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물가 안정 임무도 유효성 상실…경기 예측 능력도 약화

중앙은행의 변신이 빨라지고 있다. 차기 미국 중앙은행(Fed) 총재로 내정된 재닛 옐런도 중앙은행이 새로운 환경에 맞게 변신해야 한다는 입장을 첫 무대랄 수 있는 상원 인사 청문회에서 밝혔다. 벤 버냉키 현 Fed 의장과 사뭇 다른 입장이어서 벌써부터 ‘옐런 독트린’이라는 용어까지 나온다.

여러 변화 가운데 가장 눈에 띄고 주목받는 것은 중앙은행 목표가 정책 여건에 맞게 수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의 목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있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들은 ‘천사와의 키스’만 할 것을 주장해 왔다.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악마와의 키스’라고 할 정도로 금기시해 왔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글로벌화되고 시장경제가 활성화됨에 따라 물가는 추세적으로 안정돼 왔다. 날로 격화되는 경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최종 상품의 가격 파괴로 ‘월마트 효과’가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물가는 대부분이 중앙은행이 설정한 인플레이션 타기팅 선을 밑돌고 있다.

그런 만큼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만 고집하기보다 고용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 ‘악마와의 키스’가 ‘천사와의 키스’로 대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이미 Fed는 작년 12월부터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있고 옐런은 후자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가상 화폐 등장으로 변화 내몰린 중앙은행
옐런의 이런 시각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던 ‘최적 통제 준칙(optimal control rule)’이다. 이 준칙은 Fed의 양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해 두 목표로부터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정책 금리 경로를 산출해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특히 고용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면 물가가 일시적으로 목표치를 벗어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옐런, 물가보다 고용 창출에 무게
Fed는 ‘테일러 준칙’과 ‘수정된 테일러 준칙’에 의해 산출된 적정 금리를 토대로 통화정책을 운영해 왔다. 두 준칙도 단순히 물가 상승률에 성장률을 더해 금리의 적정성을 따지는 피셔 공식과 달리 중앙은행이 물가와 성장 등 여타 거시경제 목표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뒀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에는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정상적인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과 고용 창출은 한계를 맞고 있다. 정책 금리도 ‘제로’ 수준에 묶여 있어 더 이상 내릴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종전의 ‘테일러 준칙’과 ‘수정된 테일러 준칙’은 한계가 크게 노출되는 만큼 ‘최적 통제 준칙’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옐런의 이 같은 주장은 어떤 경우든 물가 목표치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다른 준칙과는 대조적이다. 통화론자들은 특정국이 금리 등을 변경할 때 ‘통화 준칙(monetary rule)’에 따를 것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물가 이외의 고용 등 다른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기준 금리를 변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최적 통제 준칙에 따른 기준 금리 결정 방식이다. 통화론자 입장에서 보면 ‘악마 중의 악마와의 키스’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유럽중앙은행(ECB)도 ‘법치(法治)’보다 ‘인치(人治)’에 의한 기준 금리 결정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또 하나 중앙은행의 변신을 서두르게 하는 것은 가상 화폐다. 최근 들어 비트코인·라이트코인·피어코인·네임코인·비비큐코인 등 가상 화폐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우후죽순처럼 빠르게 태어나 확산되고 있다. 포인트·마일리지·쿠폰 등 대안 화폐도 상용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현찰(법화: legal tender)이 필요 없는 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금리 조절 능력 무력화될 수도
이론적으로 가상 화폐(대안 화폐도 포함)가 확산됨에 따라 통화정책의 유효성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대목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본원통화의 대체 문제다. 갈수록 본원통화의 상당 부분을 가상 화폐가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보면 본원통화 축소에 따른 화폐 발행 차익(seigniorage)의 감소를 의미한다. 특히 화폐 발행 차익 감소는 통화정책 수행 비용의 재정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둘째,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가상 화폐를 누가 발행하느냐와 가상 화폐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중앙은행 이외의 다른 주체들이 가상 화폐를 발행한다면 현금 보유 성향의 저하로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크게 약화된다. 또 가상 화폐가 현금 통화와 결제성 예금까지 대체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한다면 발행 주체와 관계없이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은 심할 경우 무력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셋째, 가상 화폐의 발달로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통화승수 이론에 따르면 통화량은 본원통화와 통화승수에 의해 결정되고 통화승수는 현금 보유 비율과 지급 준비율에 따라 좌우된다. 이 이론대로라면 가상 화폐가 현금 통화를 대체하면 통화승수는 확대된다. 넷째, 가상 화폐의 발달은 여러 각도에서 통화정책의 전달 경로(transmission mechanism: 통화 공급 조절→금리 변화→총수요 증감→성장률 혹은 물가 조절)에 영향을 미친다. 그중 가상 화폐의 발달로 모든 금융거래에 위험 헤지가 수월해짐에 따라 경제 주체들이 금리 변화에 덜 민감해져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
<YONHAP PHOTO-0290> Signs on window advertise a bitcoin ATM machine that has been installed in a Waves Coffee House in Vancouver, British Columbia October 28, 2013. The new ATM will trade currency for online bit coins, a form of digital currency. The ATM is expected to go live on October 29. REUTERS/Andy Clark    (CANADA - Tags: SOCIETY BUSINESS)/2013-10-29 0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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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가상 화폐 등장으로 변화 내몰린 중앙은행
가상 화폐에 따른 본질적 문제와 함께 갈수록 떨어지는 중앙은행의 예측력을 강화하는 과제도 시급하다. 지금처럼 다른 전망 기관보다 늦게 그것도 예측력이 월등히 높지 않고서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거나 선제적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예측 모델 재설정, 시계열 일관성 유지, 정성적 평가 등에 고민도 있어야 한다.

가상 화폐 확산에 따른 새로운 환경에 맞게 새로운 통화 지표를 개발해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등을 정확히 추정해야 한다. 갈수록 가속력이 붙을 가상 화폐 발행에 대한 규제와 위조지폐 방지 등을 통해 ‘폐지 혹은 무용론’까지 불고 있는 현찰(법화)의 위상도 강화해야 할 때다. 각종 가중치와 산출 방식 현실화를 골자로 한 통계 개편 작업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모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화돼야 한다. 고유 권한인 금리 결정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 화폐 발달 등에 따라 우려되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 수단을 개발하는 데 밤낮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관행대로 통화정책을 추진했다가는 효과는 고사하고 독립성과 신뢰성에 손상을 받으면서 ‘중앙은행 축소론’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