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정체성 만들기’, 메시지 전파에서 자발적 참여로 진화해야

“우리 회사는 ○○○○을 지향한다”라는 질문에 각 기업의 경영진은 어떤 답을 채워 넣을 수 있을까. 또 그 기업의 구성원들은 어떤 답을 할까. 설사 유사한 답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동일할 수 있을까.

2013년은 각 기업들의 ‘자기 정체성 만들기’가 방황을 거듭하는 시기였다. 기업의 자기 정체성 찾기는 2008년 금융 위기를 통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양한 방식의 ‘웨이(Way) 정립’ 작업이 있었지만 그때는 선진 기업들이 하기에 우리도 해야 한다는 구색 맞추기적인 특성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금융 위기 이후 진행된 기업 문화 재정립 작업은 각 기업들의 진정성이 담기기 시작했다. 즉 기업의 본질에 대한 답을 조직 내부에서 찾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회사의 지향점을 구성원들의 ‘머리’ 속에 심어 ‘조직인(人)’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사회화(socialization)의 일환으로 접근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도요타 웨이’가 무너진 이유
에드거 샤인(E. H. Schein)의 3단계 문화론 관점을 통해 보면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인공물(artifacts), 즉 비전 문구나 로고 변경 등의 외형적 변화를 통해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Espoused Values)를 직원들과 공유함으로써 구성원들이 조직 내부에 암묵적으로 흐르는 철학이나 가치(Basic Assumptions)를 따라오도록 유도하는 형태의 접근이다.

이러한 조직 문화의 변화 관리 흐름은 기업이 주(主)가 되어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고성과를 창출해 나가는 선순환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도요타 웨이(Toyota Way)는 도요타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게 한 핵심적인 경영관리 체계이자 기업과 구성원을 하나로 이어주는 정신적 토대가 된 대표적인 조직 변혁 활동이다. 그러나 그렇게 탄탄하게 짜여 있던 도요타 웨이도 수정된 회사 전략 방향과 구성원들의 실행력 간에 균형이 깨지면서 기업이 지향하던 구심점을 잃어버렸다.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제품을 다변화하고 급작스럽게 생산 시설과 경영 활동 범위를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조직 내에 스며들게 됐는데 안타깝게도 구성원들은 이를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더욱이 협력 업체의 증가와 해외 공장 확대로 도요타 웨이의 기본 정신이 희석됐고 결국 대규모 리콜 사태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됐다.

이렇듯 조직의 외형적·재무적 성장과 이를 수행할 정신적·문화적 토대가 균형을 잃어버렸을 때 기업이 받는 충격은 가히 메가톤급 핵폭풍으로 몰아치게 된다. 조직이 성장세에 있고 매출 흐름이 좋은 상황에서는 내부적인 불균형이 잠시 감춰질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변화의 모멘텀을 찾아 변혁을 꾀해야 하는 상황이 되거나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흐름으로 갈아타야 할 때 기존의 ‘회사 중심’ 조직 문화 변화 활동은 구성원들의 열정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빈틈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경영전략 트렌드] 가슴 뛰게 하는 ‘몰입 환경’에 투자하라
이에 따라 기업의 조직 문화 변화 활동이 회사의 지향점과 일하는 방식을 구성원들에게 전파하고 따라오도록 끌고 가는 것(push형)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스스로 나서 참여하고 이뤄 나가는 접근법(pull형)으로 변해가고 있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구성원들의 몰입(Engagement)을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2013 인적자원관리협회(SHRM) 콘퍼런스의 핵심 주제 중 하나로 ‘구성원들의 몰입도’가 선정돼 다뤄진 것은 이런 흐름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원들의 몰입도는 단순히 ‘자신의 일에 대한 몰입’ 이상의 ‘자부심·재미·가치·의미’와 같은 정서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미국 SHRM 자체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41%)·인도(45%)·미국(44%) 등에 비해 일본(11%)·한국(18%)은 상대적으로 낮은 몰입도를 보이고 있다.


몰입도 끌어올리는 환경 조성이 관건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은 일은 많이 하지만 노동생산성이나 행복지수는 이에 크게 못 미친다. 지난 7월 CNN머니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자료에 따라 연평균 근로시간과 연봉을 분석한 결과 근로 환경이 가장 열악한 국가 상위 10개국 중 한국은 멕시코와 칠레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또한 지난 9월 유엔이 발표한 ‘2013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56개국 중 한국은 10점 만점에 6.267점을 받아 41위를 기록했다. 결국 한국은 일은 많이 하지만 그 일을 하는 개인도 조직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언제 조직의 기틀이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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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두 가지를 질문해 볼 수 있다. 과연 구성원들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지속적으로 고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또한 직원들의 몰입도가 높으면 고성과를 창출할 준비가 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회사와 일에 대한 몰입도가 높은 직원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열정을 기업의 성과를 올리는 데 쏟아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갖춰져야 할 전제 조건이 있다. ‘몰입 환경(Enablement)’이 그것인데, 몰입도가 높은 열정 가득한 직원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그릇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구성원들에게 부여된 직무와 그 일을 할 수 있는 프로세스 및 필요 자원의 확보 가능성 등을 의미한다. 헤이그룹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몰입 환경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몰입도가 높고 열정이 가득한 인재들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좌절감을 느끼고 자신의 기량을 감추게 되는 것(서구 유럽 21%, 아시아 29%)으로 나타났다(그림1 도표 참조). 하지만 열정을 가진 직원들이 이를 지지해 주는 몰입 환경 속에 안정된 상태에서 일하게 되면 기업의 다양한 성과 지표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그림2 도표 참조). 한국은 회사가 몰입 환경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는지에 대한 불만족 수준이 41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몰입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 문화의 근간을 탄탄하게 쌓아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악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통해 경영 철학과의 연계성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서 연계성은 기업 철학과 외형적 인프라의 연계성, 철학과 기업 운영 방식의 연계성을 의미한다. 지난 9월 국내에서도 개봉된 ‘몬스터 대학교’를 만든 픽사(Pixar)는 ‘혁신과 창의성’의 경영 이념을 거창하게 집대성된 글이나 책을 통해 깨우쳐 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돼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픽사대학 건물에 새겨져 있는 라틴어 문구,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Alienus Non Diutius)’가 대변해 주듯 픽사에서 이야기하는 창의성은 ‘협업’과 ‘다양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부분이 프로젝트 단위로 인력 소싱이 일어나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픽사는 최초로 월급제 정규직 직원으로 인력을 운영했다. 이는 여러 사람들이 장기적인 시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해 수준 높은 성과물로 발전시켜 가는 토대가 됐다. 본사 건물에서도 이러한 철학을 읽을 수 있는데, 광장을 중심으로 좌뇌와 우뇌를 상징한 공간 배치(좌뇌·기술 분야, 우뇌·예술 분야)를 통해 양자 간의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동선을 이끌어 내고 팀워크 최우선주의,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관행, 두뇌위원회를 통한 다양한 의견과 시각 교환 등을 실질적으로 행하고 있다. 연계성을 확보해 내는 것은 그동안의 잘못된 관습과 관행을 끊어 버리는 철저한 자기반성이 요구된다.

국내 모 대기업은 창의성을 강조하면서 대대적인 창의 교육과 별도 공간 마련 등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조직 내에 넘쳐흐르게 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운영할 때 절차와 위계가 더 강조됨으로써 외형적 변화 노력이 생산적인 결과물로 연계되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도 있기 때문에 환골탈태에 가까운 연계성 확보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일관성이 생명… 과감한 선택 따라야
둘째, 과감한 우선순위 선정이다. 회사에서 강조하는 비전, 미션, 핵심 가치 등은 구성원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문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재정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판단의 근거, 즉 모든 것을 다 버린다고 하더라도 이것만큼은 지켜야만 우리 회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 한 가지를 정의하고 이에 대해 구성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흔히 겪는 딜레마는 ‘고객’이 우선인가, ‘직원’이 우선인가 하는 것이다. 모두가 다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하는 말과 같다. 이때 회사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선택해야 한다. 매년 미국 경제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의 1, 2위를 점하고 있는 SAS는 명백하게 ‘직원’을 우위에 둔다.
[경영전략 트렌드] 가슴 뛰게 하는 ‘몰입 환경’에 투자하라
셋째, 일관성에 대한 경험이다. 회사가 지향하는 바를 비즈니스 전략 수립에서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 속에 일관성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세계 1위 요구르트 회사인 다농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통한 건강을 전파한다’는 일념 하에 2007년 잘나가는 과자 판매 사업 부문을 과감히 매각하고 네덜란드 유아식 및 환자 영양식 회사인 누미코(Numico)를 인수함으로써 회사 이념에 완벽히 부합하는 사업 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빈곤국에는 저가로 양질의 제품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업인 SOS그룹과 합작으로 값싸고 영양이 풍부한 제품을 의료 서비스와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이 기업이 지향하는 바는 대내외적으로 너무나 명확해졌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매 순간순간 갈등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경영 이념에 부합하는 인재가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되고 그 신념을 더 강화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게 되며 더 참신한 아이디어로 회사가 지향하는 바를 구현해 내는 데 전력을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각 기업에서는 지향점에 대한 냉철한 검토와 정제된 메시지를 통해 이를 구성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성원들이 일상생활에서 그 메시지를 ‘가슴’으로 느끼고 있는지 검증해 보아야 한다. 앞으로 성공하는 기업은 “우리 회사는 ○○○○을 지향한다”는 물음에 모든 구성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게 대답하는 회사가 아니라 기업의 철학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고 그 ‘숨겨진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은 헤이그룹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