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전무, 정석기업 공동대표에…경영 승계·지주사 합병 포석 등 분석 쏟아져
지난 2월 10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딸인 조현민(31)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전무가 그룹 핵심 계열사인 정석기업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내 순환출자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기업이다. 이번 인사에 따라 정석기업은 조양호 회장과 원종승 대표등 3인이 각자 대표 체제가 됐다.1983년생인 조 전무는 2007년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과장으로 시작해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IMC팀장·부장·상무, 진에어 마케팅본부 본부장·전무 등 그룹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끝에 30대 초반의 나이로 정석기업 대표에 올랐다. 조 전무는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업무를 겸임한다.
이번 인사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경영 승계’, ‘한진칼과 정석기업의 합병’ 등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다. 하지만 한진그룹 측은 이번 인사를 경영권 승계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책임 경영 강화 차원의 경영 수업”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진그룹은 “조 전무는 2010년 정석기업 등기이사에 선임된 이후 이미 꾸준히 경영에 참여해 왔다”고 설명한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사가 관심을 끄는 것은 한진그룹이 처한 최근 상황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대한항공 등 계열사들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인사인 만큼 남다른 의미가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사실 정석기업이 한진그룹의 계열사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정석기업은 부동산 매매·임대와 건물 관리 등을 하는 한진그룹 핵심 계열사로, 그동안 한진그룹 내 순환출자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한진칼이 지분 48.28%를 보유하는 등 한진그룹이 지분 100%를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의 지분율은 27.21%이며 조현아 부사장과 조원태 부사장, 조현민 전무 등 3남매가 각각 1.28%를 보유하고 있다. 아직은 3남매가 보유한 정석기업 지분이 그리 많지 않은 상태다.
“경영 승계와 연결은 어불성설”
그렇다면 조 회장은 왜 조 전무를 정석기업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일까. 그리고 조 회장은 이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인사를 경영권 승계 수순으로 해석하는 분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경영권 승계에 나서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기업 정보에 밝은 한 소식통은 “최근 2~3년 전부터 대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한진그룹 이름이 오르내렸다”면서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 실제로 한진그룹은 모든 계열사에서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으며 그 단적인 사례가 한진해운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올해 31세인 막내딸에게 그룹 지배 구조 ?母?기업의 대표이사를 맡긴 것은 다른 차원의 분석이 필요하다”며 “이를 경영 승계와 연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1949년생으로 올해 65세다. 주요 그룹을 이끌고 있는 오너 회장들의 나이가 대부분 70대라는 걸 고려하면 아직은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나이다. 특별히 건강에 문제가 없는 한 조 회장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조 회장은 평소 “물려받는 기업은 없다”는 원칙을 강조해 왔다. 이 때문에 경영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남매에게 회사를 물려준다는 것은 그의 철학에서도 벗어나는 그림이다. 조 회장 자신도 20여 년 가까이 한진그룹의 주요 계열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나서야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경험이 있다. 한진그룹 측은 “대표이사가 기업 경영의 책임 있는 자리이긴 하지만 지분 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경영권 승계를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인사는 2013년 8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한진그룹의 중·장기 비전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석기업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지목한 한진그룹의 4개 계열사 가운데 하나다.
한진칼과 합병하면 순환출자 해소 가능
한진그룹은 지난해 8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을 한진칼과 대한항공으로 인적 분할하고 한진칼이 대한항공·한진정보통신·기타 여행 계열사들을, 대한항공이 한진에너지·한국공항 등을 나눠 소유하는 구조로 변경됐다. 하지만 지주회사 전환 이후에도 조양호 회장-정석기업-한진-한진칼-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는 여전히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
증권가에서는 한진그룹의 지배 구조와 관련해 “(주)한진을 분할해 한진칼·정석기업과 묶어 합병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가장 유력한 방법은 (주)한진을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 분할한 뒤 한진의 투자부문을 한진칼과 정석기업 3개사와 합병해 통합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경제 민주화와 관련해 논란이 되는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주식 스와프(대주주의 자회사 지분을 지주회사에 현물출자하고 그 대신 지주회사 지분을 취득)를 통해 통합 지주회사에 대한 대주주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만약 이 시나리오대로 3개 회사가 합병하게 되면 정석기업이 비상장 회사이기 때문에 자산과 수익 가치로, 한진과 한진칼은 각각의 시가로 가치를 평가하게 된다. 조 회장은 정석기업 27.2%, 한진 투자부문 6.9%, 한진칼 6.7%를 소유하고 있다. 조 회장으로서는 향후 통합 지주회사의 지분율을 더 늘리기 위해서는 정석기업의 기업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석기업은 빌딩을 관리하는 회사로, 단기간에 기업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정석기업이 한진 지분을 19.4%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진의 주가가 상승하면 정석기업의 기업 가치도 증가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대주주로서는 한진의 주가가 상승해야 통합 지주회사의 지분율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와 조 전무의 정석기업 대표 선임을 직접 연결 짓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그룹 지배 구조와 관련해 중·장기적으로 정석기업의 규모 확대와 기업 가치 증대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매출 300억 원대에 불과한 작은 기업에 대표이사가 3명이나 된다는 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한진해운을 정상화하는 게 그룹의 최우선 과제”라며 “지주사 강화 등은 시일이 걸리는 만큼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앞으로 한진그룹은 정통성을 확고히 다지며 육·해·공의 종합 물류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했다.
20여 년의 경영 수업이 지금의 조 회장을 있게 했듯이 그의 3남매 역시 아직은 배워야 할 것과 경험해야 할 것이 많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조 전무의 정석기업 대표이사 선임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돋보기 | 정석기업은…
조중훈 선대 회장의 호인 ‘정석’에서 따온 정석기업은 한진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 구조 변화의 핵심 기업으로 주목받아 왔다. 서울 남대문로 한진빌딩 본관과 소공동 신관, 인천과 부산에 있는 정석빌딩과 대전 정석프라자 등을 보유하고 임대·관리하는 회사다.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 리조트 호텔을 자회사로 두고 있기도 하다. 또한 (주)한진의 지분을 보유하는 물론 빌딩 등 보유 부동산이 많아 자산 규모가 3449억 원(2012년 기준)에 이른다. 이 회사의 덩치를 키워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석기업의 매출은 2001년 262억 원에서 2012년 383억 원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 회사는 작년 영업이익도 140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36.5%에 이른다. 매년 임대 수익을 바탕으로 30%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알짜 회사다. 2012년 한진그룹 내부 거래 규모는 2012년 60억 원 남짓으로, 전체 매출액 대비 15.8%를 차지한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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