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초대 KB국민은행장 타계… ‘CEO 주가·1원 월급’ 주인공

<사진-> 밝은 표정으로 마지막 월례 조회 향하는 김정태 행장
 31일 오전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마지막 월례조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사 강당으로 입장하고 있다. 김 행장은 지난 달 10일 회계규정 위반으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적 경고를 받아 연임이 불가능해져 이날 조회가 행장으로써 마지막 조회가 됐다./황광모/경제/금융/ 2004.10.1 (서울=연합뉴스)
 hkmpooh@yna.co.kr
<사진-> 밝은 표정으로 마지막 월례 조회 향하는 김정태 행장 31일 오전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마지막 월례조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사 강당으로 입장하고 있다. 김 행장은 지난 달 10일 회계규정 위반으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적 경고를 받아 연임이 불가능해져 이날 조회가 행장으로써 마지막 조회가 됐다./황광모/경제/금융/ 2004.10.1 (서울=연합뉴스) hkmpooh@yna.co.kr
김정태 초대 KB국민은행장이 별세했다. 김 전 행장은 지난 1월 2일 오전 10시 30분 향년 67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개념을 은행권에 처음 도입한 금융계 ‘스타 경영인’이었다. 증권업계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2001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후 초대 통합 국민은행장을 역임했다. 최고경영자(CEO)의 몸값은 주가로 보여주겠다며 화제를 모으는 등 숱한 일화를 남겼다. 당시로선 이색적인 경영 방식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스톡옵션 행사로 140억 원의 시세 차익을 얻은 그는 절반을 사회복지 시설에 기부하는 등 베푸는 인생을 살았다.

김 전 행장은 1947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69년 조흥은행에 입행했다. 1976년 증권사로 옮겨 대신증권과 한신증권에서 임원을 지낸 뒤 1997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자리를 거쳐 1998년 한국주택은행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취임식장에서 그는 “월급을 1원만 받겠다”, “인사 청탁을 배격한다”고 공개 선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기존 임원을 전원 교체하고 직원 3000명을 내보내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바로 다음해 주택은행은 창립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자 은행권 최고인 45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취임 당시 3000원대였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치기도 했다. 또한 손해를 감수하고 콜머니를 쓰지 않는 ‘무차입 경영’을 표방해 외환 위기에서 버티는 동력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합병하면서 2001년 KB국민은행의 첫 번째 행장으로 취임했다. 스스로를 ‘철저한 장사꾼’이라고 말하며 행장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펼쳤고 전 직원에게 e일을 보내 희망하는 팀을 적어 보내라고 한 뒤 희망에 따라 대리급이나 여직원을 지점장으로 보내는 등 연공서열을 깨는 파격 행보도 선보였다. 또 신입 행원 전원에게 MBA 유학 지원을 내거는 등 인재 등용에도 파격적인 조치를 도입했다.

금융계에는 ‘김정태 배우기 열풍’이 불었고 CEO 능력이나 이미지가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CEO 주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재임 기간 중 숱한 화제를 뿌린 고인은 2004년 임기를 마치고 금융계를 떠났다.

퇴임 후엔 ‘농사꾼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대로 경기 화성과 일산의 농장에서 농사를 지었다. 서강대 경영학부에서 초빙교수로 ‘금융시장론’을 가르치고 50, 60대 은퇴자들의 재취업 등 ‘인생 2모작’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