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한 개에 3000만 원 중형차 값이지만 “숙면 위해 지갑 연다”

“잠을 잘 때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푹 쉬고 싶어요.” 지난 2월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그리스 프리미엄 천연 침대 브랜드 코코맡(COCO-MAT)의 쇼룸에 결혼을 앞둔 한 예비 신부 한모 씨가 들어왔다. 그녀는 업무 스트레스로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예비 남편을 위해 프리미엄 침대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 씨가 이날 구입을 결정한 모델은 매장 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트리톤으로, 가격은 3300만 원이다. 침대 한 개가 중형차 한 대 값과 맞먹지만 그녀는 “한 번 사두면 적어도 10년은 넘게 사용하니까 과소비는 아니다”며 “숙면을 취하고 싶은 욕구가 크기 때문에 침대를 사는데 돈을 아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웰슬리핑<well-sleeping>’족 늘며 수면 시장 급성장
수면 관련 고가 제품에 돈 아끼지 않아

이 브랜드의 침대는 대략 1800만~3500만 원에 판매된다. 기존 국내 브랜드의 평균 침대 가격이 200만~500만 원인 것과 비교하면 최대 7배 정도 차이가 나지만 지난 1년 새 20%의 매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스프링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서 얻은 해초류, 허브 식물, 말총, 코코넛 섬유, 면 등 100% 천연 소재만 이용해 매트리스를 제작하기 때문에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는 이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인사를 비롯해 소지섭·심이영 등 유명 연예인들도 이 침대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코맡을 독점 수입하고 있는 하농의 박은정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중년층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초기의 예상과 달리 신혼부부나 30, 40대의 젊은 층들이 더 많이 구입한다”며 “하루 종일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에게 숙면은 아주 중요한 삶의 요소가 되고 있어 프리미엄 침대 시장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 들어온 브랜드 가운데 인기가 높은 해외 프리미엄 침대는 코코맡을 비롯해 스웨덴의 덕시아나와 헤스텐스, 영국의 바이스프링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데이비드 베컴, 안젤리나 졸리 등이 즐겨 찾는 브랜드로 알려진 헤스텐스는 가격이 평균 1억 원대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불황으로 소비 시장이 얼어붙었지만 시장에서는 고가의 프리미엄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는 질 높은 잠에 대한 현대인들의 욕구와 맞물려 있다.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제대로 자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한 불면증 환자 자료를 분석해 보면 불면증으로 실제 치료를 받은 환자는 2008년 25만8000명에서 2012년 42만6000명으로 약 16만8000명이 늘어났다. 5년 동안 65.1%나 급증한 것이다. 불면증 및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다 보니 잘 자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소비 시장 또한 자연히 커지고 있다.

이승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불황의 장기화로 소득 개선은 더디지만 스트레스 요인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면서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웰슬리핑(well-sleeping) 제품에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며 “양질의 수면이 정신 건강 향상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매체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수면 관련 제품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것”이라고 했다.

프리미엄 수면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은 유통 업계의 판매 실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고가의 프리미엄 침대 매출액은 2011년 19.5%(전년 대비) 성장에 이어 2012년 32.7%, 2013년 38.9%로 해마다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소셜 커머스 업체인 위메이크프라이스에서는 베개 판매량이 눈에 띈다. 라텍스나 메모리폼 등 기능성 베개를 비롯해 메밀·바이오침·편백나무 등을 사용한 건강 베개, 안고 자는 대형 베개 ‘보디 필로’ 제품 시장의 니즈가 상승하며 2013년 기준으로 전년 대비 800%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전체 베개 아이템 중 기능성 베개 아이템이 매출의 약 37% 비중을 차지, 베개 라인 중 판매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유통 업계 전문가는 “매트리스나 침대 등은 너무 고가 제품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투자해 수면의 질을 현격히 높일 수 있는 베개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것”이라고 했다.

오픈 마켓 G마켓에서도 2013년 수면 관련 제품의 매출이 전년 대비 60% 성장했다. 이 가운데 건강·숙면 베개는 368%, 귀마개와 소음 방지 제품은 148%, 수면 안대와 아이 마스크도 매출이 77% 늘었다. G마켓 관계자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피로 해소 등 건강 증진을 추구하기 위해 고가의 기능성, 신소재의 침구를 구매하는 등 숙면을 위한 상품 구매에 돈을 아끼지 않는 ‘웰슬리핑족’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향후 1인 가구를 중심으로 힐링 라이프를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며 프리미엄 상품군의 소비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웨어러블 디바이스 연계 비즈니스 예상

한편 수면 산업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을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다고 유통 업계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생활수준이 높고 도시 생활로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이 수면 환경에 관심이 많으며 관련 제품에 대한 구매력도 높기 때문이다. 미국·일본 등에서는 수면과 경제의 합성어인 ‘수면 경제(sleeponomics)’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활발한 수면 연구와 언론 보도 등으로 수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대돼 수면 용품 시장이 커졌다. KOTRA는 수면제, 침구, 수면용 기구 등 미국의 수면 경제 규모가 2011년 230억 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본다.

일본도 수면 산업이 릴랙세이션 사업으로 불리는 등 연관 산업의 규모가 크고 성장세도 가파르다. 경제 불황기에 사람들의 ‘잠이라도 편하게 자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KOTRA 오사카 무역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기업은 스트레스, 수면 장애 등 지금까지 기분의 문제로 인식되기 쉬웠던 수면 문제를 수치화하면서 수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고 새로운 사업으로서의 시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웰슬리핑<well-sleeping>’족 늘며 수면 시장 급성장
체압을 분산해 주는 니시카와 산교의 기능성 매트리스, 스마트폰과 연동해 수면 상태를 기록하고 깨어나기 쉬운 시간을 알려주는 옴론(Omron)의 수면 계측기기 등 침구류 외에 쾌적한 수면을 위한 상품이 다양하게 개발, 판매되고 있다. 또한 의료기기 강국인 만큼 수면에 도움을 주는 소비자용 의료기기의 출시도 이어지며 수면 관련 비즈니스가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일부 호텔에서 수면 전문 컨설턴트들이 활동하는 등 서비스 분야에까지 수면 비즈니스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뒤늦게 수면 시장의 가치와 잠재력을 발견해 현재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수면 산업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규모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수면 장애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수면 전문 클리닉 수 증가, 수면 관련 용품의 매출 급증 등으로 비춰볼 때 향후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수면환경산업협회 관계자는 “대기업은 ‘수면 라인’을 기존 제품군에 추가 기능으로 포함하고 있으며 수면 산업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중소기업들도 최근 기능성 베개 등의 매출 신장세가 두드러지면서 관련 제품 개발에 몰두하는 모습”이라며 “수면 산업 창업 의사를 밝히는 이들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면 시장이 커지며 기존 제품에 ‘치유’ 코드를 접목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기도 하다. 뇌파 음악을 활용한 골전도 숙면 베개, 고글 형태로 착용 시 안구 운동을 통해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고 심리학 콘텐츠가 수록돼 있어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면 안경, 컬러테라피 효과를 이용한 감성 조명, 피로 해소에 도움을 주는 산소 캡슐 등이 대표적이다.

이 연구원은 “현재까지는 수면 양말과 베개 등 간단한 제품들 위주의 수면 비즈니스가 주를 이뤘다면 앞으로는 수면 모니터링 기능이 있는 손목 밴드인 핏비트처럼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을 통해 수면 메커니즘 측정을 개선하거나 보다 과학적인 접근의 수면 유도형 가정용 의료기기 등의 제품들도 활발하게 개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