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명 중 20명이 새 인물…뉴 리더 활약 돋보여

‘2013 올해의 최고경영자(CEO)’ 설문 결과는 예년과 사뭇 다르다. 1위를 석권한 CEO 또는 상위권에 속한 CEO가 대개 삼성 또는 현대그룹에 집중되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다양하게 분포됐다.

삼성 계열에서는 총 5명이 순위권에 진입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1위를 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종합)을 비롯해 박상진 삼성SDI 사장과 최치준 삼성전기 사장이 전기·전자 제조업 부문에서 나란히 3, 4위에 올랐다. 아쉽게도 1위 자리를 내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비제조 2위)도 있으며 같은 부문 4위에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이 뽑혔다. 삼성에 이어 현대자동차그룹에서는 김충호 현대자동차 사장과 전호석 현대모비스 사장이 상위권 내 진입했다.

LG그룹은 박진수 LG화학 사장(일반 제조 3위),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전기·전자 제조 2위),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일반 비제조 1위) 등 총 3명이 상위권에 들었다. SK그룹은 전기·전자 제조 1위에 뽑힌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을 비롯해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일반 비제조 5위) 등 2명이 상위권에 랭크됐다. GS그룹 역시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유통·식품업 4위)과 허태수 GS홈쇼핑 사장 등 2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번 조사에서 새롭게 등장한 20명의 CEO들이 눈길을 끈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먼저 전자·전기 제조업 부문에서 올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무른 SK하이닉스의 박성욱 사장과 LG디스플레이의 한상범 사장을 꼽을 수 있다.

1위인 박성욱 사장은 ‘기술통’으로 불리는 정통 엔지니어 출신 CEO다. 그는 취임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최대 실적을 거둔 것에 높은 점수를 받아 화려하게 진입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공장 화재에도 불구하고 올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0월 6Gb(기가비트) LPDDR3 칩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기술력 경쟁도 주도하고 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수직 상승
2위에 오른 한상범 사장 역시 30여 년간 정보기술(IT) 업계에 몸담고 있는 디스플레이 전문가다. 특히 그는 손대는 사업마다 세계 점유율 1위를 한다고 해서 ‘1등 제조기’라는 별명도 붙었다. 2011년 부사장 취임과 동시에 차별화된 제품을 바탕으로 적자 탈출에 매진해 8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한 사장은 지난해 말 사장으로 승진해 더욱 활약했다. 한 사장의 경영 스타일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술로 경쟁력을 높인 뒤 앞선 기술로 시장 선도형 제품을 출시한다’는 개척자적 정신이 강하게 배어 있다. 실??한 사장은 지난 2월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양산을 결정하고 생산 라인에 7000억 원 투자를 결정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비제조업 부문에서는 4위를 차지한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이 새롭게 등장했다. 임 사장은 올 1월 제일기획의 지휘봉을 잡았다. 과거 제일기획이 종합 광고대행사로서의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 바 있는 임 사장은 취임 이후 ‘2013년 차원이 다른 사람, 차원이 다른 회사’를 혁신 목표로 삼았다. 그의 목표는 곧 두각을 나타냈다. 제일기획은 올해 광고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11월 세계 5대 광고제 중 하나인 ‘2013 런던국제광고제’, 9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3 스파익스 아시아’, 3월 ‘2013 아시아태평양 광고 페스티벌’, 6월 세계 최대 광고 축제인 ‘2013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 등에서 40여 개의 상을 거머쥐며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다.

비제조에 속하는 유통·식품 업체 CEO들은 모두 올해 처음 뽑힌 인물들이다. 특히 유통계의 맞수 신세계와 롯데가 또 맞붙었다. 한국 대형 마트의 선두를 달리는 이마트의 허인철 사장과 롯데쇼핑의 신헌 사장이 나란히 순위에 올랐다. 이 두 CEO의 불황을 뚫는 방법은 비슷하다. 판매 시설에 문화 시설을 같이 만드는 복합 쇼핑몰을 통해 고객을 끌어들여 성장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전략이다.

일반 제조업 부문에서 아깝게 1위를 놓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성장도 돋보인다. 지난해 일반 제조업 5위에서 올해 2위에 올랐다. 아모레퍼시픽의 국내외 시장 호실적은 올해에도 30%를 웃도는 성장 폭을 기록하며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실적은 서 회장의 ‘소통 경영’과도 맞물린다. 아모레퍼시픽 직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경배 회장을 ‘서경배님’이라고 부른다. 이는 2002년부터 서 회장의 의지에 따라 실천되고 있다. 직원과의 소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서 회장이 꺼내든 비장의 카드다. 즐겁고 창의력 넘치는 일터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권위주의’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직원들이 즐겁게 일해야 기업도 성공한다는 것이다.


금융업, 수장 교체로 순위서 빠져

떠오르는 CEO가 있는가 하면 지는 CEO도 있다. CEO에게 실적은 양날의 칼이다. 실적이 좋으면 CEO의 평가가 올라가지만 실적이 나쁘면 스타 CEO라도 자리보전이 어렵다. 지난해 전기·전자 제조업 1위를 차지한 LG전자는 올해 실적 부진으로 피투표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점점 잊히는 CEO로 전락하고 있다. 그동안 엔씨소프트의 성장은 김 대표가 주도해 왔다. 특히 김 대표는 게임의 기획부터 개발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신경 쓴다. 창립자이자 최대 주주로 누구보다 엔씨소프트 성장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지난해 지분 매각과 함께 김 대표에 대한 기대가 꺾였다는 평가다.

금융업계도 큰 바람이 일었다. 삼성생명보험·메리츠화재해상보험 등의 수장들이 줄줄이 교체되며 이번 조사 결과 순위에서 빠졌다. 최근 보험 업계의 성장 둔화가 수장 교체를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