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CSV 도입 도미노…‘비즈니스 연계’ 강조
최근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공유 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을 향후 경영전략으로 채택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는 국내 최대의 그룹사인 삼성그룹마저 CSV를 경영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2011년 등장해 빠르게 퍼져 가고 있는 CSV의 개념과 CSV가 바꿀 기업의 미래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2013년 1월 23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수뇌부와 사장단 40여 명은 1박 2일간에 걸친 밤샘 회의를 열었다. 이들 삼성그룹의 핵심 인물들은 2014년 그룹 경영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CSV’·‘마하경영’·‘초격차’를 내놓았다.‘마하 경영’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6년 사장단 회의에서 이미 제안한 개념이다. 제트기가 음속(1마하=초당 340m)을 돌파하려면 속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는 물론 엔진·소재·부품을 모두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제안이다. 2006년 당시에는 소니·인텔 등 1등 기업을 빨리 따라잡자는 의미가 강했지만 2013년 ‘마하 경영’은 1등 기업에 걸맞은 체질과 조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의미로 업그레이드됐다. 음속과 같은 혁신을 통해 이룰 목표는 ‘초격차(超隔差)’다. ‘초격차’는 2등이 따라올 수 없는 차이를 벌릴 때까지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기술과 마케팅에서 경쟁 상대를 3년 이상 압도함으로써 멀찍이 달아나겠다는 전략이다.
이 중 특히 눈에 띄는 키워드는 삼성그룹이 경영 혁신의 방법론으로 내세운 ‘CSV’다. 쉽게 말해 기업이 연계 기업, 산업계 구성원, 취약 계층 등 여러 사회적 구성원과 더불어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비즈니스 핵심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한다는 이론이다.
CJ·유한킴벌리·SPC 등도 CSV에 ‘올인’
최근 삼성그룹은 물론이고 CJ·유한킴벌리와 다양한 국내외 기업들이 CSV를 경영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2013년 11월 3일 창립 60주년 행사에서 ‘CSV 경영을 본격 실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CJ그룹이다. CJ그룹은 2013년 말까지 전략 수립을 마치고 2014년부터 본격적인 실행에 착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을 재검토해 확대·계승하거나 CSV 활동에 적합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CJ그룹은 지난해 11월 정기 인사에서 기존의 CSR팀을 CSV경영실(실장 민희경 부사장)로 확대, 개편했다. 12월 들어서는 CJ제일제당·CJ대한통운·CJ오쇼핑 등 계열사 3곳에 각각 CSV경영팀을 만들었다. CJ헬로비전·CGV 등 다른 계열사도 조만간 CSV경영팀을 신설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11월 25일에는 CJ그룹과 각 계열사에서 인사·재무·홍보 등 다양한 부문의 실무자 20여 명을 차출해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다. 구체적인 실행 전략과 예산, 인력 배치 계획이 수립되면 TFT 대상을 연구·개발(R&D), 영업 등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부서로 확대할 계획이다. CJ 관계자는 “한국에는 사실상 제대로 된 CSV 개념이 정립되거나 CSV를 실행하는 기업이 없다”며 “지금까지 도와주기 식 지원이 주를 이뤘다면 CSV를 통해 대기업·중소기업·소비자·지역사회가 상생하는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 유한킴벌리는 미래 성장 동력으로 시니어 사업을 선정하고 관련 용품을 개발하는 중소기업이나 사회적 기업과 상호 협력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CSV를 실천하고 있다. 또 SPC그룹은 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들고 수익을 창출하는 ‘행복한 베이커리&카페’ 사업을 운영하고 생산 농가와의 직거래를 늘리는 방식으로 CSV를 도입했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기업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CSV는 경영학에서도 비교적 최근 등장한 개념이다. CSV의 밑그림이 처음 그려진 시기는 2006년이다. 전략 경영 이론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 교수와 프리스탠더드그룹(FSG)의 공동 창업자 마크 R. 크레이머는 2006년 1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전략과 사회:경쟁 우위와 CSR 간의 연결”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즉 전략 경영의 관점에서 기업의 CSR를 바라본 것이다. 이후 마이클 포터 교수는 이 논리를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5년 후인 2011년 1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새 논문을 발표한다. 논문의 제목은 ‘공유 가치를 창출하라:자본주의를 재창조하는 방법과 혁신 및 성장의 흐름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CSV가 기존의 기업 사회 공헌 방식인 CSR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은 ‘비즈니스 연계’다. CSR는 자선 활동에 초점이 맞춰진다. 기업은 CSR를 통해 기업의 평판과 이미지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높아진 기업 이미지는 기업의 미래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결과 기업의 지속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그러나 기업이 CSR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이윤이 제대로 창출되지 않는다면 이는 계속될 수 없다.
반면 CSV는 한 발 더 나아가 프로젝트 수립 단계에서부터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다. 프로젝트 수립 단계에서부터 이윤 창출은 물론 사회적 가치가 포함돼 있다 보니 지속 가능성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예를 들어 진화된 CSR로 평가받는 ‘공정무역’을 따져보자. 가난한 농부가 재배한 농작물에 제값을 쳐주는 공정무역은 CSR 관점에서 빈곤을 해결하는 선행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파이를 재분배하는 것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CSV는 농법을 개선하고 농부를 위한 지역 협력과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접근한다.
따라서 농부들이 더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작물을 재배해 수확량을 늘리고 품질을 개선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파이 자체가 커지는 것이다. 프로젝트 수립 단계부터 ‘사회적 가치’ 챙겨
CSV를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영학자들은 크게 세 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첫째, 새로운 관점으로 시장과 제품을 보는 것이다. 인도의 타타자동차가 개발한 2500달러짜리 초저가 자동차 ‘나노’가 대표적인 예다. 자동차 시장의 기존 관점으로 보면 인도의 서민들은 고객이 될 수 없었다. 수천만 원짜리 기존 자동차를 구매할 형편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타자동차가 초저가 자동차를 개발한 덕분에 인도의 서민은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고객이 됐다. 서민들은 자동차를 구매해 이용할 수 있어 좋고 타타는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어 좋았다.
둘째, 원료 조달부터 제품의 생산·판매에 이르는 ‘가치사슬’의 과정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버려진 폐방수천으로 명품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이 사례다. 기존 기업들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켰지만 프라이탁은 버려진 폐품으로 명품 가방을 생산해 환경보호에 기여했다. 고객들은 이 가방에 만족했고 프라이탁은 돈을 벌었으니 일석삼조다.
셋째, 클러스터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글로벌 식품 기업 네슬레는 아프리카와 남미에 커피 클러스터를 조성해 가치를 창출했다. 네슬레는 클러스터에 농가들을 입주시키고 고품질의 커피를 재배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필요한 자금도 지원했다. 그 덕분에 농민들은 소득과 경쟁력이 높아졌으며 네슬레는 고품질의 원두를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네슬레와 농민 모두가 승자가 된 셈이다.
이런 점에서 CSV는 CSR보다 확실히 기업 친화적이다. 책임보다 공유 가치라는 용어가 경영자의 부담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을 기업의 가치사슬 안에서 이뤄낼 수 있다는 논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수익 극대화와 사회적 가치 창출 사이라는 이분법이 아닌 둘을 융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최근 국내외 기업들이 앞다퉈 CSV를 도입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CSV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가장 큰 비판은 CSV가 CSR의 주체를 이해관계인이 아닌 기업으로 규정하는 점을 지적한다. CSR의 본질은 사회적 이슈를 기업들이 여러 이해관계인과 함께 관리하고 대처하는 것에서 비롯되는데, CSV는 여전히 기업 중심 사고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또 ‘CSR도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CSV가 가능할까’라는 지적도 나온다. 쉽게 생각해 CSR는 기업의 한 부서 단위에서 진행해도 되는데 CSV는 전사적 차원에서 고려돼야 하기 때문이다.
돋보기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누구…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피터 드러커와 톰 피터스 등과 함께 세계 경영학의 3대 석학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특히 전략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전략컨설팅 회사인 모니터그룹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1979년 하버드대 부교수였을 당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어떻게 경쟁 요소들이 전략을 형성하는가’를 발표하면서 대표적 산업 분석 모델인 ‘5가지 경쟁 요소(5 Forces)’를 고안했다. 이 모델은 전략 분야에 일대 변혁을 가져 왔다. 포터 교수는 기업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지역 국가의 경쟁력에 관한 연구를 지속했고 최근에는 건강 관련 산업과 자선 산업에 대한 경쟁 전략을 연구 발표했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주요 저서로는 ‘국가 경쟁 우위’, ‘경쟁 우위 : 탁월한 성과의 창조와 유지’, ‘경쟁 전략:산업과 경쟁자 분석 기법’ 등이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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