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 시공 경험 발판 삼아 해외시장 노크

‘경제학 박사 출신의 총리가 첨단 제품 세일즈맨으로 변신.’ 얼마 전 중국 언론에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고속철도 모형 앞에서 중동·유럽 정상들에게 설명하는 사진과 함께 나온 기사의 한 구절이다. 리 총리가 요즘 해외 정상들과 만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의제가 ‘고속철 판촉’이다. 중국이 고속철도 해외시장 개척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2011년 7월 23일 발생했다고 해서 ‘723사건’으로 불리는 고속철 추돌 사고와 고속철 해외시장 개척을 진두지휘했던 류즈쥔 철도부장이 부패 혐의로 수감되면서 주춤했던 고속철 해외 비즈니스가 리 총리의 세일즈 외교에 힘을 받아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평을 듣는다.

12월 2일 베이징을 찾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리 총리에게 런던과 영국 북쪽을 잇는 고속철도 프로젝트에 중국 투자를 환영한다고 운을 뗐다. 리 총리는 “고속철처럼 두 국가의 관계도 고속으로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며 화답했다.
[GLOBAL_중국] ‘고속철 세일즈’에 팔 걷은 리커창 총리
중동·유럽 정상들에게 자국 고속철 예찬론 설파
앞서 11월 말 중동·유럽 정상회의 참석 차 루마니아를 찾은 리 총리는 중국 철도 장비 전시회를 함께 참관한 16명의 중동·유럽 정상들에게 중국 고속철도 예찬론을 펼쳤다. “중국의 고속철 기술과 장비는 이미 성숙했고 시공 경험도 풍부하며 경쟁 우위가 뚜렷하기 때문에 각국의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고 시장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다.” 하루 전 루마니아에 도착한 리 총리는 헝가리 및 세르비아 총리와 함께 헝가리와 세르비아를 잇는 고속철도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KOTRA 다롄무역관에 따르면 중국은 고속철도망을 17개 국가로 확대하고 시속 320km의 열차 운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석탄·철광석 등 에너지 자원을 수입하고 주변 국가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에 본격적으로 고속철도가 운행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베이징~톈진 간 고속철부터다. 10년이 채 안됐지만 중국의 고속철도 길이는 이미 1만km에 달한다. 세계 최장이다. 중국 기업으로선 내수 시장만으로 세계 최고의 시공 경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게 2009년이다. 중국은 당시 러?첸틘?통해 유럽 아시아 고속철도, 우루무치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독일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고속철도, 쿤밍에서 시작해 동남아 국가를 연결해 싱가포르까지 이어지는 범아시아 철도 등 3개 구간을 중국 고속철로 깐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의 고속철이 해외시장으로 나가는 것은 세계경제에서 값싼 노동집약형 상품을 공급해 온 중국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중국 언론은 이를 두고 8억 장의 셔츠를 팔아 에어버스 1기를 구입했던 중국이 이젠 고속철을 해외에 팔아 고기나 쌀을 사주는 시대가 됐다고 평가한다. 루마니아에서 육류와 소를, 태국에서 쌀을 각각 수입하기로 한 것을 두고 나온 비유다. 고속철처럼 빠르게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중국의 행보는 독일·프랑스·일본 등 전통적인 고속철 강국은 물론 후발 경쟁 주자인 한국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베이징 =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