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통신 내건 전임 회장이 대거 영입…‘원래 KT’ 부활로 줄줄이 퇴임

황창규 신임 KT 회장이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나선 가운데 KT의 여풍(女風)을 주도하던 간판급 여성 임원 6명 모두가 회사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5명은 이석채 전 KT 회장 시절 외부에서 영입한 일명 ‘올레 KT(기존 KT 출신인 ‘원래 KT’와 대조적인 표현)’라는 공통점이 있다.

송정희 전 부사장(플랫폼&이노베이션부문장), 오세현 전 전무(신사업본부장), 김은혜 전 전무(커뮤니케이션실장)은 이미 지난 1월 KT 인사로 퇴임 사실이 공식화됐다. 이들과 함께 송영희 전 전무(가치혁신 CFT장), 임수경 전 전무(글로벌&엔터프라이즈 운영총괄)도 짐을 쌌고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 중이던 이영희 전 전무(그룹컨설팅지원실장)도 신임 회장의 업무 시작과 함께 복귀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34년간 몸담아 온 KT를 떠났다. 이들 6명은 지난 2월 1일자로 전원 퇴사 처리됐다. ‘원래 KT’인 이 전 전무를 제외한 5명은 이 전 회장이 직접 발탁한 외부 인사로, KT에 ‘파격 영입’되면서 큰 주목을 받아 왔던 터라 이들의 ‘동시 퇴장’에 도 뒷말이 무성하다.
[비즈니스 포커스] 개혁 바람에 짐 싼 KT 스타 여성 임원들
우선 KT 여성 임원의 수장 격이었던 송정희 전 부사장은 37개월 만에 KT에서 하차하게 됐다. 그간 KT에서 고객 업무와 신사업을 관장하는 서비스&이노베이션, 플랫폼&이노베이션의 책임자로 활약했다. 송 전 부사장은 삼성전자, 정보통신부 정보기술(IT) 정책자문관을 거쳤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 정보화기획단장을 맡은 후 IT 행정가로 명성을 떨치며 KT에 영입됐다. 신사업본부장을 맡은 오세현 전 전무는 한국IBM 상무와 동부CNI 최고기술경영자(CTO), 인젠 컨설팅본부장(부사장) 등을 거쳐 2011년부터 KT에 상무로 합류했고 입사 1년 만에 전무로 승진해 KT의 새로운 캐시카우 발굴에 매진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여동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김은혜 등 이석채 라인 전원 ‘아웃’
KT의 대내외 홍보를 총괄한 김은혜 전 전무는 유명세 때문에 입사 전부터 큰 이슈가 됐다. MBC 방송 기자 출신으로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하다가 2010년 12월 KT에 합류한 그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KT의 ‘얼굴’을 담당하는 홍보 사령탑에 임용되면서 유리 천장을 깬 대표적인 여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 전 전무는 KT 창립 이후 첫 여성 홍보총괄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2009년 홈고객전략본부장으로 영입됐던 송영희 전 전무는 LG생활건강 임원에서 KT로 스카우트된 인물이다. 당시 KT의 역대 두 번째 여성 임원으로 대내외적인 관심을 끌었다. 여성 소비자들의 트렌드와 감성을 이해하기 위해 영입됐고 이후 가치 혁신 부문을 담당하며 텔레콤&컨버전스(T&C부문)의 가치혁신 CFT장을 맡았다.

이번에 퇴진한 여성 임원 가운데 가장 짧은 임기인 19개월 만에 짐을 싸게 된 임수경 전 전무는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국장)에서 2012년 KT 임원으로 전격 영입된 인물로 글로벌&엔터프라이즈(G&E) 운영총괄을 담당했다. 2009년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에 임명됐을 당시 국세청 개청 이후 첫 여성 국장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이 전 회장이 영입한 여성 임원들의 화려한 경력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전 회장 시절 KT는 ‘여풍’이 강하게 부는 기업으로 유명했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취임 초기부터 “임원 승진 대상에 오른 여성은 무조건 발탁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힐 정도로 여성 리더 육성론을 내세웠고 내부 승진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활약 중인 스타급 여성 임원들을 대거 수혈해 핵심 보직에 앉혔다.

이 전 회장 전까지 KT는 남성 중심의 딱딱한 조직으로 통했다. 2002년 민영화됐지만 공기업 시절의 조직 문화와 인적 구성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다소 경직돼 있었던 것. 이 전 회장은 ‘통신’이라는 소비재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구매 결정권을 쥔 여성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여성 임원이 전무하다는 것에 자극 받아 취임 6개월 만에 3대 사업(기업·개인·홈 고객) 부문 마케팅 책임자를 모두 여성으로 교체했다. 또 신입 사원의 3분의 1을 여성으로 뽑았다.

이처럼 ‘여성 중심’을 강조한 이 전 회장의 의지 때문에 지난해 초 상무 승진자 17명 중 여성이 5명을 차지해 전체 임원 가운데 여성 임원 비율이 8%에서 11.3%로 늘기도 했다. 당시 30대 대기업(상장사 매출 기준) 가운데 여성 임원 비율이 두 자릿수대에 이른 것은 KT가 처음이라 KT는 이러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으며 일각에서는 여성 사장의 등장까지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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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황 회장 취임 이후 여풍을 주도했던 고위 임원들이 모두 떠나면서 KT의 여성 임원 비율은 다시 7%로 내려앉았다. 이에 대해 KT 측은 “황 회장 인사의 방향은 전체 임원을 줄여 권위를 내려놓고 현장성을 강화하는 것일 뿐 여성 임원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황 회장은 최근 인사 개편을 통해 본사 지원 조직의 임원급 직책 규모를 50% 이상 축소하고 전체 임원 수도 130명에서 35명(27%) 정도 대폭 줄이는 ‘KT의 슬림화’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여성 임원들의 수도 줄어들게 됐다는 게 KT 측의 설명이다. 현재 조직 개편과 인적 쇄신 작업이 한창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여성 임원의 규모와 보직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여풍 흐름에 KT만 거꾸로?
한편 KT 내부 사정에 능통한 한 인물은 “스카우트된 여성 임원들이 KT 특유의 조직 문화에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KT라는 거대한 조직, 게다가 남성 직원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기업을 이끌어 가기엔 본인의 개인기 외에도 조직 장악력, 협업 등 다양한 힘이 필요한데 이러한 점들에서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 시절 여성 임원을 활발히 영입했던 것은 그가 내세운 ‘탈통신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이 전 회장은 통신 시장이 포화에 접어든 만큼 탈통신밖에 대안이 없다며 금융, 자동차 렌털 등 비통신 분야의 계열사들을 늘리는 등 ‘융합론’을 내세웠다. 융합하기 위해선 다양한 영역의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에 ‘비통신’ 분야의 스타 임원들을 속속 데려와 앉혔고 기존 KT에 없던 ‘여성 임원’들을 채우며 다양성을 갖췄다.

하지만 황 회장은 다르다. 그는 최근 주주총회에서 “KT의 주력인 통신을 다시 일으켜 통신 1등 기업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올레 KT’를 ‘원래 KT’로 돌려놓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실제 KT는 지난해 4분기에 사상 처음으로 적자 전환 사실을 알렸다. 1494억 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걷자 황 회장은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며 통신의 경쟁력 복원에 집중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다시 조직을 수습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갖춘 통신 분야의 ‘원래 KT맨’들로 진용을 갖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취임 직후 공개된 황 회장의 첫 인사 개편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황 회장은 앞서 언급한 여성 임원뿐만 아니라 김일영 전 사장(코퍼레이트센터장), 김홍진 전 사장(글로벌&엔터프라이즈부문장) 등 대표적인 ‘이석채 라인’를 모두 정리했다. 대신 20년 이상 KT에 몸담아 온 남규택 마케팅부문장(부사장), 오성목 네트워크부문장(부사장), 전인성 CR부문장(부사장), 한동훈 경영지원부문장(전무) 등 ‘정통 KT맨’을 ‘전진 배치’했다. ‘이석채 지우기’라기보다 ‘통신 분야 선수’들로 구성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게다가 ‘비상경영’까지 선언한 이상 전임 회장의 정책인 ‘여성 프리미엄’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다고 예측하고 있다.

또한 1980~1990년대에 KT는 남성 중심의 채용을 한 터라 아직까지 ‘임원’에 오를 연차를 채운 여성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 내부 승진 사례도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주목받는 여성 리더들이 많이 기용됐는데 KT는 그와 상반되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한국은행 설립 62년 만에 첫 여성 임원이 된 서영경 한국은행 부총재보를 비롯해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조희진 서울고검 차장검사(검사장) 등 정·재계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고위급 자리에 오르는 여성들이 대폭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개방성으로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여성 리더 육성에 앞장서면서 기업 내에서 ‘유리 천장 깨기’의 신화를 보여준 KT의 ‘인사 혁명’이 당분간 잠잠해질 것이라는 예측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