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금 유입 없어 장기 상승은 회의적… 경제지표 ‘착시효과’살펴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양적 완화 규모 축소(테이퍼링) 우려로 소외되던 신흥국 자산과 채권 가격이 9월부터 2개월 넘게 반등을 이어가고 있다. 11월 중순에는 재닛 옐런 Fed 의장 지명자가 청문회에서 “양적 완화는 정상적 경제를 향한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발언하면서 힘이 떨어지던 신흥국 자산 가격이 반등을 이어갔다. 5~9월 초까지는 글로벌 리츠(-13.5%), 신흥국 통화(-8.7%), 신흥국 국채(-6.1%), 신흥국 주식(-3.8%), 선진국 국채(-3.2%), 하이일드(-1.5%)의 순으로 낙폭이 컸다. 낙폭이 작았던 하이일드와 신흥국 주식은 반등을 넘어 이미 연고점을 넘어섰고 신흥국 국채와 선진국 국채, 글로벌 리츠는 정확히 저점 대비 61.8% 부근까지 반등했다. 반등이 가장 약한 신흥국 통화는 50% 반등에 그쳤다.신흥국 주식의 기세가 강하지만 몇 가지 미덥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옐런 의장 지명자의 발언 이후 상장지수펀드(ETF)의 자금 흐름을 보면 신흥국 주식은 글로벌 자금 유입보다 자국 내 주식 매수에 따른 상승일 가능성이 높다. 북미 자금은 대부분이 북미 주식으로 향했고 신흥국 주식 매수는 최근 매도 규모에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 자금의 해외 주식 매수 규모도 최근 매도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남미는 자국 내 주식을 꾸준히 매수하고 있고 신흥 아시아도 신흥 아시아 주식에 대해 순매수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옐런 의장 지명자의 발언 이후 신흥국 주가 상승은 글로벌 자금 유입에 따른 긍정적 흐름으로 해석하기에는 이르다. 외국인 자금을 끌어당기기에 신흥국 통화가치의 반등 폭도 너무 미약하다.
점점 다가오고 있는 양적 완화 축소
10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이 발표되면서 다시 연내 양적 완화 규모 축소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신흥국들은 펀더멘털과 자금 유출입에 대한 대응책이 미진한 상황에서 자산 가격 반등 폭은 제법 컸다. 설령 다시 양적 완화 축소가 미뤄지더라도 신흥국의 위험 대비 자산 가격 상승 폭은 선진국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소외됐던 자산들의 1차 반등은 마무리되고 있다. 적절한 반등 시점에서 이익 실현의 타이밍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10월 FOMC 의사록 공개로 Fed가 양적 완화 축소를 전제로 시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차단할 대책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국채 10년 금리는 2.80%까지 급등하며 20주선 위로 올라섰다. 9월 초와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시장이 양적 완화 축소와 기준 금리 인상을 분리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말 기준 금리를 거래하는 연방 기금 금리 선물 2014년 12월물이 9월 초에는 0.49%까지 폭등했지만 최근엔 0.09%에서 반응이 없다. 당장 양적 완화 규모가 축소되더라도 속도는 완만할 것이고 제로 금리 기간의 연장 등을 통해 기준 금리 인상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시장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준 금리 전망에 민감한 미국 국채 2년 금리가 0.30%을 밑돌며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과 미국 국채 10년 금리와 2년 금리와의 금리 차이가 역사적으로 2.80%를 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적 완화 축소가 시작되더라도 당분간 미국 국채 10년 금리가 3.00%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리 급등에 대한 부담이 완화되며 글로벌 주식시장, 특히 선진국 주식시장은 꾸준한 상승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진행 중이다. 주식시장 얘기가 아니다. 선진국은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물가는 안정된 리플레이션(reflation) 국면에 있는 반면 신흥국은 경기 하강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국면에 놓여 있다. 그 영향으로 통화정책 대응도 다르다. 선진국은 통화 완화를 지속하고 있는 반면 신흥국은 긴축적인 흐름이다. 최근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경기보다 물가를 따라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경기는 나쁘지만 물가 상승률이 높은 신흥국들은 대체적으로 기준 금리를 인상하고 있고 경기는 회복되고 있지만 물가가 낮은 선진국들은 디플레 우려로 기준 금리를 인하하거나 더 완화적인 정책을 계획 중이다. 이론적인 적정 금리 수준이 제로 수준에 도달한 미국 Fed조차 기준 금리 인상은 물론 양적 완화 규모를 줄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할 정도다. 금융 위기 이후 채권 금리는 경기보다 통화정책 대응에 민감하다. 선진국 국채 금리의 상승 속도는 완만한 반면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신흥국의 금리 상승 속도가 훨씬 빠르다.
주목되는 한국은행 경기 대응
우리나라의 채권 금리도 상승하고 있다. 국고 3년 금리는 10월 23일 2.79%를 저점으로 한 달여 만에 약 0.20% 포인트가 올랐다. 그러나 조금 길게 보면 금리는 여전히 좁은 박스권이다. Fed의 양적 완화 축소 우려로 4월 초 2.44%를 저점으로 급상승한 후부터 국고 3년 금리가 2.75~ 3.00%의 좁은 박스권에 6개월째 갇혀 있다. 한국 경제와 기업에 대한 외국인들의 찬사 속에 상승하던 코스피 역시 2050을 넘어서지 못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몇 가지 확인해야 할 고민들이 있다.
첫째, 장기 박스권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미국 주식의 상승 배경은 에너지 혁명과 제조업 부활, 공장이 본국으로 돌아오는 리쇼링(reshoring) 스토리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 공장 진출도 활발하다. 과거에는 미국의 제조업 지수 상승이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국들의 수출 증가로 연결됐다. 그러나 미국이 소비국에서 생산국으로 변하는 초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거만큼 신흥국의 수출이 늘어날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한다.
둘째, 은행과 보험의 대출 증가율이 수년 만에 반등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출 증가는 경기 회복 신호로 해석된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부채 증가 속도가 훨씬 더 빠르며 자영업자 가구의 부채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부담 요인이다. 이른바 부동산 등 자산을 담보로 한 생계형 대출이 누적되면서 서민층과 중소기업들의 재무 상황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대출 증가가 경기 회복의 긍정적 시그널인지 아니면 수요 기반 약화의 부정적 시그널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경기선행지수는 선진국보다 높지만 기울기가 약해졌고 물가 상승률은 선진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낮아졌다. 수요와 직결돼 있는 개인 서비스 물가도 바닥권에서 정체 중이다. 10대 그룹 상장기업들의 사내 유보금이 477조 원에 달하며 종합과세를 줄이기 위한 거액 예금이 이탈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통화의 유통 속도가 느려지면서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수요와 물가가 낮아지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최근 물가를 따라 정책을 이어가는 글로벌 중앙은행들에 비춰볼 때 한국은행의 대응이 주목된다.
기업들의 해외 생산 및 매출 비중 증가, 해외 공장 증설 등으로 글로벌 경기 회복과 함께 주가는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상황은 여전히 어렵다. 자금 이탈이 있지 않는 한 채권 금리는 국내 상황에 더욱 민감한 법이다. 코스피의 삼성전자 효과처럼 경제지표나 소득, 부채 관련 지표에도 역시 착시 효과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그 영향은 어떨 것인지 점검해야 할 때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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