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내수시장 발판 급성장…저가 이미지 벗고 품질·브랜드 ‘쑥쑥’
지난해 미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100대 혁신 기업 리스트에 중국은 5개 기업의 이름을 올렸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가 6위, 텐센트가 18위였다.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과거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의 성공을 교훈 삼아 빠르게 성장했던 것처럼 중국의 기업이 질주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정보기술(IT)·전자산업은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 의지에 힘입어 성장세가 남다르다. 중국 기업들의 ‘한국 넘어서기’는 이미 현실이다. 한국을 위협하는 중국 신흥 기업들의 숨은 경쟁력을 살펴본다. “시진핑 국가주석부터 중국 관리까지 한국과 삼성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 분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중국 보아오 포럼 참석 후 귀국하던 길에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중국의 대표적 통신 장비 업체이자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의 연구소에는 삼성전자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담팀이 구성돼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최필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들이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의 성공을 벤치마킹하면서 빠른 성장을 이룬 것처럼 중국 또한 한국 기업들의 입지를 흔들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급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은 풍부한 자금력과 인력,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고속 성장하며 우리 기업들이 고지를 점령한 분야를 하나 둘 점령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 기업들이 한국을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2013년 미국 경제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글로벌 상위 500대 기업 리스트에 중국 기업은 89개의 이름을 올렸다. 한국이 5년째 14개로 제자리걸음인데 비해 중국은 같은 기간 2배 이상 늘어났다. 중국 기업은 더 이상 우리 뒤에 있지 않다. 지금까지는 국유 기업이 중심이 됐지만 향후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신흥 민영기업들의 부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신흥 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통해 국가 인프라 산업을 독점하며 수월하게 성장한 국유 기업과 달리 사업 초기부터 기술력·품질·브랜드 역량을 강화해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손색없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기업 가운데 성장세가 특히 빠른 정보기술(IT) 산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과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 기업들은 ‘모방 능력’과 ‘인해전술’이라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췄다고 했다. 그는 “중국은 일본·한국 등 벤치마킹할 대상이 많은 후발 주자로서의 메리트가 있다”며 “기존 제품을 따라해 만드는 산자이(모방) 문화가 팽배해 있기 때문에 글로벌 톱 기업들의 기술이나 마케팅 습득 능력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내수 시장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규모의 경제’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국민 브랜드이지만 해외시장에선 인지도가 낮다고 해서 ‘평가 절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금부터 개별 기업별로 성공을 이끈 경영전략을 살펴보자. CASE 1 화웨이-자체 기술로 승부 거는 늑대들
일명 ‘중국의 삼성전자’로 불리는 글로벌 종합 통신 장비 기업인 화웨이의 약진은 눈부시다. 1987년 인민해방군 통신 장교 출신의 런정페이가 설립한 화웨이는 현재 통신 장비 글로벌 1위 자리를 놓고 스웨덴 기업 에릭슨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2000년 1억 달러 남짓이던 매출은 지난해 350억 달러 수준으로 뛰었고 2005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이 30% 이상을 웃돌 정도로 화웨이의 성장은 가히 초고속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서구 업체들의 독무대였던 글로벌 통신 장비 시장에 겁 없이 등장한 화웨이의 ‘진격’에 글로벌 기업들은 잔뜩 경계하고 있다. 이는 민감하게 시장 기회를 엿보고 단체로 달려들어 일명 ‘늑대 떼’로 불리는 화웨이식 기업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국은 런정페이 회장의 인민해방군 복무 경험과 연관 지어 화웨이와 중국 군부 세력과의 결탁을 의심하면서 화웨이의 안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상태다. 미국 정치권은 LG유플러스의 중국 화웨이 통신 장비 도입 문제를 놓고 “중국 정부의 스파이 노릇을 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는 등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화웨이는 일관되게 자체 기술로 성장의 기반을 다졌다. 다른 통신 기업들이 해외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기술을 전수받았던 것과 달리 화웨이는 처음부터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화웨이는 연간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 (R&D)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엄격히 지킨다. 전체 임직원 15만 명 가운데 46% 이상이 R&D 인력일 정도로 엔지니어 중심의 회사다. 지난해에도 전체 매출의 13%인 48억 달러를 R&D에 쏟아부었고 미국·독일·스웨덴 등 전 세계 곳곳에 16개의 R&D 센터를 건립해 연구 인력을 확보하는 데 국경을 허물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을 벤치마킹해 매년 실적이 떨어지는 하위 5%의 직원을 가차 없이 해고할 정도로 치열한 내부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지만 직원들의 월급 수준이 중국 평균의 2~3배이며 파격적인 성과 보상 시스템을 도입해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2010년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 진출한 화웨이는 애플·삼성 등을 라이벌로 삼으며 특유의 ‘늑대 떼 문화’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화웨이는 삼성전자 연구팀을 따로 만들 정도로 ‘삼성전자’를 정조준하면서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지난해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인 어센드 P6 스마트폰을 출시했고 화면을 키운 스마트폰인 ‘패블릿’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가격을 낮춰 중저가 시장을 장악한다는 계획이다.
신흥 기업 가운데 인터넷 포털 기업의 활약이 유독 두드러진다. 중국 대륙에서 구글을 밀어낸 검색엔진 공룡 기업인 바이두, 중국 최대 인터넷 서비스 업체로 자리매김한 텐센트 등이 대표적이다.
CASE 2 바이두-간결함의 미학
중국 최대의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는 ‘한 우물 파기’ 전략으로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 갔다. 2000년 초 설립된 바이두는 세계 3대 검색엔진이자 3억8400만 명의 인터넷 사용자를 자랑하는 중국 최대 검색엔진이다.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2005년에는 상장 첫날 주가가 400% 가까이 폭등하며 세계시장에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현재 중국 내 시장점유율 80%에 육박하는 바이두는 창업자 리옌훙 회장의 ‘검색엔진’에 대한 강한 믿음에서 출발했다. ‘검색엔진에 사활을 건다’는 리옌훙 회장의 개인적 철학으로 만들어진 바이두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 또한 매우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1990년대 ‘닷컴 열풍’이 불던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리옌훙 회장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할 때 많은 IT 기업들이 무리한 확장으로 자금이 부족해져 문을 닫는 광경을 수차례 목격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창업 초기 중국어 검색엔진에 목마른 고객들을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고 여러 개의 서버를 사용해 정보의 검색이나 전달 속도를 높였다. 바이두(百度)란 회사 이름은 ‘무리 속에서 그를 천 번이고 백번이고 찾는다(千百度)’는 한 시구에서 따왔다. 정확한 정보를 위해서라면 백 번 천 번 끈질기게 검색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바이두는 창업 이후 검색엔진이 아닌 다른 영역에는 진출한 적이 없다. 다른 영역은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인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간결함을 통한 경영전략은 또 있다. 리옌훙 회장이 바이두를 성공적으로 경영하기 위한 8가지 원칙(적재적소에 인재 배치, 시작은 항상 어렵게 등)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명 ‘아이디어 죽이기’다. IT 업체는 항상 다양한 아이디어가 표출되는데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보다 바이두의 돈이 되는 아이디어만을 살려두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최근 바이두는 모바일 검색 기술을 높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뒤처진 경쟁력 만회를 위한 바이두의 선택은 모바일 신생 업체 인수다. 바이두는 2013년에 전자상거래 기업 ‘누오미홀딩스’와 모바일 앱스토어 ‘91와이어리스’, 동영상 플랫폼 ‘PPS’ 등을 인수하는데 약 2조 원을 쏟아부었다. 리옌훙 회장은 지난해 말 회사의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모바일 검색 시장에서 바이두보다 더 많이 투자하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며 바이두의 향후 성장성에 대해서도 자신했다.
CASE 3 텐센트-창조적 모방
“중국인들은 쌀 없인 살 수 있어도 큐큐(QQ)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내에서 인터넷 메신저인 QQ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QQ를 탄생시킨 중국 최대의 온라인 게임 업체이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업체인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108조 원으로, 일본의 소프트뱅크보다 많다.
1998년 IT 엔지니어인 마화텅 최고경영자가 만든 텐센트가 서비스하는 무료 웹 메신저 QQ와 중국판 카카오톡인 모바일 메신저 위챗의 이용자는 각각 8억 명, 3억 명에 달한다. 카카오톡이 아무리 ‘국민 모바일 메신저’라고 하더라도 한국 내 사용자가 3500만 명인 것에 비하면 중국 내수 시장의 규모는 차원이 다르다.
텐센트는 ‘창조적 모방’을 통해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중국 네티즌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는 QQ 메신저의 전신인 QICQ는 미국의 메신저 ICQ를 모방한 것이다. 기존 메신저의 불편함을 개선했고 무엇보다 중국어로 서비스한다는 점이 사용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었다. 펭귄을 심벌로 하는 QQ 메신저를 통해 7억 명이 넘는 중국인들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초대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처럼 모방을 통해 많은 사용자를 모은 텐센트에 결정적인 도약의 기회를 준 것은 한국의 싸이월드였다. 안정적인 유료 사업 모델을 찾던 텐센트는 2000년대 한국에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서 정답을 찾았고 비슷한 ‘Q존’을 열었다. 당시 한국 소비자들이 사이버 머니인 도토리를 사서 음악을 구매하고 홈페이지를 꾸미던 것에서 착안해 텐센트는 싸이월드처럼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아바타를 제공하고 옷·액세서리 등을 유료로 팔아 2002년에만 순이익 1억4400만 위안을 거뒀다. 텐센트는 2004년 홍콩 증권시장에 상장한데 이어 2011년 매출 285억 위안, 순이익 90억 위안을 올렸다. 이후 벨소리 유료 서비스,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차별화된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마화텅은 텐센트의 10주년 기념행사에서 모방이 꼭 나쁜 것은 아니며, 모방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며 ‘차별적 모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양이를 보고 고양이를 그렸다면 텐센트는 사자를 그렸다”며 자신들의 사업 방식을 옹호하기도 했다.
텐센트는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을 구축한 후 해외 유수의 게임들을 중국 내에 퍼블리싱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인터넷 게임 업계 1위로 성장했다. 현재 텐센트의 매출 가운데 절반 이상이 게임에서 나온다. 텐센트는 내부에 200여 명 정도의 게임 분석팀이 있는데 이들은 각국의 인기 게임을 철저히 분석하고 중국 유저의 취향에 맞게 새롭게 변형한다. 2007년에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인 ‘던전앤파이터’, ‘크로스파이어’가 소위 대박을 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요인들 때문이다. 최근에는 ‘쏘쏘’라는 검색 서비스로 바이두의 자리를 노리고 ‘파이파이왕’이라는 서비스로 알리바바가 강자로 자리하고 있는 전자 상거래 영역에도 뛰어들었다. 타 기업들의 성공 전략을 ‘턴센트식’으로 완벽하게 바꾸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CASE 4 하이얼-고객은 항상 옳다
전문가들은 생활 가전 부문에서 이미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을 넘어섰다고 본다. 그 대표는 하이얼로, 명실상부한 세계 백색가전 선두 주자다. 거대한 내수 시장 덕분에 성장한 하이얼이지만 이젠 해외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히며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 세계 160여 개국 이상에 무려 14만3330개의 판매망을 구축하고 있다. 2011년 파나소닉으로부터 산요 백색가전 사업을 인수하며 순식간에 일본 가전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렸다.
지금의 하이얼이 있게 한 것은 ‘소비자는 항상 옳다’는 경영 원칙 때문이다. 하이얼이 ‘고객 중심’이라는 사고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 1985년 장루이민 회장은 한 고객으로부터 항의 편지를 받았다. 하이얼 냉장고 품질에 문제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직접 창고로 달려간 장루이민 회장은 냉장고 76대가 불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망치로 냉장고를 모조리 부수도록 지시했다. 당시 냉장고 가격은 평직원 월급의 20배에 달하는 고가 제품이었다. 이후 하이얼에는 ‘결함이 있는 제품은 폐품과 같다’는 관념이 수립됐다.
하이얼은 고객의 욕구가 어떻게 변하는지 언제나 민감하게 관찰한다.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미국인들이 집에서 와인을 즐긴다는 것에 착안해 ‘와인 전용 냉장고’를 출시하면서 미국에서 하이얼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갔다. 1997년엔 농민 고객들이 고구마 같은 농작물을 세탁기에 씻는 바람에 세탁기가 자주 고장 나자 하이얼은 6개월 후 아예 고구마 세탁기를 출시했다. 물론 이를 통해 매출상 큰 이득을 본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는 대성공했다. 시장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도 하이얼의 ‘런단허이(人單合一:직원과 고객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 전략이 성공에 큰 몫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바로 이러한 전략 덕에 하이얼은 자국 제품에 대한 애정 때문에 해외 가전업체들엔 ‘무덤’이나 다름없는 일본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참고 자료 ‘중국 일등 기업의 4가지 비밀(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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