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이후’ 나 홀로 10조 원 수익…은행·철도 등 역발상 접근

‘역시 워런 버핏이다.’ 2008년 이후 세계경제는 두 번의 위기를 맞으며 휘청거렸다. 위기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이제 미래는 없다’고 머리채를 부여잡았다. 그들은 주식·채권·부동산·원자재 등 가지고 있던 모든 자산을 시장에 ‘집어던졌다’. 이 캄캄한 터널을 어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이 앞섰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은 그때마다 ‘기회가 왔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금융 투자가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Again Warren Buffett] 세계를 놀라게 한 버핏식 ‘족집게 투자’
지난 10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워런 버핏이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등 두 번의 위기 당시 대규모로 투자한 6개의 미국 대표 기업의 성적표를 분석했다. 그 결과 버핏은 9월 말까지 이들 기업에서 100억 달러, 한국 돈으로 무려 10조5000억 원 상당에 가까운 투자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버핏이 자신의 투자회사인 벅셔해서웨이를 통해 투자한 대기업은 증권사 골드만삭스,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재보험사 스위스리 등 금융 기업 3곳과 사탕회사 마스, 전자 및 복합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 화학 기업 다우케미컬 등 제조업 기업 3곳 등이다. 모두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자 우량 기업들이다. 버핏은 이 기업들에 모두 252억 달러(약 38조 원)를 투자했다.

그리고 5년 동안 이들 기업을 통해 버핏은 배당 및 평가이익 등으로 100억 달러의 수익을 냈다. 이는 투자 원금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은 벅셔해서웨이가 투자 과정에서 주식이나 주식 인수권을 손에 넣은 것도 있기 때문에 장부상으로는 수익이 수십억 달러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먼브러더스의 투자 제안 거절
세계 97위 부자이자 한국 최대의 부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현재 12조 원 정도다. 즉 이 기간 동안 주식 투자만으로 이 회장만큼의 부를 벌어들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말 그대로 ‘주식 투자’만 한 것이다. 사실 버핏은 투자가인 동시에 기업인이자 인수·합병(M&A) 전문가다. 벅셔해서웨이는 다양한 기업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투자회사이자 보험사·철도회사·에너지회사 등 80개 기업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지주회사인 ‘복합 기업’이기 때문이다.

버핏은 금융 위기 후 벅셔해서웨이를 통해 지분 투자만이 아니라 대규모 M&A를 단행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무려 360억 달러(약 38조 원)를 들여 지분 100%를 인수한 미국의 철도 회사 BNSF다. 또 2013년 2월에는 브라질의 투자회사와 공동으로 케첩으로 유명한 식품 업체 하인즈를 280억 달러(약 30조 원)에 인수했다. 이 밖에 벅셔해서웨이는 자회사를 통해 작년 26개, 올해 상반기 12개의 중소 중견기업을 잇달아 M&A했다.

버핏은 평소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적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탐욕적일 때 두려워하라”고 강조했다. 2008년 이후 버핏이 했던 대규모 투자는 아무리 자신의 철학을 따른다지만 언뜻 보기에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버핏이 단순한 ‘모험가’였다면 지금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작은 수익을 꾸준히 모으다 보면 어느 순간 자산이 눈덩이처럼 늘어난다는 ‘스노볼(Snowball)’ 이론의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진행한 그의 투자를 보면 특히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그가 자신의 후계자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자질로 강조하는 ‘위험을 느끼는 본능적 감각’이다. 또 하나는 ‘절대 돈을 잃지 않는다’는 ‘치밀함‘이다.

버핏의 ‘위험을 느끼는 본능적 감각’은 리먼브러더스에 대한 투자를 거절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는 그해 3월 금융 투자회사 베어스턴스의 파산에서 시작된다. 절정은 9월에 있었던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다. 리먼브러더스의 경영진은 이미 베어스턴스의 파산에서부터 자신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리처드 펄드는 버핏을 찾아갔다. ‘자신들의 회사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버핏이 투자한 회사는 두 가지 효과를 얻는다. 하나는 물론 재정적인 효과고 다른 하나는 홍보 효과다. 필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원했다. 그러나 버핏은 이 제안을 숙고 끝에 거절한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1년 후인 2010년 가을 버핏은 자신이 투자하지 않은 몇 가지 이유를 털어놓았다. 첫째, 리먼브러더스 경영진도 자신과 같은 조건으로 리먼브러더스에 투자하자라는 버핏의 제안에 리먼브러더스 경영진은 회의적이었다는 점이었고 둘째, 당시 리먼브러더스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유가 공매도 세력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는 점이었다고 했다. 또한 리먼브러더스의 재무제표를 보면서 알아낸 일본에 투자된 1억 달러의 문제 자산에 대해 펄드 CEO가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는 점도 투자 제안을 거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당시 버핏이 리먼브러더스에 투자했더라면 지금까지도 그의 명성이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투자가
반면 그는 실제로 리먼브러더스 파산 후 불과 3주 동안 150억 달러의 주식을 사들였다. 특히 버핏은 이 시기에 ‘위기의 주범’이던 금융주에 집중했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대표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대한 투자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주가 폭락 위기에 몰린 골드만삭스는 버핏에게 5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버핏은 “골드만삭스는 내가 50년 전 처음으로 거래했던 기업”이라고 밝히며 투자를 결정했다.
[Again Warren Buffett] 세계를 놀라게 한 버핏식 ‘족집게 투자’
물론 버핏은 단순한 선의로 골드만삭스에 투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영화 ‘대부’의 보스 돈 콜리오네처럼 위기에 몰린 골드만삭스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다. 당시 버핏은 골드만삭스의 우선주를 50억 달러어치를 사들이고 이에 대해 연 10%의 고정 금리를 보장받았다. 이와 함께 보통주 4347만여 주를 2013년 10월 1일 행사가격 115달러에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세월이 흘러 골드만삭스는 사정이 나아지자 버핏과의 계약을 이행해야 했다. 먼저 우선주는 이미 2011년 골드만삭스로부터 현금으로 상환 받았다. 특히 올해 3월 버핏은 가지고 있던 주식 매수권을 포기하는 대신 장부상 수익에 해당하는 만큼 골드만삭스의 주식을 받기로 합의했다. 이 거래로 버핏이 획득한 골드만삭스 주식은 1320만 주에 달한다. 그 결과 버핏은 골드만삭스의 6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현금과 주식을 포함해 21억5000만 달러(약 2조2000억 원)의 수익을 하나의 거래만으로 이뤄낸 것이다.

버핏이 ‘현인’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자신이 말한 대로 투자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한 기업에 대해 좋게 평가한 뒤 몰래 그 회사 주식을 팔아 치운다거나 했다면 결코 ‘존경 받는 투자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 그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배경은 현금 보유량이 ‘기준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말 기준 버핏이 손에 쥔 현금은 400억 달러(약 40조 원)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평소 버핏은 늘 손에 200억 달러 정도 쥐고 있고 싶다고 말해 왔다. 즉 이보다 두 배 정도의 현금이 추가로 더 생긴 만큼 버핏이 대규모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버핏이 어떻게 투자해 부를 쌓을 것인지가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그의 의중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버핏의 투자법은 전형적인 상향식 투자다. 거시경제 변화보다 개별 기업의 가치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 버핏이 투자했다고 그 업종의 다른 기업을 사들였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2011년 버핏이 대규모로 투자했던 태양광 투자 다. 당시 버핏의 투자로 국내 태양광주가 급상승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즉 버핏은 그 ‘딜(Deal)’의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사들인 것이지 ‘태양광’이라는 테마를 사랑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광을 포함한 ‘에너지’ 관련 기업에 대한 버핏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 그가 지난 3분기 대표적 에너지 기업인 엑슨모빌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것이다.


‘에너지’ 관련 기업에 대한 버핏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대표적인 게 엑슨모빌이다.


지난 11월 17일 공개된 벅셔해서웨이의 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분기(7~9월 말) 기준 벅셔해서웨이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 상위 10대 종목은 웰스파고·코카콜라·IBM·아멕스·P&G·월마트·엑슨모빌·US뱅코프·디렉TV·골드만삭스 등 미국 대형주들로 나타났다. 이 같은 버핏의 포트폴리오는 대부분은 2분기 투자 순위와 같았다. 이번 순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7위를 기록한 엑슨모빌이다. 2011년 엑슨모빌에 처음 투자한 버핏은 3분기에만 4100만 주, 액수로 37억 달러 규모의 주식을 새롭게 사들였다. 엑슨모빌에 대한 투자는 2011년 IBM에 100억 달러를 투자한 이후 첫 대규모 투자 결정이다.

버핏의 에너지 기업에 대한 관심은 이미 올 초부터 감지되고 있다. 버핏은 지난 1분기 에너지 엔지니어링 업체인 시카고브리지앤드아이론(CB&I) 주식 650만 주를 사들였다. 이와 함께 미국 최대 석유·가스전 개발 장비 제조업체인 내셔널오일웰바코 주식과 함께 석유 업체인 필립스66, 코노코필립스 등의 주식에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버핏은 지난 5월 30일 이미 보유하고 있던 에너지 회사 미드아메리칸에너지홀딩스를 통해 NV에너지를 약 56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NV에너지는 캘리포니아 레이크 타호 지역과 네바다 전역에 전기 에너지를 생산·송전하는 회사다.


버핏의 투자회사 ‘벅셔해서웨이’는…
주당 가격이 1억8000만 원… 철도·보험 등 80개 기업 소속돼
[Again Warren Buffett] 세계를 놀라게 한 버핏식 ‘족집게 투자’
워런 버핏의 재산은 현재 약 590억 달러(약 60조 원)로 평가된다. 그의 재산 중 대부분은 주식 자산으로, 그 핵심은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벅셔해서웨이’ 주식이다.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 본사를 둔 벅셔해서웨이는 BNSF(철도)·게이코(보험)·제너럴리(재보험회사)·미드아메리칸(에너지) 등을 계열사로 두고 코카콜라·하인즈에 대규모 투자하는 등 80개 이상의 기업을 직간접 소유하고 있는 복합기업이다.

벅셔해서웨이의 시가총액은 2013년 11월 기준으로 2804억 달러(보통주 기준)에 달한다. 버핏은 이 회사의 지분을 20% 정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버핏이 투자했다’고 표현하지만 대체로 이 말의 의미는 ‘벅셔해서웨이’가 투자한 것이다. 벅셔해서웨이는 지난 3분기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한 50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매출액은 13% 증가한 465억 달러였다.

벅셔해서웨이는 특히 이야깃거리가 많은 기업이다. 그중 하나는 17만 달러(약 1억8000만 원)에 달하는 이 회사의 주당 가격이다.

또 벅셔해서웨이는 독특한 ‘주주총회’로도 유명하다. 하나의 축제처럼 열리는 벅셔해서웨이의 주총에는 올해 사상 최대인 3만7000여명의 주주들이 참석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