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경영난 몰려 대한항공에 지원 요청… 최 회장 책임론도 불거져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던 한진해운은 지난 10월 30일 형제 기업인 대한항공 측으로부터 1500억 원의 자금을 긴급 지원받았다. 한진그룹과 계열 분리에 나섰던 최은영(51) 한진해운홀딩스 회장이 시숙인 조양호(64) 한진그룹(대한항공) 회장을 찾아가 부탁한 결과다. 금융권으로부터 자금 확보가 여의치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 회장의 도움으로 한진해운은 11월 1일 만기를 앞두고 있던 기업어음(CP) 1050억 원을 막아냈다. 최근 사태로 한진해운 경영진의 경영 실패 책임론이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진해운의 위기가 예고돼 왔기 때문에 그 여파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진해운은 이미 3년 전부터 자금난을 겪어 왔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거치며 위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같은 해 최 회장이 사령탑에 올랐다. 2006년 조중훈 한진그룹 명예 회장의 삼남 조수호 회장이 별세한 후 최 회장은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나섰다. 최 회장은 2009년 9월에는 지배 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회사를 ‘한진해운홀딩스’라는 소지주회사와 해운 사업 부문인 ‘한진해운’으로 분할했다. 최 회장은 홀딩스 설립과 함께 당시 본인과 자녀들이 보유한 한진해운 외 그룹 계열사의 주식을 매각했다.


2010년 이후 3년째 적자 이어져
그러나 최 회장의 바람과 달리 한진해운은 한진그룹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진그룹이 보유 중인 한진해운의 지분을 모두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의 계열 분리가 멈춘 상태였지만 사실상 독립 경영을 하며 계열 분리에 지속적으로 공을 들였다. 지난해 11월 한진해운이 갖고 있던 정석기업 지분 4만4000주를 처분한데 이어 한진관광 지분도 정리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한진해운의 유동성 위기는 더욱 깊어져 갔다. 2010년 이후 3년 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매년 증가했다. 총 차입금이 2010년 5조5812억 원에서 올해 6월 말 9조502억 원으로 불어났고 부채비율은 770%를 웃돌았다. 올 상반기에는 1156억 원의 영업순손실을 기록하며 부채비율 835.22%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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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상태가 나쁘다 보니 금융권이 등을 돌려 돈줄이 막히기 시작했다. 금융권 차입이 어려워지자 2011년 이후 CP를 발행해 대응했다. 그 결과 차입 구조가 단기화되고 영구채 발행이 지연되면서 자금을 확보할 방도가 없어 결국 대한항공에 손을 벌리게 된 것이다.

기업 프로젝트 컨설팅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한진해운 매수 의견을 내오다 이번 대한항공 지원 건이 터지면서 위험하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미 예고된 사태였음에도 해당 기업과 금융권 모두 방관하다가 지금은 면피하기 급급한 모습”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결국 해운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안이한 판단이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최 회장이 힘을 실어준 김영민(58) 한진해운 사장의 경영 능력도 논란거리다. 그는 해운 전문가이기보다 금융 전문가로 통한다. ‘금융통’으로 불리는 김 사장은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타계 이후 2009년부터 최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 몇 년째 불안한 해운 업계 시황에 대응해 유동성 확보와 경영 합리화를 추진하는 등 사실상 한진해운의 살림을 도맡고 있는 인물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미국의 투자은행 씨티은행에 20년간 근무하면서 글로벌 기업 투자를 담당했다. 2001년 한진해운의 미국 터미널 운영 자회사를 맡으면서 주목받았다.

해운 업계 관계자는 “실적 부진으로 한때 김 사장의 용퇴설이 나돌았던 것도 사실”이라며 “최 회장이 지난해 초 김 사장에 대한 재신임 의사를 밝히고 힘을 실어줬다. 작년 연말에 가졌던 ‘2013 전략회의’ 자리에서도 한진해운 임원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모아 놓고 ‘김 사장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구조적인 변화보다 돈을 끌어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데만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진해운이 보유한 선박의 구성이 낙후됐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특수선 위주의 해운 시장 경쟁에서 뒤처진 게 가장 큰 약점이다. 한진해운의 주력 선종인 컨테이너선 시장이 미국 소비 수요 증가세에 따라 미주 항로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여전히 유동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규 투자는 엄두도 못 냈다. 한진해운은 지난해에 이어 올 들어서도 아직까지 단 한 척의 신조선 발주(새로운 선박 주문)도 못 하고 있다. 머스크라인 등 글로벌 선사들이 한국 조선사들에 고효율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할 때 구경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 회장, 인사 실패 구설 올라
여하튼 한진해운은 대한항공의 자금 지원으로 급한 불은 끈 상태다. 그러나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한진해운은 12월에 또 1050억 원의 추가 CP 만기가 돌아온다. 회사채의 경우 올해 안에 259억 원, 내년 3월까지 회사채 1800억 원, 6월 600억 원, 9월 1500억 원이 만기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2분기 말 기준으로 현금 5066억 원을 보유하고 있는 한진해운에 당장 갚아야 할 빚 부담이 너무 크다. 금융투자업 관계자는 “만약 한진해운의 영구채 발행이 어려워지면 다른 자산도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아마도 사옥과 터미널, 물류기지 등도 매각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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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까지 또 수천억 원을 갚아 나가야 하는 한진해운의 앞날이 험난해 보인다. 게다가 한진그룹에 차입금을 갚지 못하면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대한항공과 한국공항 등 한진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여전히 한진해운홀딩스의 지분을 26% 정도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다. 경영을 분리하더라도 지분 관계로는 아직 한진해운이 조양호 회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로써 최 회장의 오랜 꿈인 한진해운의 완전 계열 분리는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사모 투자 전문 회사의 한 임원은 “경영자는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경영진 교체”를 지적했다. 이어 “영구채를 발행해 돈을 마련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 1등 해운사인 만큼 시장에 믿음을 줄 수 있는 재무 관리와 경영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