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교수 유치에 골몰하는 경영대들, 기업 지원 요청 목소리도

김창수 중앙대 경제경영계열 부총장은 반기마다 한 번씩 교무처장과 함께 미국의 서부권과 동부권 등 특정 지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유명 대학들을 탐방한다.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잠재력 있는 인재를 ‘특별 채용’하기 위해서다. 한국 출신으로 북미권 등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이면 최고의 조건이다. 톱 저널 등에 논문이 여러 편 실린 해외 명문대 출신의 외국인 학자들도 영입 대상 1순위다. 하지만 국내의 다른 상위권 대학을 비롯해 아시아권의 우수한 대학에서까지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어서 경영학 교수 스카우트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김 부총장은 말했다.
[2013 전국 경영대 평가 : 경영학계 트렌드] 미 명문대 박사 선호…연봉 차 커서 ‘울상’
최근 국내 주요 경영대들이 우수 교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 경영학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하자 주요 경영대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교수보다 해외 교수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경영대가 교수의 수를 비약적으로 늘려야 하는 이유는 일단 경영학을 수강하려는 학생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쿨 도입으로 2009년부터 주요 대학 법학과가 폐지되면서 상대적으로 경영학과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높아진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최근 기업 등에서 ‘융합형 인재’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본래 전공은 영문학이나 행정학 등이지만 부전공이나 복수 전공으로 경영학을 이수하려는 학생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취업난이 심화되다 보니 ‘현실적인 목적’으로 경영학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연봉, 미국 대학의 3분의 1 수준 머물러
우수 교수 스카우트의 주요 무대는 해외에서 개최되는 ‘국제 경영학 학회’다. 각 분야별 전공 교수들은 학회에 참석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학교로 영입이 가능한 새내기 또는 에이스들을 찜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한마디로 ‘즉석 채용 박람회’가 열리는 셈이다. 한국 출신이거나 한국에 관심이 많은 해외파 교수라면 반드시 만나야 할 ‘주요 후보자’다. 부인이 한국인이면 이야기가 쉽게 풀린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대학장은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학회에 가장 많은 인원이 몰리다 보니 큰 관심을 기울인다”며 “최근에 박사(Ph.D) 학위를 받고 해외의 톱 저널에 논문이 실린 잠재력이 뛰어난 루키들에게는 반드시 미팅 제안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채용이 성사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일단 해외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국내 출신들은 그나마 한국행에 관심을 보인다.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한국에 있기 때문에 홈그라운드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 전혀 연고가 없는 외국인 교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가장 큰 문제는 ‘연봉’이다. 국내 대학이 줄 수 있는 연봉 수준이 미국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학계에 따르면 경영학 가운데에서도 교수 연봉이 가장 높은 분야로 알려진 회계학은 미국을 기준으로 1년 연봉이 20만 달러(2억 원)다. 하지만 국내는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경영학의 다른 계열들도 대개 연봉의 출발선이 15만 달러(1억500만 원)부터지만 국내 조교수들은 6000만~7000만 원 선이다. 그렇다 보니 파격적인 인센티브나 계약 조건이 아니고서는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방도가 없다.

국내의 임금 시스템은 ‘호봉’ 체계가 적용되고 있어 해외에서 영입한 교수들에게만 높은 연봉을 제시했다가는 ‘형평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 때문에 공격적인 스카우트가 힘들다고 취재에 응한 대부분의 학장들이 공통적으로 말했다. 부족한 연봉을 채우기 위해서는 ‘종신 교수직’ 등 안정적인 고용 보장을 ‘당근’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사실 미국 내에서도 경영학 교수들의 인기가 높다 보니 직장을 구하기가 쉽다는 것도 국내행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다. 주거 문제, 자녀 교육 문제도 큰 걸림돌이 된다.

김성국 이화여대 경영대학장은 “외국인 교수들은 전·월세에 부담을 느끼고, 특히 아이가 있다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국제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학비가 비싸다 보니 이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재 각 경영대들은 기본 연봉에 아파트 임차료, 자녀 학자금, 정착 비용, 항공료 등의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하면서 우수 교원 확보에 심혈을 기울인다.

김 학장은 “이화여대는 1년 계약의 초빙교수로 가족 없이 혼자 한국에 온 분들에게 학교 내의 게스트 하우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다른 경영대는 학교의 운영자금으로 전세 아파트를 얻어 주거나 임차료의 일부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고 했다. 성균관대는 해외에서 영입한 교수들에게 초기 3년 동안 국내에 정착하고 연구 활동에만 집중하도록 연봉 이외에 상당한 수준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센티브도 타 교수들과의 형평성 문제, 넉넉하지 않은 재정 때문에 활발히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홍콩·싱가포르 대학에 뺏기는 사례 속출
국내 경영대가 교수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아시아 대학과의 경쟁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유명 경영학 교수들이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대학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설립 22년 만에 명문대로 급부상한 홍콩과학기술대가 대표적인 예로, 이 학교 교수진의 80%가 옥스퍼드·하버드·매사추세츠공과대(MIT) 등 영미권의 유명 대학 출신이다. 아시아의 유명 대학들은 지난 몇 년간 ‘일류 교수 확보’에 매진해 왔고 전폭적인 투자 덕에 성장의 속도 또한 빨라졌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최종범 성균관대 경영대학장은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연봉이 미국 수준과 동일하고 강의보다 연구 중심이기 때문에 더 많은 공부를 원하는 이들에겐 메리트가 크다”고 말했다.

그 역시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뉴질랜드를 거쳐 싱가포르 국립대에 재직했다. 최 학장은 당시 학교 측으로부터 주거비와 자녀 교육비 등을 제공 받았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하기 때문에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최 학장은 “연구 성과에 대한 압박이 상당해 교수들 사이에선 ‘(저널에) 논문을 싣거나 아니면 짐을 싸거나(Publish or perish)’라는 말이 지배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연봉, 세계적인 석학들과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는 점 때문에 아시아권 대학으로 해외 유명 교수들이 몰린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경영대학 사이에서 교수를 서로 스카우트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잠재력을 갖춘 지방대 교수들도 영입 후보에 자주 거론된다. 최근 교수들의 채용 시장도 과거에 비해 많이 유연해져 유명세를 탄 교수들은 자신에게 더욱 유리한 조건의 학교로 자주 옮겨 다닌다. 이 때문에 유능한 교수를 서로 ‘뺏고 뺏기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경영학 교수 스카우트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세계적 추세로, 수요보다 공급이 적기 때문이다.

박 학장은 “우리나라 대학들도 단과대학별로 연봉, 인센티브 시스템을 다르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처럼 연봉 차이가 큰 상황이라면 해외의 우수한 교수들이 어떻게 국내로 유입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애써 영입한 교수들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떠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교수 가족들의 생활도 고려한 제도의 점검, 현실적인 연봉 제시 등 보다 유연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대학의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의 지원도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자산가·기업·재단 등이 대학에 돈을 내고 특정 분야 연구를 희망하도록 하고 그 대신 교수의 이름 뒤에 ‘록펠러 교수’, ‘케네디 교수’ 등을 붙이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국내에도 이상엽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가 과거 ‘LG화학 석좌교수’란 이름으로 연구 지원금을 받으며 활동한 바 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