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세대 대거 이탈로 생존 위기…파격적 아이디어 상품 쏟아내

현역 세대의 보험 이탈이 심상치 않다. 고용 불안, 복지 틈새의 우려라면 자발적 보험 기능의 유지·강화가 맞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보험료 부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 보험 업계는 걱정이 많다. 갈수록 저성장·고령화가 부담스럽다. 유사 환경의 한국이 뒤를 잇는 건 당연하다. 성장 지체에 따른 저금리가 보험 업계의 경영 패러다임을 위협한다고까지 지적한다. 추세적인 해약 증가와 가입 감소가 예상돼서다. 특히 과거 고금리 보험을 팔았던 한국은 저금리에 한층 취약할 수밖에 없다. 투자 수익도 기대난이다. 안타까운 건 저금리가 업계의 통제 영역 밖에 있다는 점이다. 결국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성장 활력의 필요가 절실해졌다. 이때 일본 사례는 중요 힌트다. 곱씹어봄직한 일본의 대응 전략은 크게 둘이다. 미니 보험과 온라인 보험이다.
[GLOBAL_일본] 소액 단기 보험으로 틈새 파고드는 보험사
먼저 미니 보험이다. 기존 보험과 비교해 ‘소액 단기’가 핵심 키워드여서 미니로 불린다.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선 소액 단기의 미니 보험을 둘러싼 활약이 꾸준히 주목받는다. 군살을 뺀 보험료와 짧은 보험 기간을 내세워 시장 니즈를 빠르게 잠식 중이다. 이들 소액 보험사 대부분이 흑자를 기록할 정도로 이례적인 붐이다. 미니 보험은 2006년 보험업법 개정 시행 이후 영업 장벽이 낮아지면서 등장했다. 면허제가 아닌 등록제로 최저 자본금(1000만 엔)만 충족하면 허용된다.

미니 보험의 최대 장점은 기존 발상을 뒤흔든 독창성이다. 포인트는 일반 보험이 커버하지 못하는 일상의 작은 수요에 대비하려는 아이디어다. 즉 소비자의 다양하고 세밀한 욕구에 부합하는 상품을 그때그때 기동적으로 내놓음으로써 틈새시장의 공략을 노렸다. 특히 인터넷 판매가 원칙이기 때문에 친절한 설명은 부족해도 합리적인 보험료 설정이 매력적이다. 업계 단체인 일본소액단기보험협회에 따르면 미니 보험 중 인기 상품은 가재도구·배상 책임이 독보적이다. 지진·쓰나미 등 자연재해 방어 차원에서 가입 건수가 500만 건에 육박하는 필수 보험으로 인식된다. 미니 보험 중 91.2%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그다음은 생보·의료로 4.8%를 차지한다. 최근 급증세인 반려동물은 건수로 2.7%에 불과해도 보험료 기준으로는 7.8%에 달해 유망하다.


일상의 다양한 욕구 채워 주는 미니 보험
아이디어는 파격적이다. 입소문이 한창인 건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Pet) 보험이다. 반려동물은 고령·비혼(非婚)화로 관련 수요가 성장 중인 가운데 질병 발생 때 치료비가 비싸다는 게 고민거리였다. 업계는 이 걸림돌에 주목해 소액 보험을 내놓았다. 약 2000엔대의 보험료로 반려동물의 의료 부담을 낮출 수 있어 인기다. 이 밖에 틈새 공략의 결과물은 다양한 라인업으로 승화됐다. ‘도쿄해상’은 티켓 구매 후 관람하지 못할 경우의 환불 요구에 주목해 티켓 가드 소액 단기를 선보였다. 주최 업체와 공동 개발해 20만 엔을 한도로 이미 지불된 티켓 비용을 보상해 준다. 여행지에 비가 오면 대금을 돌려주는 기후 보험도 있다. 결혼식·장례식 참석자의 사고에 대비해 보험금을 주는 상품(JMM소액단기보험)도 출시됐다. 당뇨병 등 기왕증(기존 병력) 환자를 위한 상품까지 있다. 고독사 등으로 임대료가 체불됐거나 불상사가 발생한 사고 부동산의 원상 복구를 위한 보험도 있다.

현재(2013년 8월) 미니 보험 취급 사업자는 대략 74개다. 제도 도입 이후 계약 건수와 계약 금액 등이 매년 증가하면서 신규 진입이 활발하다. 최대 보험사인 도쿄해상을 비롯해 대형 업체는 소액 단기 보험사를 자회사로 편입해 시장 주도권 장악에 열심이다. 여기에 대기업이 맞불을 놓는 형국이다. 이온그룹·아사히카세이홈즈 등이 대표적이다. 미니 보험의 보험 금액은 최대 1000만 엔, 계약 기간은 최장 2년이다. 가입 절차는 수월한 편이다. 성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미니 보험과 쌍벽을 이루는 새로운 보험 트렌드는 온라인 전용 상품이다. 주지하듯 보험 업계는 역마진 부담 증가로 활로 모색이 시급해졌다. 일단 고비용을 타개하는 조직 개편이 떠올랐다. 전속 설계사의 채널 비중을 줄이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대신 부각된 게 비대면의 선두 주자인 온라인 채널 확대다. 특히 인터넷·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의 활용 인구가 급증하면서 청년 세대는 물론 가격 민감도가 높은 저소득층 눈높이에 맞춘 전략이 주효했다. 물론 ‘설계사→온라인(하이브리드 포함)’으로의 채널 변화는 일찌감치 목격됐다. 다만 저금리 추세가 여기에 힘을 실었다. 온라인을 활용한 사업비용 절감은 결국 보험료 인상 압박을 줄여 보험 수요를 유인할 수 있다. 경기 침체로 가격 민감도가 높고 온라인에 밝은 청년 세대의 흡수가 성공적이다.


온라인 보험, 사업비용 낮춰 보험료 인하
온라인 채널 확대는 시대 변화에 부응한 자연스러운 고민 결과다. 일본 보험 시장은 1990년대부터 변신 압박에 시달렸다. 버블 붕괴로 대출 자산의 부실화와 확대 경영의 후유증으로 거대 생명사가 줄지어 파산하는 걸 목격했다. 역마진 부담도 심화됐다. 이때 설계사 축소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1994년 88%에서 2012년 68%로 줄었으며 이 간극을 온라인·방카슈랑스·대리점 등 신규 채널이 담당했다. 이 와중에 시장 성장은 한층 요원해졌다. 가구당 보험 가입률이 90%를 넘었고 연간 보험료가 국내총생산(GDP)의 11%를 차지하는 포화 시장인 까닭이다. 그 결과가 저비용 효과가 가장 큰 온라인 채널 확대다. 비중은 2009년 2.9%에서 2012년 6.4%로 확대됐다. 스마트폰이 구원투수가 된 건 불문가지다.

온라인 전업 생보사의 원류는 2008년 설립된 ‘넥스티아생명’과 ‘악사다이렉트생명’이다. 시장은 조금 늦게 세워진 ‘라이프넷’이 장악하고 있다. 기존 금융그룹의 자회사가 아니라 고객 기반도 없이 시작한 독자 보험사였지만 급속도로 성장해 관심을 받았다. 라이프넷은 최근 한국에도 진출(교보생명 공동출자)했다. 저가 온라인 생보사의 선두 주자답게 이후 놀랄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시장 포화 상황에서 4년간 연평균 173%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을 통한 저가 보험, IT 기기에 익숙한 2030세대의 틈새 공략, 업계 최초 사업비 공개를 통한 신뢰 확보 등이 성장 비결로 손꼽힌다. 뒤이어 2011년 ‘오릭스생명’이 온라인 정기 보험을 내놓았고 이듬해엔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라쿠텐이 자회사를 만들었다. 2012년엔 ‘AIG후지생명’도 전용 채널을 설립했다. 이에 따라 온라인 보험은 ‘특화 전업사 vs 기존 대형사’의 양강 체제로 재편됐다.
[GLOBAL_일본] 소액 단기 보험으로 틈새 파고드는 보험사
특히 라이프넷의 성공 모델이 주목받는다. 온라인 채널의 잠재성을 잘 보여줘서다. 특화 전략이 먹혀든 덕이 크다. 우선 청년 고객에게 러브콜을 날렸다. 경기 침체로 일본 청년의 보험 이탈은 심각한 상태다. 가뜩이나 출산 거부로 신규 가입자가 줄어드는 와중에 청년 빈곤마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라이프넷의 성공 신화는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2008년 업계 최초로 상품별 사업비를 공개함으로써 고객 친화성을 강조했다. 일종의 파격적인 원가 공개다. 어려운 특약을 빼고 이해도를 높인 단순 상품 4가지만 파는 상품 표준화도 한몫했다. 특히 보험 특유의 보장 상품에 집중한 게 먹혀들었다. 보험료가 적은 순수 보장형이 90%에 달한다. 가입 고객의 80%는 2030세대다. 이들 미래 세대의 경우 향후 연금 등 저축성 상품의 잠재 고객이란 점에서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갖췄다는 평가다. 동시에 스마트폰이 늘면서 아예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가입 유도에도 적극적이다. 2013년 10월 현재 보험 가입 건수는 19만 건을 돌파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