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조 달러 규모로 성장한 사회책임투자… 국내도 국민연금 참여 법제화 추진

‘돈’, 그야말로 돈이 문제다. 우리는 돈이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동시에 돈에 둘러싸인 하루를 매일 보내고 있다. 급하게 달려 나와 타는 출근길 버스나 지하철도 돈을 내야만 올라탈 수 있고 오전 근무로 출출해진 허기를 달랠 때도 돈을 내야만 점심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넉넉한(넉넉함에 대한 기준은 상이하더라도) 만큼의 돈을 손에 쥐고 싶어 한다. 어떤 누군가는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기는 힘들다.


투자에서 해법을 찾다
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는 욕망은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돈을 버는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매일 고기를 잡아 돈을 벌고 또 누군가는 공장에서 물건을 제조해 돈을 벌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고기를 잡고 물건을 만드는 이들에게 밑천을 대줌으로써 돈을 번다. 이런 걸 조금 유식한 말로 ‘투자’라고 우리는 부른다. 대다수의 직업이 다른 원천을 이용해 소득으로서 돈을 획득하는 것과 달리 투자자라는 직업은 돈을 이용해 돈을 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어떤 방식을 이용해 투자처를 결정하게 되는 것일까. 정답은 사실 명확하다. 돈을 가장 많이 벌어줄 수 있는 사업이다. 누군가는 퀀트라는 공학 방식을 이용하고 누군가는 기업 인터뷰를 통한 직관에 의존하는 등 경로의 방법이야 다를지언정 투자자가 원하는 최고의 투자처는 돈이 되는 투자처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발견한 돈이 되는 투자처 A 기업이 무단 폐수 방류로 근처 어민들 및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기업이라면 어떻겠는가. 좀 찝찝하기는 하지만 일단 돈이 되니 당신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수익률을 포기하기는 좀 아쉽지만 추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투자를 보류하는 게 맞을까. 바로 이러한 지점의 고민과 맞닿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투자방식이 있다. 이른바 ‘사회책임투자(SRI: 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가 바로 그것이다.

사회책임투자의 시작은 미국 종교 단체의 노예제도 금지로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는 게 일반적인 가설이다. 퀘이커 교도들이 모임에서 인신매매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후 1928년에는 사악한 산업(주류·담배·무기 제조 등의 산업)을 투자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설정된 파이어니어 펀드(Pioneer Fund)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회책임투자의 시작점은 종교적·윤리적이었지만 현대에 들어오면서 진화와 변모를 거듭해 전통적인 투자 전략에 비재무적 리스크에 대한 스크리닝 기능을 포함하는 형식으로 일반화돼 왔다.
[경영전략 트렌드] ‘조금 깐깐한 투자’가 세상을 바꾼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서 밝힌 사회책임투자의 정의를 잠깐 살펴보면, 일반적인 투자는 기관(개인)투자가가 재무적 관점만 중시하는 투자인 반면 사회책임투자는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 사회 혹은 거버넌스 요소 (흔히 ESG라고 통칭)를 재무적 요소와 함께 고려하는 투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ESG 이슈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가치와 지속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도 인식되면서 지속 가능 책임 투자(Sustainable Responsible Investment)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재무 정보만 분석해 투자 적격 기업을 선별하던 투자자들은 사회(노동·인권·지역사회·작업환경 등), 환경(지구온난화·대체에너지·환경오염 등), 거버넌스(기업공시·주주권리·이사회 구성 및 운영 등)라는 새로운 정보들까지 분석해 투자처 선정 및 기업 가치 분석에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사회책임투자는 제법 깐깐하고 전통적 투자 기법에 비해 번거로운 투자로 보이기 십상이다. 굳이 이렇게 번거롭고 복잡한 투자 방식을 사용해야 하는지 의문도 들 수 있다. 실제로 1990년대 국내에 도입된 사회책임투자는 이러한 의문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며 투자 규모 면에서도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투자자들은 투자자로서의 사회적 책임 의식 혹은 기업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중요성 등을 고려해 사회책임투자를 좀 더 보편적인 투자 방식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선순환 관계
2012년 유럽지속가능투자포럼(Euro SIF)에서 발간한 ‘유러피언 SRI 스터디(Study)’를 보면 2011년 말 기준으로 유럽 내 SRI 규모는 무려 9조 달러 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6조8000억 유로). 특히 프랑스는 프랑스 단독으로 2조 달러 이상의 사회책임투자 운용 규모(1조9000억 유로)를 유지하고 있어 유럽 내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미국 역시 전미지속가능투자포럼(US SIF)의 보고에 따르면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연도별로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고 2011년 말 기준으로 3조7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과 미국에서 꽤 큰 투자 규모를 확보하고 있는 현실과 상반되게 아시아 시장에서의 사회책임투자는 규모 면에서 아직 미흡한 게 사실이다. <그림>은 아시아지속가능투자협회(ASrIA)에서 2011년 6월 기준으로 전 세계 사회책임투자 규모를 주요 대륙별로 정리한 것이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의 투자 규모는 740억 달러에 불과해 차하위 대륙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3년 국내 사회 책임 투자 규모 역시 대략 7조5000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경영전략 트렌드] ‘조금 깐깐한 투자’가 세상을 바꾼다
하지만 통계만 가지고 상황을 비관하긴 아직 이르다. 최근 국내 사회책임투자 업계에서는 새로운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고 있다. 올해 7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재미있는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주제는 ‘국민연금기금의 책임 투자와 공시 법제화를 위한 대토론회’.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가 공동 주관한 이 토론회는 국민연금기금의 책임 투자와 관련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자리였다.

사실 국내 사회책임투자는 국민연금의 참여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책임투자 및 ESG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보편적 합의가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안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기금 일부를 사회책임투자 방식으로 자산 운용사에 위탁 운용하면서 시장 또한 사회책임투자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 오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렇듯 국내 사회책임투자에서의 국민연금의 위상을 생각할 때 향후 국민연금기금의 책임 투자를 강화할 수 있는 공시 법제화 움직임은 상징하는 바가 꽤 크다.

총 13인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해당 법안의 핵심 내용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기금을 관리·운용하는 경우 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 등 사회 책임 요소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각 요소의 고려 여부와 고려 정도, 더 나아가 고려하지 않는 경우 그 이유를 공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2009년에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에 서명한 국민연금으로서는 사회책임투자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명분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노르웨이 GPF, 네덜란드 ABP, 미국 캘리포니아 공공근로자연금(CalPERS) 등 주요 선진국 연·기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사회책임투자를 시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종종 받아 왔다. 하지만 만약 입법 발의된 해당 법안이 통과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심심치 않게 돈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만만치 않게 세상을 이롭게 만들 수 있는 것 또한 바로 ‘돈’이다. 사회책임투자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역시 돈의 흐름을 통해 세상을 좀 더 이롭게 만들자는 것이다. 투자자는 사회책임투자를 통해 그 목적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목적한 바를 이뤄 내는 주체는 역시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사회책임투자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책임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완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수익률도 일반 기업 추월
사회적 책임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기업은 사회책임투자를 통해 자금을 유치하고 투자자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쳐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사업 활동을 통해 투자 수익을 회수해 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선순환을 꿈꾸는 기업과 투자자들이 매년 주목하는 곳이 있다. 다보스 포럼, 전 세계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여든다는 그곳에서 매년 가장 지속 가능한 100대 기업의 명단이 발표되고 있다. 투자의 귀재인 조지 소로스도 이 기업들의 명단 발표 장소에 매년 참석하고 있다.

‘글로벌(Global) 100’으로 명명된 100대 기업 명단은 캐나다의 미디어 기업인 코퍼레이트 나이츠(Corporate Knights)가 2005년부터 전 세계 유수의 기업을 대상으로 재무 및 ESG 평가를 통해 선정하고 있다. 실제 평가 시 ESG 평가 모델로 EV21&IVA 모형이 활용되고 있고 국내 기업은 EFC가 파트너 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회책임투자를 하고 싶은 투자자 입장에서 이보다 주옥같은 정보가 있을 수 있을까. 글로벌 100의 선풍은 그런 점에서 당연할 수밖에 없고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주목되는 다보스 포럼에서의 발표인 만큼 세간의 관심, 더 나아가 기업들의 눈치 또한 대단하다.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포스코·신한금융지주가 그 명예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경영전략 트렌드] ‘조금 깐깐한 투자’가 세상을 바꾼다
글로벌 100은 단순히 ESG 성과에만 초점을 모으고 있지 않다. 지속 가능하다고 평가된 기업들이 실제로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지 여부는 글로벌 100 인덱스를 통해 알 수 있다. 글로벌 100 인덱스는 현재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ACWI)를 벤치마크로 삼아 운영되고 있으며 벤치마크 대비 꾸준히 우수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결국 핵심은 기업에 대한 정확한 평가다. 어떤 기업이 실제로 지속 가능한지, 그를 통해 장기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EFC는 국내 최초로 2002년부터 500여 개에 달하는 한국 기업들의 환경·사회·거버넌스의 수준과 성과를 평가해 오면서 그 진화와 성장 과정을 함께 하고 있다. 그 과정에 많은 국내 연금과 자산운용사·산업계·학계·정부 등이 함께 참여하면서 재무적인 요소들 위에 이러한 비재무적인 요소들까지도 통합하는 노력들이 쌓여 왔다. 이런 노력 끝에 우리나라도 이제는 사회책임투자가 높은 수익을 내는 사회가 됐다. 이제 투자가 사회를 바꾸는 동시에 투자자는 보다 나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사회로 접어든 것이다.

착한 투자. 사람들은 사회책임투자를 가리켜 흔히 착한 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는 다소 와전된 별칭이라고 할 수 있다. 재무 정보만 보고 쉽게 갈 수도 있는 투자자를 붙잡아 이것도 보고 저것도 봐야 한다고 잔소리하는 투자 전략이 어찌 착한 투자일 수 있겠는가. 옛말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했다. 정말 좋은 수익률을 원한다면 조금 깐깐한 사회책임투자의 문을 두드려 보는 건 어떨까. 김명서 EFC 책임애널리스트·이수희

EFC 선임애널리스트·김현주 EFC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