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 브랜드케이스 대표

[프로의 세계] “낡은 브랜드에 숨결을 불어넣어요”
브랜드의 철학과 성격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일. 기업 이미지 통합(CI: Corporate Identity)이나 브랜드 이미지 통합(BI:Brand Identity) 안에 핵심 가치를 담아내는 일. 모두 브랜드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다. 김진석 브랜드케이스 대표는 20년 넘게 이 일에 청춘을 바쳐 왔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 디자인을 하다가 브랜드 디자인에 점차 매력을 느꼈어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고민하는, 초석이 되는 디자인 작업이라고 생각했고 쭉 몸담게 됐습니다.”


오래된 브랜드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브랜드 컨설팅은 크게 브랜드 전략, 브랜드 네이밍, 브랜드 디자인 영역으로 구분된다. ‘브랜드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 대표는 이 모든 것을 총괄한다.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팅 기업 인터브랜드를 거쳐 현재는 브랜드케이스 대표로 수많은 기업의 브랜드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시각적인 표현에 비중을 두긴 하지만 브랜드의 콘셉트가 되는 핵심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것부터 총괄적으로 브랜드 관리를 하는 게 제 일입니다.”

그의 손을 거쳐 새롭게 옷을 입은 브랜드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하나하나 다 공이 들어간 작품인지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꼽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인 톱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은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갈수록 컬래버레이션이 활발해지는 추세입니다. 저도 이탈리아의 세계적 건축가이자 디자인 거장인 알레산드로 멘디니와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감각적인 부분이나 인생을 관조하는 방식이나 역시 거장은 남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배웠습니다.”

특히 요즘엔 새롭게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브랜드를 다시 재정비하는 브랜드 리뉴얼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 대표는 브랜드 업그레이드는 파워 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브랜드가 활성화된 게 1980년대부터인데, 그때 탄생한 브랜드를 2013년 현재의 시대 상황에 맞게 개선하고 변화하는 작업을 활성화해야 브랜드가 롱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데도 관심이 있지만 이와 같이 오래된 브랜드를 재해석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더 즐겁습니다.”

현대적 재해석을 하기 위해서도 트렌드를 발 빠르게 좇고 시대의 화두를 덧입히는 것도 필요하지만 김 대표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트렌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트렌드만 좇다 보면 나만의 독특한 특성을 나타내는 데 한계가 있죠. 브랜드가 가진 정체성을 알고 일관성 있는 브랜딩 활동을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도 바로 브랜드의 정체성과 핵심 아이디어를 파악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브랜드로 지속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디자인에 그 정체성이 한눈에 나타나도록 표현한다.

“일례로 한국경제신문은 ‘위즈덤’을 핵심 아이디어로 잡았습니다. 이에 따라 컬러나 레이아웃 등 모든 편집 디자인이 지혜를 시각적·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일관성 있는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
김 대표는 좋은 브랜드는 일관성 있는 가치를 제공하는 브랜드로 보고 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정체성이 소비자에게 인식됐을 때 좋은 브랜드가 탄생한다는 것. 예를 들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동차 기업이라면 광고 문구나 슬로건, 기업 로고에도 그것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상품 개발과 고객 서비스 단계에서도 일관된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세계적 자동차 기업 볼보는 ‘안전’을 위해 자체 개발한 삼점식 안전벨트를 로열티 없이 모든 자동차 회사에 사용하도록 했고 브랜드 가치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안전을 강조하던 곳에서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갑자기 ‘우리 차는 스피디한 상품’이라고 강조한다면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겠죠.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실수를 범하는데, 일관성 있게 끌고 가는 게 좋은 브랜드고 또 세계적인 브랜드로 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가 최근 맡고 있는 프로젝트는 힐링을 콘셉트로 한 리조트의 브랜딩 작업이다. 촌장이 거주하고 있는 리조트로, 산속에 있고 건물도 환경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건축됐다. 그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브랜드를 더 깊이 경험하기 위해 직접 리조트에 머무르며 생활했고 의도된 불편함을 통해 건강한 삶을 누리는 가치를 브랜드에 담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종이만 연구해서는 진정성 있는 디자인이 나오기 어렵죠. 직접 경험하거나 고객과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핵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브랜드의 정체성은 클라이언트가 더 많이 알고 있거든요. 다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저와 같은 전문가가 발견해 주는 것이죠. 소통 능력은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아주 중요한 자질입니다.”
[프로의 세계] “낡은 브랜드에 숨결을 불어넣어요”


“브랜드의 정체성은 클라이언트가 더 많이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소통 능력은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아주 중요한 자질입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일을 “분석 능력과 감성 능력을 모두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고 표현했다. 또 야근이 많다는 점도 이 직업의 특성이다.

“바쁠 때는 크리스마스도 회사에서 보내고 4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었죠. 업무 강도가 세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가능한 한 야근을 줄여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직원들에게도 가능한 한 그렇게 해주고 싶죠. 창조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즐겁지만 또한 고통스럽다는 것은 이 직업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봅니다.”

그 대신 1년에 한두 번은 꼭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한다. 김 대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행지는 유럽이다. 휴식을 취하러 가지만 거기서도 어쩔 수 없이 직업병이 발동한다.

“유럽은 디자인의 디테일이 좋아요.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거기서도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좋은 영감을 많이 받고 오죠.”

20년 동안 한길을 걸었고 쉼 없이 달려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어떠한 사명감이 있다기보다 “일이 정말 즐겁기 때문”이라고.

“모든 브랜드 회사가 그렇겠지만 전략적으로 성공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를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특히 제가 보는 브랜드 컨설팅의 미개척지는 웹입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에는 아직 브랜드 개념이 잘 도입되지 않았지만 브랜드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는 영역입니다. 메인 페이지 디자인만 봐도 그 브랜드의 성격과 특성이 잘 나타나도록 설계할 수 있죠.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웹 사이트 관리를 너무 형식적으로 한다는 게 브랜드 디자이너로서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