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멘토’서 ‘트렌드 전문가’로 복귀, 김난도 서울대 교수 인터뷰

2010년 출간돼 200만 부를 넘긴 에세이집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했다. 서울대에서 가장 빨리 수강 신청이 마감되는 수업을 이끌던 ‘란도샘(김난도 교수의 애칭)’은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불안한 청춘을 다독여 준 진솔한 문장 덕에 강단을 넘어 전 국민의 대표 멘토로 자리매김했다. 연이어 펴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도 청춘 못지않게 불안한 ‘어른’에 대한 따뜻한 멘토링으로 40만 부 가깝게 팔려 나갔다. 그렇게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동안 본업보다 부업으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지난 11월 19일 ‘2013 뉴웨이브 포럼’ 행사 도중 짬을 내 김 교수와 마주했다. ‘트렌드 분석가’라는 본래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의 손에는 최근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4’, ‘트렌드 차이나’가 들려 있었다. ‘트렌드 코리아 2014’는 그가 2007년부터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원, 수백 명의 자발적 참여자인 ‘트렌드 헌터’와 함께 만드는 트렌드 예측서시리즈다. ‘트렌드 차이나’는 최근 중국 소비 시장 진출에 애를 태우고 있는 기업들을 위해 자신의 전공을 살린 책으로, 3년간의 연구 끝에 중국 소비자들의 특징과 소비 시장의 변화상을 담아냈다.
[SPECIAL REPORT] “중국 소비자는 유럽과 비슷…지역·계층마다 달라요”
지난해 발표했던 ‘트렌드 코리아 2013’ 중 이 시대를 가장 잘 짚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미각의 제국’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에게 과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옷이나 외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반면 식사는 대충합니다. 짜장면·라면·설렁탕 등 5분 이내에 먹는 음식들이 대다수죠. 비싼 것을 먹었다는 사실은 자신이 페이스북 등에 올리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티가 잘 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예전보다 건강한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맛이나 미각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보다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의식의 전환을 뜻하죠. 지난해 인기를 끈 캠핑 열풍을 비롯해 해마다 증가하는 해외 여행객 등은 모두 일관된 맥락입니다. 아주 가까운 과거에는 성공·명품·과시 등이 중요한 키워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면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경험, 체험을 중요시 여기는 것으로 소비의 패러다임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아주 반가운 흐름이죠.


2014년의 트렌드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몸이 답이다’입니다. 직접 만지고 느끼고 움직이고 싶은 열망이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지요. 도시인들 사이에서 마라톤 열풍이 불고 목공·도예 등이 인기 취미로 떠오른 것이 이에 해당하죠. 사무실의 파티션 안에 갇혀 있던 현대인들이 컴퓨터나 모바일 기계의 전원을 끄고 제 발로 길 위를 뛰고 제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을 통해 지적인 노동과 육체적 노동의 균형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2014년의 대표 트렌드로 ‘참을 수 있는 스웨그의 가벼움’을 꼽았죠. 대중적인 단어가 아니어서 다소 생소합니다.
사실 힙합 뮤지션 등 특정 계층의 용어이기 때문에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스웨그’만큼 이 사회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큰 주목을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나치게 가벼움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자기만족과 허세,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트렌드를 미리 예측하다 보니 ‘적중률’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거론하는 것은 이 책의 의도에서 많이 벗어난 이야기 같습니다. 저는 역술가가 아닙니다.(웃음) 제가 예측한 여러 트렌드들이 실제로 기업의 소비자 마케팅에 유용했는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은 환영합니다.


오늘 포럼에도 기업 마케터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제가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기업에서 신상품 전략 회의를 할 때 제 책을 들고 들어가 체크리스트로 쓴다는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굉장한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기업들이 제가 제시한 트렌드가 신제품의 아이디어를 찾고 마케팅 전략을 논의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에는 ‘트렌드 차이나’도 발간했습니다. 중국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에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흔히 중국에서는 껌을 1통씩만 팔아도 14억 통을 팔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매우 안일한 발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서울에서 잘 팔리면 부산에서도 인기 상품이 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유럽과 비슷합니다. 런던에서 잘 팔린다고 해서 프라하에서 인기를 보장할 수 없죠. 유행은 반드시 번져 나간다고 보는 ‘트리클다운의 신화’가 중국에선 적용되지 않습니다. 계층마다, 소득수준마다, 지역마다 소비성향과 라이프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릅니다. 정확하게 타기팅을 하고 칼날처럼 매우 세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큰 나라라고 해서 대충 들어가면 절대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스웨그’만큼 이 사회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지나치게 가벼움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자기만족과 허세,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다.


중국 외에도 연구 예정인 나라가 있습니까.
지난 3년간은 중국 대륙 전체의 소비성향에 대해 분석했다면 앞으로는 중국의 VIP 등 특정 계층이나 지역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볼 예정입니다. 또한 ‘포스트차이나’라고 할 수 있는 베트남·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에 대한 관심도 많습니다.


그간 ‘청춘 멘토’로 유명세를 얻어 부담도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우리 학교 학생들만 잘 가르치면 됐었는데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그 대상이 참 폭넓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나다움을 잃지 말자’는 철칙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역시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어울립니다. 그 직책에 걸맞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고자 했죠. 사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쓸 때 이 시대의 청춘들이 아픈 이유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대학이 교육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란 이야기를 무척 하고 싶었지만 에세이집에는 어울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뺐습니다. 책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동시에 참 많은 비난도 받았습니다.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청춘들이 아픈 것인데, 아이들을 위로만 하고 있으면 해법이 있느냐?’는 것이죠. 저 또한 이런 의견에 공감했고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방식인 트렌드 분석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해법이 있나요.
‘트렌드 차이나’에는 중국 소비자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이용해 보다 스마트하게 중국에 진출하고 성공을 거두는 기업이 증가한다면 곧 국내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로 연결됩니다. 저는 취업을 희망하는 청춘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미래 지향적인 일자리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트렌드 서적들이 어떤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까.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마케팅이나 리서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 책이 크게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자영업자나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분들, 면접을 앞둔 구직자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런 분들은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트렌드 연구가로서 본업에 충실하면서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지난해에 비해 예약 판매가 4~5배가 많다는 말에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