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전환 부추기는 정부 정책… 급격한 주거비 상승으로 서민 시름

우리나라 제도 중에서 서민에게 가장 유리한 제도를 꼽는다면 전세 제도가 아닐까 한다. 일정액만 집주인에게 맡겨 놓으면 2년 정도의 계약 기간 동안 그 집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기에 매달 일정액의 돈이 나가는 월세보다 주거비용이 적게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주거비가 가장 적게 들어가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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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에 유리한 전세 제도
그런데 이런 전세 제도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 2013년 10월 전월세 거래량은 총 11만8970건으로, 그중 전세가 7만2196건(60.7%), 월세가 4만6774건(39.3%)에 달한다. 다섯 건의 임대차 계약 중 두 건 정도가 월세로 이뤄지는 것이다. 작년 10월에는 월세 비율이 32.7%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 사이에 월세로 체결된 계약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다.

아파트 시장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10월에는 전체 임대차 계약의 33.7%가 월세로 이뤄졌는데, 이는 작년 10월의 25.3%에 비해 무려 8.4% 포인트나 더 높은 수치다. 아파트 외 주택 시장에서 같은 기간 동안 월세 비중이 3.9% 포인트 늘어난 것에 비하면 아파트에서도 월세 비중이 얼마나 급격히 늘어났는지 알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분기 중 주거?수도?광열비 지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증가한 22만5000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주거?수도?광열비 지출 금액이 21만1900원이었다. 이것 중 실제 주거비는 6만1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만4000원보다 12.1% 증가했고 공동주택 관리비 등 주거 관련 서비스는 4만700원에서 4만4100원으로 8.3% 늘었다. 이처럼 주거비가 증가한 것은 극심한 전세난으로 월세로 전환하는 가구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전세에서 월세로 바꾸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들 비용까지 같이 뛰었다는 얘기다.

그러면 왜 작년보다 월세가 늘었을까. 월세를 선호하는 수요자가 늘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세입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세를 월세보다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세 거래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은 시중에서 전세 물량이 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세 물건을 구하지 못한 실수요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선택했기 때문에 월세 비중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오른 값에나마 전세로 계약을 체결한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전세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을까.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속속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정부 정책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정책들이 전세난을 부추기고 있는지 알아보자.

첫째, 전세 보증금 과세 제도를 들 수 있다. 전세 보증금 과세 제도는 3주택 이상 보유자 가운데 전세 보증금 3억 원 초과분의 60%의 이자 상당액만큼 수입 금액에 산입해 간주 임대료를 계산해 과세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2주택 이상 보유한 자가 임대한 물건의 월세 부분만 과세했는데, 3주택 이상 보유자에게는 전세를 포함한 전체 보증금에 대해서도 과세한다는 것이다. 세수를 확보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이해가지만 담세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전세를 주더라도 거기에서 직접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전세금을 받아 전액을 은행에 예치해 놓는 것도 적은데 전세를 끼고 집을 산 사람에게 부채랄 수 있는 전세 보증금에 대해 과세한다면 가혹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어차피 세금을 낼 바에는 차라리 월세로 전환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지경이다.

둘째, 총 자산 기준으로 부과되는 보유세도 문제다. 보유세에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있지만 넓게는 건강보험료도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보자. A라는 사람이 4억 원의 자금을 가지고 주택에 투자하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3억 원의 전세를 끼고 5억 원짜리 주택 두 채를 샀다고 하자. 이때 순자산은 4억 원이지만 세금은 총 자산 10억 원을 기준으로 부과된다. 이 때문에 재산세도 많이 내고 종부세도 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직장이 없는 지역 건강보험 대상자들은 소득이 한 푼도 늘어나지 않았지만 자산이 늘어난 만큼 건강보험료가 증가하게 된다. 이번에는 B라는 사람이 4억 원의 자금을 가지고 월세를 끼고 5억 원짜리 주택을 한 채 사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월세 보증금은 1억 원이 될 것이다. 이때 종부세는 내지 않는다. 재산세도 A라는 사람의 절반만 내면 된다. 건강보험료도 마찬가지로 적게 낸다. A나 B나 순자산으로 보면 4억 원으로 똑같다. 하지만 월세를 받는 B가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산 A보다 내는 세금은 절반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전세를 주려고 하겠는가.

셋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도 문제다. 국회가 공전되면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문제도 해를 넘길 것처럼 보인다. 원래 이 문제는 MB(이명박) 정부 때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던 사안이며 작년에 처리를 하고 넘어 왔어야 했다. 그런데 법안을 개정하지 못하고 1년 유예라는 임시방편으로 1년을 지나왔고 2014년에도 1년 유예로 가닥을 잡아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 1년 유예했으니 1년 안에만 법을 처리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런데 ‘1년 유예’라는 것이 매도할 때에만 해당하고 매수할 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올해나 내년에 다주택자가 기존에 2년 이상 보유했던 집을 팔면 일반 과세를 해준다. 그러나 기존의 1주택자나 다주택자가 올해나 내년에 추가로 주택을 산다면 양도세 중과 대상이 된다. 2012년 이전에 매입할 때 일반 과세 혜택을 줬지만 올해부터 이것이 누락된 것이다.

이것은 임대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 임대 시장의 공급자는 무주택자도 1주택자도 아닌 다주택자다. 다주택자가 늘어야 월세든 전세든 임대를 주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세법은 다주택자에게 출구만 제공하고 입구를 막아버린 것이다. 이러니 시장에서 전세 물량이 늘어날 수 있을까. 전세 시장만 놓고 보면 지금과 반대 정책을 써야 한다. 새로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는 일반 과세의 혜택을 주고 집을 팔려는 사람에게는 중과세를 해야 전세 매물이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넷째, 아직은 실행되지 않았지만 정치권 일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전셋값 상한제나 계약 갱신 청구권도 부작용이 더 많은 제도다. 세입자라면 누구나 전세금이 적게 오르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므로 본인이 살던 집에서 전세금을 적게 올려주면서 계속 살 수 있다면 굳이 집을 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입자로서는 야당에서 주장하는 전셋값 상한제나 계약 갱신 청구권이 발효되면 손해 날 것이 없어 보일 것이다.


전셋값 상한제는 양날의 칼
그런데 관점을 세입자가 아닌 시장으로 옮겨보자. 이 세입자가 본인이 살던 집에서 떠나 다른 집으로 전세를 옮기려고 할 때는 전셋값 상한제가 적용될 수 없다. 이를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신이 살던 집에서 계속 살기를 원할 것이다. 이것은 시장에 전세 매물이 나오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새로 결혼해 신혼집을 찾는 사람이나 다른 지역에서 직장이나 학군의 문제로 이사를 오려는 사람은 시장에 물건이 없으니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전세를 구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기존 세입자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셋값 상승에 제동이 걸린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바꿔 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세가 월세로 바뀌는 것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어찌 보면 전세라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왜곡(?)된 제도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산을 모으는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전세라는 제도는 월세보다 훨씬 유리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전세 제도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