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덩어리서 알짜배기로…위상 ‘쑥’

대우그룹 해체는 국가 경제를 흔들었다. 정부는 대우그룹을 살리기 위해 약 30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난을 받으며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십여 개의 계열사 가운데 상당수는 회생에 성공했다. 동부그룹에 인수된 대우일렉트로닉스와 두산그룹에 인수된 대우종합기계 등이 대표적이다. 공적자금이 기업 회생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한국GM처럼 대우의 흔적을 찾기 힘든 곳도 있다. 전성기 시절 대우그룹을 주무르던 주력 업종인 자동차·중공업·전자·건설 등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지난 2월 15일 서울 대치동 동부금융센터에서 3167억 원의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 매각이 진행됐다. 1월 8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동부컨소시엄이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본계약을 맺은 지 1개월 만의 일이다. 8년간 매각에 난항을 겪었던 대우일렉트로닉스는 동부의 품에 안기며 ‘동부대우전자’로 다시 태어났다. 캠코 역시 2월 22일 부실채권정리기금 청산을 앞두고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인수·합병(M&A)을 종결함으로써 공적자금 회수의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1999년 워크아웃이 시작된 이후 캠코가 2000년에 인수해 지속적인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으로 유지, 발전시켜 왔다. 이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수차례 매각에 나섰지만 인수 가격과 매각 조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줄줄이 무산됐다. 그러던 지난 2월 8년 만에 동부그룹에 부실채권정리기금 보유 채권과 주식을 매각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우 계열사 중 유독 부침이 심한 기업 역사를 갖고 있지만 실적은 뒤처지지 않았던 게 도움이 됐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평균 연매출은 1조5000억 원이다. 동부대우전자로 다시 태어난 이후에도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동부그룹에 편입된 후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전 신제품을 잇달아 발표하며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동부대우전자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캠코는 2000년 1월부터 금융회사가 보유한 대우 계열 12개사의 채권을 공적자금으로 인수해 채권 금융회사와 공동으로 회사별 특성에 맞는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당시 부실채권 35조8000억 원어치를 12조7400억 원에 사들였다. 현재는 대우건설·대우종합기계·대우인터내셔널·대우일렉트로닉스·대우조선해양 등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회수되면서 약 15조 원이 넘는 금액이 회수된 상황이다.


혹독한 워크아웃·기업 매각 견뎌
2005년 두산 계열로 편입돼 두산인프라코어로 재탄생한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에 1조6000억 원에 매각됐다. 인수된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 계열사 중 핵심 기업으로 거듭났다. M&A 이후 두산그룹과의 시너지 창출로 세계 유수의 건설·공작 기계 회사로 발전해 가고 있다.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주)대우의 무역 부문을 들고나온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8월 30일 포스코에 3조4000억 원에 매각됐다. 캠코 관계자는 “대우인터내셔널이 포스코에 매각된 이후 철강과 원자재 등의 수출입이 활성화되는 등 시너지가 창출됐다”며 “미얀마 가스전 개발 등 자원 개발 사업에 대한 모그룹의 원활한 자금 지원 등으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국가 자원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자원 자주 개발률 제고에도 기여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와는 달리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수년째 매물 시장에 오르내리는 기업도 있다.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이다.

(주)대우에서 분리된 대우건설은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됐다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금난 이후 다시 2010년 KDB산업은행으로 인수됐다. 대우건설에 따르면 대우건설의 최대 주주는 ‘KDB밸류 제6호 유한회사’로, 대우건설 지분 50.75%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KDB산업은행이 조성한 사모 펀드(PEF)로, 실질적인 대우건설의 최대 주주는 KDB산업은행이다. 증권사의 한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대우건설이 KDB산업은행에 인수되며 동종 업계와 금융시장에서 인정받기는 했지만 건설 경기 침체로 영업 실적이 호전되지 않아 KDB산업은행이 지속적으로 매각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매출 8조1803억 원, 영업이익 3652억 원으로 2011년에 비해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감소했다. 실제 해외 수주 비중이 높다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대우건설의 해외 수주액은 2010년 3조4733억 원, 2012년 5조3841억 원이다. 경쟁사인 GS건설·SK건설이 대규모 적자를 본 것처럼 대우건설 역시 해외 저가 수주의 부메랑이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눈물의 대우맨들] 부활한 옛 대우 계열사들
실제로 KDB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의 순이익 목표치(연간)가 2500억 원을 밑돌면서 KDB밸류 제6호는 1600억 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실적 악화에 따른 주가도 2010년 인수 시점 대비 반 토막이 난 상태다. KDB산업은행이 금호그룹으로부터 대우건설을 인수할 당시 주당 장부가는 1만5069원이었지만 현 주가는 8430원(11월 1일 종가 기준)까지 하락했다.

KDB산업은행 사모펀드2부 관계자는 “대우건설의 실적이 호전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올해 역시 딜로이트를 통한 컨설팅 결과를 반영해 영업권에 대한 손상 처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건설 불황에 매각 지체
장부가의 감액손실 처리가 이뤄진다면 향후 대우건설의 매각 가치 하락은 불 보듯 빤한 일이다. 장부가에 대한 감액손실 처리는 해당 기업의 실적 등 영업 환경 악화에 따른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향후 실적이 좋아지더라도 손상 처리된 영업권을 다시 장부가에 환입할 수 없기 때문에 매각 가치 하락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우건설 고위 임원이 4대강과 관련한 비자금 혐의 등도 악재다. 이에 따라 기업 이미지가 더욱 훼손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우의 중공업 분야인 대우조선해양은 십수 년째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주인 없는 회사로 남아 있다. 최근 이 기업 역시 임직원 비리 혐의가 드러나며 벼랑 끝에 섰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1999년 8월 워크아웃 신청, 이후 2년여 만인 2001년 8월 공적자금 2조9000억 원으로 회생했다.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출자 전환을 통해 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KDB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31.5%, 금융위원회는 17.2%, 국민연금은 7.1%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눈물의 대우맨들] 부활한 옛 대우 계열사들
그런데 최근 KDB산업은행은 내년 상반기에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매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조선업 경기가 좋지 않고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인수 가능 기업들의 여건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M&A 시장 상황과 경제 여건 등을 감안해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본격적으로 매각할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을 담당하는 산은 기업금융4부는 “향후 적절한 시점이 되면 매각 공고를 실시할 것이며, 공고 이후 6개월 이내에 매각 절차를 종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작업이 장기화되면서 기업 가치는 더 떨어지고 매각 협상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매각이 늦어지면서 현재 KDB산업은행이 민간 산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낳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외환 위기 당시 부실기업들을 떠안았던 캠코는 수년간에 걸친 단계적 매각 작업으로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하는 모범 사례를 남겼다. KDB산업은행도 비슷한 시기에 부실기업들의 관리를 맡았지만 적정 시기에 매각하지 못해 결국 덩치만 불리게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리저리 팔리다 결국 대우의 명맥이 끊긴 계열사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김우중 전 회장이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았던 자동차 산업이다. 2000년 11월 최종 부도 처리돼 법정 관리에 들어간 대우자동차는 우여곡절 끝에 GM이 인수해 2002년 10월 ‘GM대우’로 다시 태어나 대우의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우자동차 시절 생산하던 모델은 줄어든 상태였다. 내수 시장의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GM대우는 결국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 한국GM으로 새롭게 출범하며 대우의 흔적은 사라졌다.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된 쌍용자동차 역시 2005년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됐다가 판매 부진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2009년 법정 관리 체제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는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해고 사태로 노사·노조 간 갈등을 겪으며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 결국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됐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