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기능 혹평 쏟아지지만 세계 최초 출시로 시장 선점 효과 쏠쏠

[비즈니스 포커스] 갤럭시 기어 흥행 부진에도 삼성전자가 웃는 이유
삼성전자가 애플·구글보다 한발 앞서 웨어러블 디바이스(착용할 수 있는 기기) 시장 선점을 노리고 세계 최초로 출시한 갤럭시 기어는 과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는 지난 9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갤럭시 기어를 시장에 처음 선보였다. 갤럭시 기어는 손목시계형 스마트 기기인 스마트 워치로, 기존의 스마트 워치가 전화나 문자가 오는 것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다면 갤럭시 기어는 직접 통화할 수 있다는 것에서 상당한 차별점을 갖고 있다.

갤럭시 기어는 공개 직후부터 국내외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혁신적이라는 호평도 있었지만 기능이나 디자인이 기대 이하라는 의견도 많았다. 워싱턴포스트는 “갤럭시 노트3의 기능을 대거 시계 형태로 옮겼다”면서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술의 중요성을 확실히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디자인이 일관성이 없고 혼란스럽다. 아무도 이 시계를 사지 않을 것이며 사서도 안 된다”고 혹평했다.

삼성전자는 9월 25일부터 한국을 포함해 북미 시장 등 세계 58개국에 갤럭시 기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일부 한국 언론과 외신이 갤럭시 기어의 판매량이 한국에서만 5만 대 수준이라고 보도하자 삼성전자 측은 국내외를 합해 누적 판매량이 80만 대 이상을 기록했다고 반박했다. 다만 80만 대라는 수치는 소비자에게 실제 판매된 물량이 아니라 휴대전화 대리점 등 공급 기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전문가들은 비록 공급자 기준으로 80만 대가 팔렸다고 하더라도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내놓은 혁신적인 제품치고는 소비자 호응도가 낮다고 이야기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소비자와 친해지기 과정
‘흥행 부진’ 논란은 지난 12월 초 SK텔레콤이 갤럭시 노트3 또는 갤럭시 라운드와 갤럭시 기어를 묶은 번들 패키지를 전국 매장에서 판매하면서 더욱 부채질하게 됐다. SK텔레콤 측은 스마트 기기에 대한 고객의 욕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구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같은 패키지 상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지만 시장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갤럭시 기어가 잘 팔리지 않다 보니 다른 제품과 묶음으로 만들어서라도 재고 처리에 나섰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갤럭시 기어는 실패한 것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최근 보도되고 있는 여론과는 조금 다르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라는 점에서 ‘시장 선점 효과’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

김지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앞선 기술로 신흥 시장에 가장 먼저 발을 들여놓았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향후 다른 기업에서 어떠한 스마트 워치가 출시되더라도 갤럭시 기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간 애플로부터 자사의 제품을 잘 따라하는 ‘카피캣(모방꾼)’이라고 비난을 받아 온 삼성은 올해 갤럭시 기어와 오목하게 휘어진 커브드 스마트폰인 갤럭시 라운드 등을 세계 최초로 출시하며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전환하고 있다는 평가를 이끌어 냈다.

유회준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삼성은 포스트 스마트폰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소비자와 친해지게 하는 중”이라며 갤럭시 기어에 대한 혹평 또한 대중이 신흥 시장을 받아들이는 방식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그는 “완벽하지 않은 것 같은 일종의 ‘프로토 타입’의 제품을 출시한 것은 ‘친해지기 과정’을 통해 향후 판로를 닦아 놓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최근 발표한 ‘초점:웨어러블 디바이스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시장조사 업체인 IMS리서치를 인용해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시장 규모가 2016년까지 60억 달러(출하량 1억7000만 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전망하는 것은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모바일 기술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휴대전화 업계의 글로벌 1위 기업인 삼성으로서는 미리 돈이 될 만한 시장을 확보할 필요성이 충분한 것이다.


2014년 전후 웨어러블 출시 붐 예상
하지만 여러 걸림돌 때문에 갤럭시 기어가 시장 형성에는 실패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당초 삼성 측은 갤럭시 기어가 갤럭시 노트3와 연동해 스마트폰의 활용도를 더욱 높여 준다는 것을 강조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갤럭시 노트3가 없으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삼성전자는 현재 갤럭시 노트3와 노트2를 비롯해 갤럭시 S4와 S3 등 연동되는 자사 단말기를 꾸준히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타사 제품’과의 개방적인 연동을 바라는 눈치다. 갤럭시 기어를 사용하기 위해 스마트폰까지 갤럭시로 갈아탈 의사는 없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포커스] 갤럭시 기어 흥행 부진에도 삼성전자가 웃는 이유
갤럭시 기어의 가격 또한 비싸다는 지적이 나왔다. 갤럭시 기어는 현재 한국에서 299달러(약 33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갤럭시 노트3와 연동해야 하기 때문에 다 합치면 100만 원이 넘는다. 액세서리 치고는 저렴한 편이라고 할 수 없다. 배터리 수명도 하루 정도라 지나치게 짧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 애널리스트는 무엇보다 디자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갤럭시 기어는 액세서리의 개념이기 때문에 기능 이전에 디자인이 구매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했다. 500원짜리 동전 모양의 원형 기기 등 심플한 디자인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판매하는 미스핏(Misfit)의 스리다 이옌가 창립자는 지난 11월 한국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아무리 멋진 팔찌일지라도 내 여자 친구는 드레스를 입은 날 절대 전자 기기를 손목에 걸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패션으로서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언급했다.

무엇보다 갤럭시 기어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효용 가치가 있는 서비스를 발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재의 기능으로는 얼리어답터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엔 손색이 없지만 손목시계로 전화를 받고 문자를 확인하는 기능 외에는 소비자들이 왜 갤럭시 기어를 사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송종호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비롯해 기존의 제품과는 다른 경험치를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갤럭시 기어에 헬스케어 등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는데 이 부분조차 탑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제품을 사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현재는 70개의 애플리케이션을 탑재했는데 기능이 지나치게 다양하고 전력 소모가 많다면 오히려 쓸모없는 기계로 인식된다”며 “대중적 호응을 얻으려면 사용 영역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팔목에 차는 밴드 형태로 하루 동안 소모한 칼로리, 걸음 수, 거리 등을 측정할 수 있는 나이키의 퓨어밴드나 증강현실(AR)을 적용해 스키장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오클리의 스마트 글래스 등을 예로 들었다. ‘정보와 오락’ 부문을 강조한 구글 글래스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경쟁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기어를 필두로 2014년 전후로 안경·시계 등 웨어러블 기기들의 출시 붐이 예상되는 등 국내외의 웨어러블 디바이스 산업은 점점 더 가속도가 붙고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구글의 ‘구글 글래스’ 완성품과 애플의 ‘아이워치’ 등을 공식 출시하면서부터 웨어러블 시장 업체들의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웨어러블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의 막강한 라이벌로 손꼽히는 애플은 현재 100명의 개발자를 투입해 ‘아이워치’를 개발 중이며 관련 특허도 79종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