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대표하는 3대 식품이 얘기하는 맛의 비결

수천 년 이어 온 ‘유럽의 맛’, 한국을 찾다
유럽은 특이한 곳이다. 28개 국가가 유럽연합(EU)을 만들어 정치와 경제의 벽을 허물었다. 개별 국가의 자율성이 보장되면서도 뭉쳐야 할 땐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지난 11월 13~20일 서울에서 진행된 ‘유럽의 맛 위크(Taste of Europe Week)’는 이런 유럽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유럽의 식품을 대표하는 비즈니스단 32명이 한꺼번에 한국을 찾아 열정적으로 유럽의 맛을 알렸다.

유럽은 넓은 지역에 걸쳐 다양한 토양과 기후를 바탕으로 갖가지 음식 문화가 발달해 있다. 또 중세 시대 건물을 허물지 않고 현대와 공존하는 것처럼 전통의 깊은 맛이 잘 보존돼 있다. 이런 음식 문화가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잘 어우러지는 것이 유럽의 특징이다.

유럽의 맛 위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유럽 식품 비즈니스 대표단 중 영국 체다치즈, 프랑스 보르도와인, 프랑스 베이욘햄의 대표들에게 깊은 맛의 비밀과 이를 더 맛있게 즐기는 비법을 물어봤다.


먼저 들고 오신 식품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팀 하랍-웨스트 컨트리 팜하우스 체다치즈 대표(이하 체다치즈)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치즈 메이커로, 영국 남서부 지역 서머싯 주의 체다(Cheddar) 마을에서 ‘라이 크로스 팜’ 치즈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체다치즈는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는 미국에서 만든 체다치즈, 호주에서 만든 체다치즈가 아니라 진짜 체다 지방에서 만든 체다치즈입니다. 회사는 1952년 설립됐지만 가업으로는 4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토머스 줄리언-보르도와인 위원회 아시아 대표(이하 보르도와인) 보르도와인은 너무 유명해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겠죠. 보르도와인위원회(CIVB:Conseil Interprofessionnel do Vin de Bordeaux)는 보르도와인의 원료인 포도 생산 농가와 와인 생산자의 협회입니다. 위원회는 기술을 개선하고 품질을 높여 농가와 생산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페리에 엠마뉴엘 브로텔란드-장봉 드 베이욘햄 컨소시엄 해외영업부 대표(이하 베이욘햄) 베이욘햄은 수천 년 동안 프랑스 남서부의 수 세기 역사를 가진 항구 도시 베이욘 근교에서만 제한적으로 생산되는 프랑스 대표 햄입니다. 프랑스의 맛이라고 하면 샴페인·보르도와인·푸아그라·베이욘햄을 꼽을 정돕니다. 해수가 아닌 염분을 함유한 온천수로 염을 하기 때문에 짜지 않아 고기의 풍미가 살아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장봉(jambon)은 햄의 한 종류인데, 장봉 드 베이욘햄 컨소시엄은 베이욘 지역에서 장봉을 만드는 업체들의 연합입니다.
수천 년 이어 온 ‘유럽의 맛’, 한국을 찾다
하나하나가 대단한 내력을 가진 음식들이네요. 지금까지 품질을 지켜 온 비결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체다치즈 축산·낙농가는 반드시 정부에 등록해야 합니다. 모든 제품은 팩(포장 단위)당 헬스마크를 부착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이력 추적이 가능합니다. 또 높은 수준의 표준을 지키는지 매년 관계 당국이 검사할 정도로 까다롭습니다.

보르도와인 위원회 차원에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2가지에 신경 쓰고 있는데요, 첫째는 실제 농가와 생산지를 방문해 나무의 상태와 연령·설비·재료가 기준에 적합한지 확인 및 분류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와인 제조 후 시음 과정을 통해 매년 생산되는 와인이 기준에 적합하도록 유지하고 있습니다.

베이욘햄 생산 공정마다 매 단계 내부 감사 과정을 거칩니다. 양돈농가, 도축장, 건염 처리 시설을 감사해 합격해야만 완제품으로 포장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민간 통합 감사 기관이 있어 햄의 제조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모든 베이욘햄은 인장을 찍어 진품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네, 그러면 일단 각 제품의 맛을 살리면서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체다치즈 체다치즈는 여러 가지 샌드위치에 많이 넣어 먹습니다. 또 치즈 그대로 와인에 곁들여 먹어도 좋습니다. 영국에서 유명한 레시피를 하나 알려드리면, 코티지파이의 토핑으로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진쇠고기·양파·채소·토마토·치즈를 재료로 오븐에서 30~40분 구우면 됩니다.

보르도와인 사실 와인의 범주는 너무나 넓습니다. 품종·토양·재배연도·숙성도 등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각각의 베스트는 모두 다른데요, 퇴근 후 한잔할 때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차게해 마시고 점심때라면 한국의 불고기와 갈비가 레드와인과 잘 어울리겠네요. 다만 어느 때든 한 병을 따서 여러 명과 함께 마시는 게 가장 맛있지 않을까요.

베이욘햄 프랑스에는 “베이욘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셰프도 더할 수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요, 베이욘햄은 그 자체로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짜지 않기 때문에 TV 볼 때 심심풀이로 먹을 수도 있고 술안주로도 좋습니다. 작은 토스트 위에 멜론과 햄을 얹어도 좋습니다. 물론 다른 음식과도 궁합이 잘 맞습니다.
수천 년 이어 온 ‘유럽의 맛’, 한국을 찾다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게 먹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체다치즈 체다치즈는 9개월 이상 숙성된 치즈만 판매합니다. 특히 ‘엑스트라 머추어’는 14개월 숙성한 것인데요, 이 14개월 숙성 제품을 한 입 베어 먹으면 지금까지 먹어 온 그 어떤 치즈보다 뛰어난 향미가 온 몸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저는 바이어에게 이 제품을 권유할 때 ‘온 몸으로 느껴보라’고 얘기합니다.

보르도와인 와인 업계 종사자로서 블렌딩을 통해 완벽한 하모니의 맛을 만들어낼 때가 가장 짜릿합니다.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들을 지휘하는 기분입니다. 아, 이때 블렌딩은 이것저것 와인을 섞는 게 아니라 생산자로서 최적의 맛을 내기 위해 하는 작업입니다. 일반인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산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편하게 친구들과 마실 때가 가장 좋습니다. 최상의 와인을 릴랙스한 상태에서 나눌 때의 연대감, 그 순간이 즐거움입니다.

베이욘햄 역시 생산자이다 보니 12개월 이상 숙성된 햄을 슬라이스 해 맛볼 때 그 시간만큼 인내한 데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입니다. 프랑스 서남부에 베이욘햄을 즐기는 유명한 간단 레시피가 있는데요, 팬에 햄을 빨리 구운 뒤 그 위에 달걀을 ‘서니 사이드 업(계란 노른자위가 다 익지 않도록 한 면만 살짝 익히는 것)’을 하면 약간 덜 익은 계란 흰자위와 베이욘햄의 조화로운 맛이 일품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제품들이다 보니 유사 제품도 많을 것 같습니다. ‘짝퉁(counterfeit)’에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보르도와인 교육이 답입니다. 진품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짝퉁’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장기 투자의 관점에서 소비자 교육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와인을 마시는 데는 사실 지식이 필요없지만 진품의 가치를 알고 마시려면 교육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도 지금 ‘보르도 와인 스쿨’을 수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체다치즈 역시 교육이 답입니다. 우리는 소비자와의 장기적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지역 내 학생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2만6000명의 어린이들이 우리 농장을 방문했을 때 재료들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보고 배우며 직접 요리까지 했습니다.

베이욘햄 우리도 인터넷,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브로슈어 등을 통해 한국 소비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려고 합니다. 우리 제품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진품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되겠지요.
수천 년 이어 온 ‘유럽의 맛’, 한국을 찾다
한국 시장을 어떻게 보십니까.
체다치즈 한국에 4년간 수출을 해오고 있습니다. 소매로도 판매하지만 주요 유제품의 원재료로도 공급되고 있어요.

보르도와인 한국과의 비즈니스는 굉장히 오랜 시간 지속돼 왔습니다만 이번 기회를 빌려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보르도와인 비즈니스는 장기적 철학으로 접근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도 한국과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유지하고 싶네요.

베이욘햄 보르도와인처럼 우리도 한국 비즈니스에 참여하게 돼 기쁩니다. 베이욘햄은 한국 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파마햄·세레나햄처럼 프랑스의 미식 전통을 대표하는 베이욘햄을 대표하는 대사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유럽 식품의 품질 인증 라벨 제도 - 정통 유럽의 맛 즐기려면 확인 필수
유럽연합은 다양한 음식과 음료에 적용되는 유럽의 전통과 고유한 생산 방식을 보호하기 위해 품질 인증 라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아래 세 가지의 품질 인증 라벨은 소비자에게 품질 정보를 제공하고 유사 제품으로부터 상품명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천 년 이어 온 ‘유럽의 맛’, 한국을 찾다
원산지 명칭 보호(PDO:Protected Designated of Origin) 특정 마을, 지역 또는 국가를 원산지로 하는 식품, 와인, 또는 국가를 원산지로 하는 식품, 와인 또는 주류를 보증한다. 원산지와 특별히 연계된 고유한 자연적 또는 인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해당 지역에서 생산·가공·제조됐다는 것을 나타낸다.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의 로크포르 치즈와 이탈리아의 염지 햄인 프로슈토 디 산 다니엘레 등이 있다.
수천 년 이어 온 ‘유럽의 맛’, 한국을 찾다
지리적 표시 보호(PGI: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 특정 마을, 지역 또는 국가를 원산지로 해 특정 지역과 밀접하게 연계된 품질 및 기타 특성을 인정받은 상품을 나타낸다. 또한 해당 지역에서 생산·가공·준비 단계 중 최소 한 단계의 작업이 이뤄진 제품을 보증한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의 뮌헨맥주나 스코틀랜드산 양식 연어가 있다.
수천 년 이어 온 ‘유럽의 맛’, 한국을 찾다
전통 특산물 보증(TSG:Traditional Specialty Guaranteed) 전통적인 성분을 가지고 있거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독특한 상품을 나타낸다. 이 상품은 유사 제품들과 차별화되는 구체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증한다. 대표적인 예로 구에즈·크릭과 같은 벨기에산 맥주 및 생선과 고기로 속을 채운 핀란드식 빵인 칼라쿠코 등이 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