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빨라져 기존 전략으로 한계… 단순한 원칙으로 의사결정 속도 높여야

얼마 전 인기 가요 코너에서 ‘2NE1’이 ‘씨스타’의 ‘효린’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답이야 다르겠지만 어떤 가수가 더 마음에 드느냐고 묻는다면 둘 중 한쪽을 고르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두 가수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소녀시대, f(x)까지 포함해 보자. 아마 선택에 필요한 시간이 조금은 더 길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보자. 이번에는 미스에이, 포미닛, 카라, 걸스데이, 크레용팝까지 포함하자. 어떨까. 하나를 골라내기가 훨씬 어려워졌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고개를 저으며 결정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YONHAP PHOTO-2168> FILE - This file photo made Jan. 6, 2010, shows John Chambers, CEO of Cisco Systems Inc., in Las Vegas. There are 117 companies in Standard & Poor?s 500 index that have announced since the start of 2011 they will raise their dividends, up from 78 increases in the same period last year, according to Howard Silverblatt, senior index analyst at S&P.  (AP Photo/Laura Rauch, File)/2011-04-01 18:39:48/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FILE - This file photo made Jan. 6, 2010, shows John Chambers, CEO of Cisco Systems Inc., in Las Vegas. There are 117 companies in Standard & Poor?s 500 index that have announced since the start of 2011 they will raise their dividends, up from 78 increases in the same period last year, according to Howard Silverblatt, senior index analyst at S&P. (AP Photo/Laura Rauch, File)/2011-04-01 18:39:48/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선택지가 많아지면 결정 더 어려워져
사람들은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훨씬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선택의 폭이 늘어나면 오히려 의사결정을 힘들어 한다. 심하면 선택을 거부하기까지 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결정 마비 현상(Decision Paralysis)’이라고 한다.

시장이 초경쟁 상황으로 들어선 지는 이미 오래전이고, 경영 환경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기간도 짧아져만 간다. 이제 눈코 뜰 새 없이 바뀌는 시장을 신속하게 읽어 내고 남들보다 빨리 기회를 선점하는 능력이 성장의 핵심 요소가 됐다. 과거 방식대로 복잡한 전략 과제를 늘어놓고 우선순위나 따지다가는 오히려 직원들을 결정 마비 현상에 빠뜨릴 뿐이다. 경영 환경의 변화는 전략 수립에서도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주로 두 가지 접근 방식을 사용해 왔다. ‘포지션(position) 전략’과 ‘자원(resource)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포지션 전략에서는 수익성을 중시한다.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어떤 자리(포지션)를 차지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규모가 크고 성장성이 높은 매력적인 시장을 확인하고 그 시장에서 좋은 자리, 즉 포지션을 차지한 다음 이를 강화하고 지켜 나가는 것을 성공 포인트라고 본다.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원천은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독특하고 차별화된 포지션이다. 운영과 비용 효율성을 최대한으로 밀어붙여 극단적인 저가 시장을 만들어 낸 ‘다이소’라든지 가방 하나에 수백만 원이 넘는 초고가 시장을 창출해 낸 명품 업체들은 모두 시장에서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포지션을 선점하고 굳게 지킴으로써 경쟁 우위를 만들어 냈다.

자원 전략에서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단계별로 살펴보면 우선 기업이 지향하는 목표, 즉 비전을 명확히 한 다음 내부 자원을 잘 활용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경쟁 우위의 원천은 자사만이 가지고 있고 남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자원, 즉 ‘핵심 역량’이다. 자원 전략에서는 핵심 역량을 개발하고 그 활용을 극대화함으로써 오랫동안 시장을 지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두 전략 모두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안정적인 시장에서 잘 작동한다. 회사의 시장 포지션이라는 것이 이리저리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핵심 역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객과 시장의 변화가 급격하지 않던 시기에 널리 받아들여졌고 기업들에는 의미 있는 성과를 가져다줬다.


시스코, M&A 성공률 90%의 비밀
문제는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여건이 예전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이제 시장은 과거와 같이 안정적이지 않고 변화의 속도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빨라졌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그 속도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을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전략으로만 대응하다가는 결정 마비에 빠지기 십상이다. 남보다 먼저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빠른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간단한 원칙’이 필요하다. 정신없이 바뀌는 환경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자사만의 의사결정 기준을 정하고 이를 통해 스피드를 높이자는 것이 ‘간단한 원칙’ 전략의 기본 논리다.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두 전략 모두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안정적인 시장에서 잘 작동했다. 회사의 시장 포지션이라는 것이 이리저리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핵심 역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한 원칙’은 주로 어떤 사업을 추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신속하게 결정해야 할 때 판단 기준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시스코는 스탠퍼드대에 재학 중이던 두 명의 학생이 1984년에 창립한 회사다.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중계해 주는 장치인 라우터(router)를 처음으로 판매한 것으로 시작해 지금은 7만 명이 넘는 직원이 40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거대 기업으로 발전했다. 시스코의 성장 비결은 다른 회사들보다 월등히 높은 인수·합병(M&A) 역량에 있다. 회사 설립 이후 2013년까지 166개의 기업을 인수했는데, 그 성공 확률이 무려 90%에 이른다. 여타 회사들의 M&A 성공 확률 30%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M&A 성공 확률을 이 정도로 높일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빠른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M&A 과정에 적용하는 시스코만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직원 수가 75명 미만이고 그중 엔지니어 비중이 75%를 넘는 회사만 인수한다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원칙’을 통해 자사에 적합한 인수 대상을 선정하고 경쟁사보다 빨리 의사결정을 하는 게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레고는 어린 아동들을 대상으로 블록 완구를 만들어 판다. 변덕이 심하고 쉽게 싫증을 내는 아이들은 절대 만만한 고객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달라지는 선호도를 분석하고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느라 시간을 보내다가는 적기에 신상품을 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레고는 신상품을 출시할 때 적용하는 자신들만의 심플한 원칙을 만들었다. “딱 보면 레고가 만든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가?” “어린이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가?”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도록 거리낌 없이 허락하겠는가?”라는 게 그것이다. 레고는 이러한 몇 가지 원칙만으로 경쟁사들보다 빠른 의사결정을 내렸고 이를 통해 블록 완구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간단한 원칙’ 전략이 꼭 사업 기회를 찾을 때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원칙으로도 쓰인다. 아카마이는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의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Contents Delivery Network) 서비스 기업이다. CDN은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영화나 대용량 파일을 다운 받을 때 전송 속도가 느려지지 않도록 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수없이 많은 인터넷 사용자들을 일일이 관리하기란 불가능한 법.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게 마련이고 이런 불만에 제대로 대처하는 게 성공의 핵심 요건이 된다.

아카마이의 경영자들은 고객 서비스 운영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은 반드시 기술 전문가들로 구성해야 하며 고객이 전화 또는 e메일로 해 온 문의는 반드시 한 번에 응답이 이뤄져야 하고 개발 부서 직원들은 반드시 고객 서비스 부서에 순환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카마이는 시장 변화에 일일이 대처하기보다 성공에 핵심적인 몇 가지 원칙을 우직하게 고수함으로써 지배적 사업자의 위치를 지켜내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결정 때 핵심이 되는 이런 원칙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내는 것일까.


‘간단한 원칙’은 실패에서 만들어진다
‘간단한 원칙’은 사업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통찰에서 만들어질 것 같지만 대부분의 원칙은 경험에서 온다. 특히 실패한 경험에서 올 때가 많다. 몇 번의 경험을 거치다 보면 구성원들 누구나 암묵적으로는 알게 되는 내용, 이것을 명확하게 나타낸 것이 바로 ‘간단한 원칙’이다.
<YONHAP PHOTO-0301> A model of St. Patrick's Cathedral built in LEGO pieces is surrounded by other New York City landmarks after an intricately detailed 12 foot-tall model of One World Trade Center built out of more than 4,000 LEGO bricks is unveiled at LEGOLAND Discovery Center in Yonkers, New York on June 28, 2013. LEGOLAND Discovery Center Westchester is a $12 million, 32,300 square-foot indoor attraction geared towards children ages 3-10 and their families.    UPI/John Angelillo/2013-06-29 06:56:10/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 model of St. Patrick's Cathedral built in LEGO pieces is surrounded by other New York City landmarks after an intricately detailed 12 foot-tall model of One World Trade Center built out of more than 4,000 LEGO bricks is unveiled at LEGOLAND Discovery Center in Yonkers, New York on June 28, 2013. LEGOLAND Discovery Center Westchester is a $12 million, 32,300 square-foot indoor attraction geared towards children ages 3-10 and their families. UPI/John Angelillo/2013-06-29 06:56:10/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시스코는 초창기 M&A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맛봤다. 시스코는 자사 특유의 업무 방식과 고유한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는 회사다. 이 때문에 나름의 업무 프로세스와 조직 문화를 가진 회사와는 화학적 결합이 쉽지 않았고 그것이 M&A 실패의 주된 원인이 되곤 했다. 좋은 사업 아이템과 우수한 인재를 갖고 있지만 업무 방식이나 조직 문화가 너무 뚜렷하지 않은 회사를 골라야 했다. 실무자들이 이런 조건을 판단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원칙이 바로 ‘75명 미만의 회사, 엔지니어 비중 75% 이상’이라는 조건이다. 직원 수가 75명 미만이며 엔지니어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아직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고 고유한 업무 방식이나 조직 문화도 아직은 정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문화 충돌을 피하면서 M&A 성공 확률을 높이겠다는 의도를 이러한 ‘간단한 원칙’으로 표현한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원칙을 만들기 위해 정교한 통계나 철저한 분석 결과를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도 실무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거나 까다로워서는 안 되고 간명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돼야 한다. ‘머니 볼(Money Ball)’로 유명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Billy Beane)은 저예산으로 탁월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떤 선수들을 뽑아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복잡한 회귀분석 과정을 거쳤다. 기법 자체는 매우 어렵고 난해했지만 빈은 스카우터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자신의 원칙을 말해줬다. 가령 ‘고등학교 선수는 뽑지 않는다’거나 ‘알코올이나 마약 등의 문제를 가진 선수는 안 된다’와 같이 말이다.

기존 방식대로 만들어진 전략이 쓸모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회사의 전략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 보자. 만약 책꽂이 깊숙한 곳이라든지 두툼한 바인더 안이라면 문제가 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직원들이 쉽게 활용할 수 없는 전략은 이미 죽은 것이다. 반면 비즈니스를 하면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몇 가지 원칙을 세심하게 만들고 유의해 사용한다면 실질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이끄는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조미나 IGM 세계경영연구원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