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수제작 내세운 ‘공방 기업’ 인기몰이

지난 11월 27일 청담동 사거리. 수입 매장이 즐비한 거리 가운데 골목 어귀에 자리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100% 퓨어’, ‘100% 핸드메이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평범한 카페로 보이지만 가구 회사다. ‘퍼니처 카페’ 형식으로 운영되면서 가구를 전시하는 ‘쇼룸’이자 고객들과의 계약이 이뤄지는 직매장으로 활용된다. 인사를 건네는 세 명의 공동대표는 모두 20대 후반의 ‘젊은 목수들’이다. 홍익대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창업한 후 경영하면서 직접 디자인과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명품의 거리’ 청담동에 전통 산업의 목수라니, 선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2011년 청담동에 위풍당당히 입성한 겁 없는 목수들은 불과 3년 만에 연매출 70억 원에 이르는 어엿한 가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탁의성 카레클린트 대표는 “처음 홍대에 작업실을 마련할 때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의 지하 방에서 시작했다”며 “처음부터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다짐으로 의기투합했고 홍대 작업실과 온라인에서만 가구를 팔다가 월매출 7000만 원을 올리면서 쇼룸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명품 거리’ 청담동 사로잡은 젊은 목수들
[비즈니스 포커스] ‘명품 거리’ 청담동 사로잡은 젊은 목수들
연 매출 70억 원, ‘대단해요’

이들의 선택은 적중했다. 청담동에 진출하자마자 월매출 1억 원을 기록해 현재는 월 4억5000만 원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고객 중에는 ‘청담동 사모님’과 ‘인기 연예인’들도 있다. 카레클린트뿐만 아니라 최근 3년 사이 이와 같은 수제 가구를 제작하는 공방 창업이 줄을 이으며 주무대 홍대를 벗어나 소비 시장의 중심지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

과거 가구 생산의 중심은 ‘목공소’였다. 전통 제조업으로 장인들이 손으로 모든 제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점차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쇠락해 가는 산업이 됐다. 가구 산업은 대형 생산 체제의 가구 및 인테리어 기업들에 의해 재편됐다. 관련 학과 졸업생들은 소수 대기업으로 취업하거나 작품 활동을 하는 전문 작가의 길을 걸었다. 손으로 깎고 다듬는 제작의 매력에 빠져 공방을 차려도 ‘배고픔’을 감수해야 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생산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아는 사람만 찾고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 한계였다.


뜨는 공방의 공통점은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철학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매터앤매터는 인도네시아 폐가구를 재활용하는‘업사이클링’과 투박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그런데 고수익을 올리는 공방이 생기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바이헤이데이·시세이·매터앤매터 등 수제작 원목 가구 브랜드들은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고 입지 좋은 곳에 쇼룸을 오픈하고 유명 백화점에 입점하며 규모를 키웠다. ‘공방’을 넘어 ‘기업형 공방’이 된 것이다.

변화를 몰고 온 이들은 도전 의식이 투철한 20~30대 젊은 목수들이다. 앞서 언급한 가구 브랜드들이 모두 그렇다. 전통에 젊은 감각을 입혀 ‘수제작 원목 가구’라는 콘셉트로 가구 시장의 틈새를 공략했다. 가구를 맞춤형으로 직접 제작하거나 고급 수제작 원목 가구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탁의성 대표는 “카레클린트의 성공 이후 최소 30개 이상 비슷한 콘셉트의 수제작 가구 회사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인 텐바이텐과 29cm 등에서는 100여 개가 넘는 가구 전문 브랜드들을 볼 수 있다. 아이파크 백화점 등 대형 유통 업체에서도 이 시장을 잡기 위해 명품 브랜드 못지 않는 수수료를 제안하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비즈니스 포커스] ‘명품 거리’ 청담동 사로잡은 젊은 목수들
[비즈니스 포커스] ‘명품 거리’ 청담동 사로잡은 젊은 목수들
공방 창업이 활성화되면서 목수는 블루칼라의 노동력과 화이트 칼라의 아이디어가 결합된 ‘브라운 칼라’의 인기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14년 트렌드의 하나로 ‘몸’을 꼽으며 ‘브라운 칼라’가 새롭게 대두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모든 제작 과정 블로그에 공개
이처럼 ‘제품’보다 ‘작품’의 영역이었던 가구 공방이 브랜드화·대중화되고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최근 소비 트렌드와 딱 맞아떨어진다. 김왕기 WK마케팅그룹 대표는 디지털 시대에 치인 현대인들이 ‘따뜻한 정성’이 들어간 핸드메이드를 선호하면서 ‘디자인’과 ‘수제작’으로 승부하는 공방이 뜬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근 인테리어 업체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박중선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이사 가지 않고 집을 고쳐 쓰는 사람들이 늘면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늘고 가구 회사들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상위 몇 개 업체에 수요가 몰리는 가운데 ‘기업형 공방’들이 틈새시장을 뚫고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수제작 원목 가구를 지향하는 공방은 크게 두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공장형 공방’과 ‘스튜디오형 공방’이 그것이다. 공장형 공방은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로, 별도의 공장을 따로 두는 곳이 많다. 공방의 특징인 수제작 형태는 고수하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에 수제작 원목 가구를 공급한다는 게 강점이다. 스튜디오형 공방은 목수 겸 CEO가 작업실에서 생산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기존 공방에 브랜드를 입힌 형태인데 SNS와 블로그로 고객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며 색깔 있는 가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 홍제동에 자리한 아이네클라이네·스탠다드에이·길종상가·프라그셋 등은 목수들이 상주하며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웰 메이드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뜨는 공방의 공통점은 아이덴티티와 브랜드 철학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매터앤매터는 인도네시아 폐가구를 재활용하는 ‘업사이클링’과 투박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매터앤매터 관계자는 “디자인 철학이 확고하다든지, 색다른 소재나 원목을 쓴다든지 공방들마다 남다른 특징이 하나씩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원목뿐만 아니라 스틸을 이용한 철제 가구 브랜드들도 생기고 있다.

공방 제품을 선호하는 고객들은 20~40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독특한 마케팅도 진행된다. 매터앤매터는 홍대의 카페를 빌려 자사의 가구로 인테리어를 하고 공연과 식사를 제공하는 ‘펀 테이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가구를 문화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홍대·이태원 등지 프리마켓이나 일부 미술관에서 가구 브랜드를 소개하는 장도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소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인 공방은 어떻게 기업형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카레클린트 사례에서 볼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투명성’이다. 카레클린트는 홍대 지하 공방 시절부터 블로그를 통해 모든 제작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목수의 고민과 해결 과정을 낱낱이 밝히는 스토리텔링을 해 왔다. 탁의성 대표는 “블로그를 보고 흥미를 느껴 공방에 찾아오는 10명 중 9명은 계약했다”고 말했다. 입소문을 타자 투자자도 생겼다. 청담동에 쇼룸을 오픈할 수 있도록 돕는 손길이 나타났고 이때부터 매출도 급격히 상승했다. 카레클린트는 현재 카페 겸 쇼룸을 4호점까지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재 이들의 고민은 수제작과 품질을 유지하는 선에서 규모를 적정히 키우는 데 있다.

무엇보다 전반적인 공방에 활력이 생기고 공방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데서 업계 종사자들은 반색했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수의 길에 들어선 제비 목공소의 정영환(33) 대표는 “공방의 문화적인 경험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시장 활성화보다 더 반갑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