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이 열광하는 ‘9블록 모델’

전기자동차 업계의 총아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베터플레이스(better place)’가 올해 5월 설립 5년 만에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사업 계획서만 보고도 도이체방크가 기업 가치를 무려 2조 원으로 평가했던 회사다. 제너럴일렉트릭과 홍콩상하이은행(HSBC) 등은 실제 1조 원 정도를 투자하기도 했다. 그만큼 베터플레이스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 개발되고도 한참 동안이나 상용화되기 어려웠던 전기자동차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YONHAP PHOTO-0657> (100901) -- SAN FRANCISCO, Sept. 1, 2010 (Xinhua) -- Apple CEO Steve Jobs introduces new iPod nano at Apple's fall 2010 event in San Francisco, the United States, Sept. 1, 2010. Apple unveiled a new line of its iPod models and a new version of Apple TV on Wednesday's event.  (Xinhua/Qi Heng) (zw)/2010-09-02 07:48:20/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100901) -- SAN FRANCISCO, Sept. 1, 2010 (Xinhua) -- Apple CEO Steve Jobs introduces new iPod nano at Apple's fall 2010 event in San Francisco, the United States, Sept. 1, 2010. Apple unveiled a new line of its iPod models and a new version of Apple TV on Wednesday's event. (Xinhua/Qi Heng) (zw)/2010-09-02 07:48:20/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비결은 배터리였다. 한 번 충전으로는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전기자동차에 교체 가능한 배터리를 장착한 것. 교환하는 데 1분, 배터리 충전도 5분이면 되기 때문에 훨씬 편리해진 것은 당연지사. 배터리 소유권을 가진 베터플레이스는 충전 서비스 수수료라는 부가 수익도 올릴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배터리 충전을 해 줄 교환소 건립 계획이 어긋나 절반에도 채 못 미쳤던 것. 값비싼 전기자동차를 대중화하는데 절대적인 정부 보조금도 생각만큼 이뤄지지 못했다. ‘편리한 배터리 교환 전기자동차’라는 사업 아이템은 훌륭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채널, 외부 파트너 등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전기차 업계 총아’베터플레이스가 실패한 이유
사회적 기업의 열풍을 타고 국내에서 2007년 등장한 ‘문턱없는 밥집’. 농가와 직접 계약, 질 좋은 유기농 먹을거리를 자율 가격제로 제공하겠다는 취지는 훌륭했다. 특히 좋은 일에는 얼마든지 지갑을 열겠다는 착한 소비의 가치를 아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농가도 살리고 고객에게는 믿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하겠다니 인기를 끌만했다. 그러나 이곳도 2012년 폐업하고 말았다.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거래로 중간 마진을 없앴지만 질 좋은 식자재를, 그것도 제대로 된 가격을 주고 사오는 것이기 때문에 한 끼 원가만 8000원 정도에 달했다. 게다가 음식점이다 보니 솜씨 좋은 요리사 인건비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의 가게 임차료도 무시하지 못했다. 이렇게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데 비해 매출은 형편없었다. 자율 가격제로 운영돼 고객들이 1000~2000원만 내고 가거나(원가 8000원짜리 식사를!) 아예 무전취식하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질 좋은 유기농 한 끼 식사’라는 사업 아이템은 좋았지만 과다한 비용 구조와 불안한 수익 구조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 것.

두 사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업 아이템만 생각하고 비즈니스 전체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즈니스 전체를 본다는 것은, 즉 무엇을 팔까 외에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서 팔고, 돈은 어떻게 벌 것인가’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참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이를 간단하게 정리한 틀이 최근에 나온 9블록(blocks) 모델(이하 9블록)이다. 이 모델은 45개국 470명의 연구자가 무려 9년에 걸쳐 연구한 내용으로 IBM·에릭슨·딜로이트·캐나다 주정부 등 전 세계, 기업에서부터 공공 기관에 이르기까지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9블록은 복잡하기만 해 보이는 비즈니스 요소를 간단하게 구체화하고 각 요소들 간의 연관 관계를 밝혀 사업성 검증 기법을 제공하는 게 강점이다. 그런데,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시각적으로 보기 쉽게 표현해 준다는 것이다. 9블록의 각 요소를 좀 더 상세히 알아보자.

먼저 가치 제안(VP: Value Proposition)이 있다. 기업이 제공하는 것을 아이템이 아니라 가치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건설사에는 그냥 건축물이 아니라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움 또는 그 자체로 도시경관을 바꾸는 디자인, 고객의 비용을 아껴주는 합리적 가격, 믿고 구매할 수 있는 브랜드 가치 등이 가치 제안이 될 것이다.
사회적 기업 '문턱없는 밥집' (서울 마포구 동교동 소재) 에서 고객들이 유기농 비빔밥을 그릇에 담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
사회적 기업 '문턱없는 밥집' (서울 마포구 동교동 소재) 에서 고객들이 유기농 비빔밥을 그릇에 담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
두 번째는 고객 세그먼트(CS: Customer Segment)다. ‘누가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가’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매스 마켓일 수도 있고 틈새시장을 타깃으로 할 수도 있다. 카드사의 경우 카드를 사용하는 일반 고객과 가입된 가맹점처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고객을 동시에 상대할 때도 있다.

세 번째 요소인 수익원(R$: Revenue Streams)은 물품을 팔아 대금으로 받을 수도 있고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을 수도 있다. 서비스업에서는 가입비로 받거나 한 번 이용할 때마다 이용료를 받을 때도 있다. 아니면 광고료 또는 라이선싱 수수료가 주요 수익원이 될 수도 있다.

네 번째 고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객 관계(CR: Customer Relationship)를 어떻게 맺어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제품·서비스를 고객에게 유통하려면 다섯 번째 판매 채널(CH: Channel)도 있어야 한다.


9가지 필수 요소 통해 사업성 검증
이렇게 하려면 여섯 번째 우리 기업의 핵심 활동(KA: Key Activity)을 무엇으로 봐야 할지 고려해야 한다. ‘제품을 생산하는 것인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인지’, ‘플랫폼을 마련해 이해관계인들을 연결해 주는 것인지’ 등이 그 답이 될 수 있다. 핵심 활동을 하려면 일곱 번째 핵심 자원(KR: Key Resource)의 활용이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은 내부에 모든 자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여덟 번째 외부의 중요한 핵심 파트너(KP: Key Partner)와의 관계가 점점 중요해진다. 이 모든 것을 유지하려면 필연적으로 아홉 번째 비용 구조(C$: Cost Structure)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위 9가지 요소가 바로 비즈니스의 필수 요소인 9블록이다. 최소한 이 9가지 요소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게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비즈니스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가령 애플의 아이팟(iPod)이 2012년 기준 누적 판매량이 3억 대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MP3로 등극하면서 그 성공에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실 아이팟이 최초의 MP3도 아니고 그저 세련된 디자인이나 좀 남다를까. 기계로만 봐서는 지금의 성공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9블록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그려보면 그 답이 명확하다. 음악을 즐기는 젊은 층(고객 세그먼트)에게 멋진 MP3 플레이어(가치 제안)를 애플스토어(채널)를 통해 판매한다는 것으로만 보면 다른 MP3 업체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아이팟의 결정적인 차이는 경쟁사가 제공하지 못하는 가치 제안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원하는 음악에 바로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이를 위해 아이튠즈라는 판매 채널이 새로 만들어졌고 MP3 기계만 만들었다면 전혀 상관없었을 레코드 회사들이 중요한 핵심 파트너로 등장한다. 물론 아이튠즈에서 거둬들이는 부가 수입도 만만치 않다.
[경영전략 트렌드] 사업 아이템보다 비즈니스 전체를 보라
이렇듯 9블록을 활용하면 새로운 혁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즉, 각 요소들을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깨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가령 고객 세그먼트에서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해야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의 연예 기획사 ‘소닉비즈(sonicbids)’는 이런 틀을 깼다. 그들은 대형 연예 기획사들이 외면한 무명 가수들과 작은 규모의 행사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비록 건당 수익은 적지만 작은 행사들을 모으면 미국에서만 연간 150억 달러 규모의 큰 시장이 된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이에 따라 소닉비즈의 핵심 활동은 자사에 소속된 무려 2만5000명의 무명 연예인들을 관리하는 데 집중돼 있다. 당연히 일반 기획사들과는 방법이 다르다. 인터넷으로 소속 연예인과 연락하고 인터넷으로 고객을 모은다.


사실 아이팟이 최초의 MP3도 아니고 그저 세련된 디자인이나 좀 남다를까. 기계로만 봐서는 지금의 성공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9블록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그려보면 그 답이 명확하다.


가치 제안은 또 어떤가. 일반적으로 건설사는 ‘완성된 집’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관념에서 벗어나 ‘집을 짓는 즐거운 경험’을 가치로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 스웨덴의 건설사 ‘스칸스카(Skanska)’가 그 주인공이다. 수주 산업이기 때문에 판매 채널이 중요하지 않은 일반 건설사와 달리 이 회사는 가구 전문 유통 매장인 이케아에서 조립식 주택을 판매하고 있다. 집에 대한 관념을 바꾼 덕이다.

수익원도 얼마든지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보시와 지멘스가 합작해 만든 ‘보시지멘스’는 신형 냉장고를 공짜로 빈민층에게 나눠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회 공헌 차원에서 하는 것이라고? 천만에. 새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 주면서 구형 냉장고를 회수하는데 여기에 그들의 돈 버는 비밀이 숨어 있다. 바로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라는 구형 냉장고의 냉매 처리를 하기 위한 것. 이를 통해 받은 탄소 배출권을 거래소에 팔아 수익을 챙기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의 핵심 활동은 다른 냉장고 회사들처럼 냉장고 마케팅이나 생산에 있지 않다.
[경영전략 트렌드] 사업 아이템보다 비즈니스 전체를 보라
최신 핫 경영전략들 9블록 모델과 통해
마지막으로 핵심 파트너십의 사례를 하나 더 보자. 이탈리아 주방 용품 회사인 알레시(Alessi)는 앙증맞고 예쁜 디자인 제품으로 주부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얻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알레시 내부에는 디자이너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디자인으로 성공한 회사가 디자이너가 없으면 어떡하느냐고? 그들은 전 세계에 디자이너가 있으니 내부에 없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디자인 워크숍을 열고 그 나라의 젊은 디자이너들을 모아 상품을 만든다. 50여 개국에서 10만 개 이상 팔린 고슴도치 모양의 기발한 클립홀더도 한국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여한 한국인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전략들이라고? 맞다. 요즘 ‘핫’하다는 최신 경영전략들도 사실은 9블록을 통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 소규모 시장이지만 모으면 거대 시장 못지않다는 롱테일 전략(소닉비즈 사례), 제품 자체가 아닌 고객의 경험을 중요시하는 UX(User Experience) 전략(스칸스카 사례), 무료 또는 저가로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되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공짜 경제 전략(보시지멘스 사례), 마지막으로 외부의 지식과 혁신 프로세스를 최대한 활용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알레시 사례) 등이 모두 그러하다.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시각을 가진다는 것이 말이 쉽지 막막하기만 할 때 9블록을 펼쳐 놓고 요소 하나하나를 바꿔 보면 이렇듯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단순한 아이디어로 끝나지 않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가 되기 위해서는 나머지 요소들을 어떻게 연결할지 생각해 보면 완성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 되는 것이다.

옛날이야기 하나.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 3명이 각자 어떤 한 물체를 만져 보고 토론하고 있다. 한 명은 나뭇등걸이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가죽 끈이라고 하고, 나머지 한 명은 커다란 부채라며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답답해 이야기해 준다. 그것은 코끼리라고. 다리를 만진 이, 꼬리를 만진 이, 귀를 만진 이는 자기가 만진 것에 대한 일부 정보만 가지고 생각하지만 전체를 보면 그것이 코끼리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 비즈니스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지 않으면 그 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비즈니스의 전체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조미나 IGM 세계경영연구원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