른 대기업들도 매년 100~200명씩 대졸 여직원을 뽑았다. 2014년 현재 이때 입사한 직원들은 20~25년 차인 만큼 현재 과장·부장 등 관리자로서 활약하고 있어야 할 때다. 하지만 상당수가 출산·육아 등 이유로 30대에 회사를 나갔고 남성 직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 장기근속자가 적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는 고위 관리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인력 풀이 급격히 감소하는 결과를 낳아 기업 차원에서는 여성 임원 중용을 의도하더라고 발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성토한다.


삼성 여성 임원 50명 ‘최다’
하지만 이 상황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여성들에게는 경력 단절 없이 기업 내에서 생존하고 실력을 갖추기만 한다면 남성보다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는 의미다.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별을 단다고 표현할 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삼성을 선두로 국내 대기업과 금융권에서 적극적으로 여성 임원 중용에 나서면서 현재 과장·부장급 여성들이 별을 달 기회가 열리고 있다.

여성 임원 중용은 25년 전 여성 대졸 직원 채용에 적극적이었던 삼성이 다시 앞장서고 있다. 과거 여성 인력을 많이 뽑은 만큼 충분한 여성 임원 후보군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2014년 2월 현재 총 50명 여성 임원을 보유해 대기업 중 가장 많다. 그리고 2명의 여성 사장(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과 2명의 여성 부사장(심수옥·이영희 삼성전자 부사장)이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여성도 사장까지 돼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쉽게도 삼성의 여사장·여부사장은 공채 출신으로 수십 년간 삼성에서 성장해 대표까지 일궈낸 여성 성공 신화는 아니다. 2명의 여사장은 오너 일가며 2명의 여성 부사장은 외부에서 임원으로 영입한 사례다. 긍정적인 점은 매년 여성 임원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승진한 여성 임원은 총 15명(신임 14명)으로 역대 최다다. 2011년 7명, 2012년 9명, 2013년 12명으로 매년 상승세에 있다. 지난 연말 있었던 삼성의 여성 임원 승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장세영 삼성전자 상무다. 장 상무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선행요소기술그룹장으로 갤럭시 배터리의 수명을 연장시킨 주역이다. 장 상무의 탁월한 성과를 인정해 파격적으로 30대 임원으로 승진했다.
[30대 그룹ㆍ금융권 여성 임원 현황] 여성 인재 발탁 늘어…인력 풀은 ‘바닥’
LG그룹은 총 14명의 여성 임원을 보유, 30대 그룹 중 둘째다. LG그룹의 여성 임원은 지난해 16명에서 2명 줄었다. LG그룹 전체 임원 780명 중 여성 임원 비율은 1.8%에 불과하다. LG전자는 지난 연말 임원 인사에서 5년 만에 여성 임원을 발탁했다. 주인공은 김영은 LG전자 시스템에어컨사업부 유럽사업지원담당 부장으로 상무로 승진됐고 미국법인 산하의 에어컨·에너지솔루션(AE) 담당을 맡게 됐다. 김희연 LG디스플레이 상무는 내부 발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이어 SK그룹의 여성 임원 수는 12명이다. SK는 올해 그룹 전체 141명 임원 승진자 가운데 여성이 2명 포함됐다. 이 중 강선희 SK이노베이션 지속경영본부장은 SK그룹에서 첫 부사장급 여성 임원이다. 강 부사장은 2004년 정유회사 첫 여성 임원인 동시에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법무법인 춘추 변호사로 일하다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등 화려한 경력으로 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한화그룹은 11명의 여성 임원이 활약하고 있다. 사장급·전무급은 없으며 2명의 상무, 2명 전문위원, 7명의 상무보가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기 부재로 지난해에도 4월에 임원 인사가 난 한화그룹은 아직 올해 인사를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2012년 초 한화그룹 제조업 계열사 중 최초로 여성 임원에 오른 김경은 한화케미칼 바이오사업본부 상무보의 이력에 관심이 쏠린다. 가톨릭의대 피부면역학 연구교수로 재직하다가 2008년 한화케미칼 치료용 항체 관련 사업 등 신사업을 추진하는 바이오 사업개발팀에 합류했다. 현재 바이오 관련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상업화하기 위한 사업개발팀 리더를 맡고 있다.

CJ그룹은 생활문화 기업으로 여성이 활약할 수 있는 사업을 영위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임원은 11명이다. 오너 일가인 이미경 부회장을 필두로 노희영 CJ그룹 브랜드전략 고문, 민희경 CSV경영실 부사장, 3명의 상무, 5명의 상무대우로 구성돼 있다. CJ그룹은 지난해 10월 정기 임원 인사에 2명의 여성 임원이 포함됐다. 노혜령 CJ(주) 홍보기획담당 상무대우와 권미경 한국영화사업본부장이 각각 상무와 상무대우로 승진했다. 권 상무는 여성이자 마케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영화 투자와 마케팅을 총괄하는 임원 자리에 올랐다. 노 상무는 CJ E&M에서 영화부문 업무를 담당하다가 지난해 6월 이재현 회장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CJ홍보실로 자리를 옮겼다.


KT 작년 27명에서 올해 7명으로
30대 기업 중 나머지는 모두 여성 임원이 10명 미만이다. 특히 지난해 여성 임원이 27명에 달했던 KT는 올해 7명으로 그 수가 크게 감소한 것이 눈에 띈다. 이석채 전 회장이 탈통신 사업을 내세우며 여성 임원을 대거 등용했지만 최근 황창규 신임 회장이 주력인 통신 사업에 집중하며 인적 쇄신을 추구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송정희 전 부사장(플랫폼&이노베이션부문장), 오세현 전 전무(신사업본부장), 김은혜 전 전무(커뮤니케이션실장) 등 KT에 여풍을 일으켰던 여성 임원들은 현재 모두 떠난 상태다.

한경비즈니스의 조사 결과 롯데그룹·한진그룹·신세계그룹 각 8명, 현대차그룹·두산그룹·효성그룹 각 5명, 포스코·GS그룹 각 3명, 금호아시아나·현대그룹·OCI·한국지엠 각 2명, 동부그룹·현대백화점이 각 1명으로 집계됐다. 소수의 여성 임원을 보유한 기업들은 최근 전사적으로 여성 인재 발굴에 발 벗고 나서고 있지만 그 수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강력한 여성 인재 육성을 내세우며 지난 1월 말 정기 인사에서 김지은 롯데백화점 해외패션부문장과 한유석 대홍기획 글로벌비즈니스팀장을 새롭게 임원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여성 직원이 쇼핑·호텔 등 서비스 업종이 많음에도 여성 임원 비율은 현저히 낮은 상태고 같은 유통업을 하고 있는 신세계에 비해 현저히 수가 적다. GS그룹의 이경숙 GS건설 국내정유 수행담당 상무보와 전유숙 효성그룹 산업자재PG 상무보는 최초 공채 출신 여성 임원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편 남성 중심의 보수적 문화가 강한 금융권은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국 최초로 여성 은행장(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탄생했고 각 은행마다 ‘최초’로 기록될 여성 임원이 선임됐다. 신한금융그룹은 신한은행 최초의 여성 임원인 신순철 부행장보를 포함해 5명의 여성 임원이 있으며 KB금융그룹 4명, 하나금융그룹 3명, 우리금융그룹은 2명이다. NH금융그룹은 아예 한 명도 없다. 증권사에는 여성 임원 가뭄이 더 심하다. 오너인 대신금융그룹 이어룡 회장을 제외하고는 KTB투자증권에 심미성 상무 정도만 꼽을 수 있다.


여성 임원 ‘제로’를 탈출하라
한경비즈니스가 조사 대상으로 삼은 30대 기업과 주요 금융사 10곳 중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곳은 13곳이었다. 건설·엔지니어링·선박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의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과거 이들 업종은 공대 출신 여성이 적은 영향과 여성들이 기피하는 직종이어서 여성 직원 채용이 드물었다. 최근에 와서야 여성 직원 채용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아직 임원급으로 발탁할 인력 풀이 빈약하다고 이들 기업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에 따라 여성 헤드헌터 1호로 알려진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는 “건설 분야 10대 그룹에서 여성 임원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열심히 찾았지만 여성 임원급을 찾기 힘들었다”며 “현장을 다니는 여성이 (많이) 없고 여성 임원의 자리가 주요 기업에서 아직 마케팅·법·회계·홍보 등에 쏠려 있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