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선도 역할로 진화하는 HR…‘선제적 지원’ 중요해져

얼마 전 한국의 유명 쇼핑 회사 전략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최고경영자(CEO)와 주요 임원이 사업 계획을 점검하고 사업부·마케팅·재무 등이 지난 실적을 차례로 보고하고 사업 목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인사관리(HR)는 마지막 순서였다. 아쉽게도 현 인원이 몇 명이고 인건비 추이가 어떠하며 앞으로 몇 명을 채용할 것이란 간략한 보고가 전부였다. 비즈니스를 위해 HR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CEO를 포함한 대부분의 임원은 HR 이슈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 별다른 논의도 없었다.


아무도 HR에 주목하지 않는 전략 회의 풍경
HR가 전략 실행과 멀어져 있는 이런 풍경은 다른 회사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경쟁력이다’라고 강조하는데,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왜 이런 모습이 자주 발생할까. 이는 HR 진화 과정과 관련이 있다. 인사는 오랜 기간 전략적 의사결정과 동떨어진 변방에 있었다. 심지어 전략과 무관한 기능으로 여겨진 시절도 있었다. HR가 본격적으로 조직 내 기능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1940년대 후반이다. 이 시기에 인력(노동력)은 획득하기 쉬운 자원이었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풍부했고 업무에 요구되는 요건도 복잡하지 않아 간단한 교육만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당연히 HR의 역할은 노동법 준수, 임금 지불, 개인 이력 관리 등과 같은 효율적 행정 처리에 맞춰졌다. 이때를 ‘HR 1.0’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비즈니스가 확대되고 경영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HR 기능은 효율적 행정 처리에서 노사관계, 고과 평가, 교육 훈련, 채용 등으로 확대되는 ‘HR 2.0’ 시대로 접어들었다. ‘HR 2.0’ 진화의 핵심은 인사 기능이 효율성에서 효과성으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직무는 체계적으로 구분돼 있는가’, ‘공정한 평가를 위해 평가 기준과 프로세스는 적절한가’, ‘보상은 평가 결과와 잘 연계돼 있는가’, ‘보상 수준은 구성원을 동기부여하기에 충분한가’ 등이 이 시기 주요 질문이었다. 이러한 질문들이 HR의 효과성을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비즈니스 실행에 의미 있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들어 2.0의 한계를 넘어서는 ‘HR 3.0’ 물결이 강해지고 있다. 3.0 시기의 핵심 고민은 ‘어떻게 하면 HR가 사업 성공을 이끌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다. 많은 기업들이 사업에 필요한 인재를 정의하고 구성원의 역량 향상을 고민하며 외부의 유능한 인재를 찾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인적자원 니즈를 예상하고 이를 충족시키는 과정’이라는 전략적 인재 관리(strategy talent management)의 정의와 맥락을 같이한다. 일반적으로 인재 관리는 ‘사업에 필요한 인재를 파악하고 이를 적시에 확보·육성,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제반 활동’을 말한다. 결국 인재 관리는 전략 실행 중심으로 나아가려는 ‘HR 3.0’ 시기에서 필수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경영전략 트렌드] 경영전략 중심에 선 ‘인사관리 3.0’
인재 관리가 HR 3.0으로 가기 위한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인재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히려 인재 관리에 힘을 쏟다가 회의적 시각을 갖는 사례도 발견할 수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적정 인원수 파악이나 인력 수급 규모 결정을 인재 관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인재 관리를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과거 재무적 추이나 업무량에 기초한 ‘적정 인원수’는 경영 환경이 안정적이고 조직 구조 변화가 거의 없을 때에는 유용했다. 그러나 최근 비즈니스 환경은 향후 1분기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고 회사의 조직도 경영 환경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특정 시점에 파악한 적정 인원수는 미래 비즈니스 상황과 연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인재 관리 활동(인재 풀 확보, 파이프라인 관리, 승계 계획 수립, 채용 등)은 비즈니스 니즈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경영전략 트렌드] 경영전략 중심에 선 ‘인사관리 3.0’
정기적으로 인력 계획을 수립하는 기업에서도 어려움이 발생한다. 많은 기업들이 인력 계획 시 사업부에서 요청한 인력 수를 취합하고 인건비 측면에서 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인적자원은 단순 인건비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인력 계획은 인건비보다 비즈니스 실행력 확보와 연관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인력 계획 활동은 비즈니스 실행에 도움을 주기 어렵다.


인력 수요 미리 예측해 대응
중요한 것은 특정 시점의 숫자(인력 수, 인건비 등) 파악이 아니다. 인재 관리의 궁극적 목적은 성공적인 사업 실행 지원이다. 이에 따라 인재 관리의 시작은 비즈니스에서 출발해야 한다. 적정 인원수를 파악하고 인력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회사의 사업 영역, 핵심 기능, 프로세스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사실 이 부분을 모르는 HR 조직은 없을 것이다. 어려운 점은 ‘비즈니스적 이해를 어떻게 인사적으로 해석하고 대응할 것인가(strategic decoding)’다. 이 부분이 전략과 HR가 만나는 접점으로, 비즈니스 차원의 인력 수요(business demand)를 예측하고 이에 따른 HR 차원의 공급(HR supply)을 고민하는 것이 전략적 인재 관리의 핵심이다.

최근 ‘사업 수행 역량(talent capacity)’ 관점에서 인재 관리에 접근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업들은 자신만의 사업 수행 방식(business delivery model)이 있다. 은행이나 보험사는 지역별 지점 운영이, 건설사나 정보기술(IT) 서비스 기업은 프로젝트 조직 운영이 기본적인 사업 수행 방식이다. 사업 수행 역량은 이러한 사업 수행 방식을 현재 구성원으로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척도다.

‘사업 수행 역량 기반 인재 관리’의 특징은 고민의 시작을 사업 수행 방식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또한 필요 인재를 정의할 때 인력 수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인력 수×역량 수준)을 함께 감안하는 특징이 있다. 즉, 각 사업 수행에 필요한 핵심 직무가 무엇이고 어느 정도 역량·스킬을 보유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정의한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의 사업 수행 방식은 기본적으로 고객에게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지역별 영업 사원을 통한 전통적인 지점 영업 방식과 고객이 직접 가입하는 온라인 영업 방식이 있다. 각 사업 수행 방식은 각기 다른 업무와 인력이 필요하며 요구되는 역량 수준과 스킬에도 차이가 있다. 전통적 지점 영업 방식은 영업 사원을 교육하고 동기부여하는 지점장이 핵심인 반면 온라인 영업 방식은 비용 구조를 최소화하는 상품 설계 인력이 핵심이다. 건설사는 건설 현장 단위로 사업이 진행되고 현장 소장이나 프로젝트 매니저(PM)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이 어떤 건설 사업을 담당하느냐에 따라 요구되는 전문성과 수준이 달라진다. 이에 따라 사업 수행 방식은 하나의 모델로 정의하기보다 상품·서비스에 따라 달라져야 하며 하나의 사업 수행 모델도 상품·서비스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세분화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각 모델에 필요한 직무·인력수·역량수준도 차별화돼야 한다.

사업 수행 모델과 필요한 인재 요건(직무·인력수·역량수준)이 정의되면 다음 단계는 현재 보유한 인적자원의 역량 수준 파악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역량 수준의 객관적 측정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구성원 역량 수준 평가를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역량 수준 평가가 필요 없기 때문이라기보다 기존의 평가 방식이 적절하지 않거나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활용되는 평가 요소는 경험·잠재력·성과 등이며 사업 및 직무 특성을 반영한 차별적 평가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또한 일회성이 아닌 상시적 역량 수준 평가가 이뤄질 수 있는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구성원의 역량 수준이 파악되면 앞서 설정한 사업 수행 모델에 구성원 역량 수준을 대입해 사업 수행 역량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구성원의 역량 수준을 비즈니스 가치로 환산한 결과로, HR뿐만 아니라 사업부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경영전략 트렌드] 경영전략 중심에 선 ‘인사관리 3.0’
사업 운영에 필요한 인재 요건과 구성원의 역량 수준을 파악했다면 인력 계획 및 인적자원 과부족을 채워 가는 활동(채용·육성·배치)과 연계해야 한다. 인력 수요는 사업부의 사업계획·사업 수행 모델·모델별 인재 요건을 조합해 예측할 수 있으며 과부족은 예측한 인력 수요 대비 현재 인원을 비교해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인력 수요나 과부족을 판단할 때 단순히 인원수가 아닌 역량 수준도 함께 분석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사업 수행 역량 기반의 인재 관리는 사업에 필요한 인재 정의, 구성원의 역량 수준 분석, 이를 통해 달성 가능한 비즈니스 영향력 분석, 지속적 관리 프로세스 연계를 포함한다.


구성원 역량 평가로 공통의 ‘언어’ 만들어야
최근 HR 역할을 한 단계 진화시킨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전통적으로 사업 목표 수립은 사업부와 전략 부서의 몫이었다. 전년도 실적과 경영 환경을 고려해 사업부에서 목표를 수립하고 전략 부서에서 이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HR는 사업부에서 요구하는 인원을 취합·검토하고 이에 따른 후속 조치(채용·육성·재배치)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A사는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비즈니스에 선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으로 사업 추진에 필요한 인재 요건을 규명하고 현재 구성원 역량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노력의 첫째 효과는 구성원 역량 수준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고 나아가 사업부와 공통의 ‘언어’를 가지게 됐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특정 역량을 보유한 구성원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정확하게 찾기도 어려웠다. 구성원의 역량 수준을 바라보는 시각도 사업부와 HR 간에 차이가 있어 서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제는 전사적으로 통용되는 객관적 ‘언어(역량 수준, 사업 수행 역량)’를 통해 HR 내부뿐만 아니라 사업부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됐다. 둘째, 더 중요한 효과는 HR가 후행적(reactive) 지원 업무에서 벗어나 비즈니스를 선제적(proactive)으로 지원하게 된 점이다. 그들은 분석한 구성원 역량 수준을 토대로 사업부 비즈니스 계획이 무리 없이 수행 가능한지에 대한 정보(사업 수행 역량)를 제공했다. 실제로 2014년 경영 계획 수립 시 HR가 가장 먼저 사업부별 수행 가능 매출 규모를 발표하고 이후 사업부별 계획과 비교·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다. 마지막으로 현재 투입된 인력의 적정성을 검토, 부족한 곳은 인력을 보강하고 과투자된 사업 영역은 인력을 축소·재배치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A사의 이러한 모습은 HR가 비즈니스를 선도하는 매우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으며 HR 혁신을 고민하는 기업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콘퍼런스보드가 실시한 조사에서 전 세계 CEO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로 인적자원(human capital)이 지난 2년간 1위를 차지했다. CEO가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사실은 HR에 반가운 일이다. 반면 CEO의 관심에 확실한 답을 해야 하는 숙제를 안은 셈이다. ‘우리 회사 구성원은, 그리고 HR 부서는 비즈니스에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가.’

이제 그 답을 찾기 위해 HR 3.0 공간에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사업 수행 역량 기반 인재 관리’는 그 문을 열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주수 헤이컨설팅그룹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