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현 카이스트경영대학 교수의 ‘경영 의사결정론’ 上

현실 속에서의 경영 의사결정은 불확실성, 문제의 모호성, 복잡성, 가치의 상충, 시간적 제약 등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많은 자원이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영자의 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경영자에게는 현장 경험이나 지식을 넘어 통찰력과 혜안이 요구된다. 경영전문대학원(MBA)에서는 경영자 혹은 미래 경영인들에게 절실한 자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는 경영인들이 주목할 수 있는 다양한 MBA 명강의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여 기 두 종류의 내기가 있다. A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B는 주사위를 던져 1이 나오면 내기에서 이겨 1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참가비를 내고 게임에 참가할 때 어떤 게임에 임할 것인가.”

경영자·임원·변호사·회계사 등으로 구성된 카이스트 EMBA의 학생들은 잠깐 생각 후 대부분 A 게임을 선택한다. 당연히 확률적으로 A 게임을 선택하는 게 내기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결과 동전은 뒷면, 주사위는 1이 나왔다. 기댓값이 높은 쪽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로직을 적용했을 때 A를 선택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는 비록 비이성적 선택인 B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안재현 교수는 ‘옳은 의사결정’과 ‘좋은 결과’는 이렇게 분리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의사결정의 질 높이는 ‘처방적 접근’
중요한 의사결정을 수없이 해야 하는 경영자에게는 어떤 기준이 요구될까. 여러 상황에서 어떤 원칙, 어떤 프로세스, 어떤 기법을 통해 인간으로 빠질 수 있는 오류를 넘어 옳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돕는 방법을 ‘처방적 의사결정 접근(Prescriptive Decision Making Approach)’이라고 일컫는다. 안 교수는 “더 나은 의사결정, 즉 의사결정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의사결정 분석과 프로세스라는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운을 떼고 이번 수업에서 기업에서 실질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말한다.

안 교수는 학생들에게 “좋은 의사결정은 최고경영자(CEO)의 목표이고 이로써 기업의 성과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의사결정을 이끄는가”라고 질문했다.

학생 A= “가능한 리스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리스크를 파악하면 가능한 대안을 충분히 많이 도출할 수 있다”

학생 B=“또한 목적, 원인 분석, 상황 분석 등 관련 요인들도 파악해야 한다. 목적이 불분명하면 좋은 의사결정이 될 수 없다.”

학생 C=“의사결정 참여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나. 충분한 참여가 있었는지도 중요하다.”

학생 D=“(성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이즈를 제거했는지도 중요하다. 노이즈가 나오는 이유가 파악되지 않았거나 목적 외의 다른 의도가 의사결정 과정에 삽입됐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학생 E=“의사결정의 유동성도 중요하다. 상황이 변하면 의사결정 내용과 계획을 변경할 수 있는지 말이다.”

학생들은 경영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옳은 의사결정을 위한 다양한 요소들을 언급했다. 이에 안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의사결정에 해당되는 사안은 이렇게 많다. 전부 중요한 것들이다. 이것들을 어떻게 구조화해 정리하고 중요한 결정 시기에 빠르게 사안들을 감안하며 대응할 수 있을까. 경영자들이 의사결정에 모두 확신을 갖고 있을까.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기업의 재무·마케팅·조직·전략 등 모두 중요하지만 모든 기능이 모두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의사결정의 프로세스도 중요하지만 정작 최고 의사결정자의 통찰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의 마지막 시그널이 나와야 의사결정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처방적 의사결정 접근을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옳은 의사결정과 좋은 결과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사례를 들었다. 원전이 파괴되는 상황은 쉽게 생각할 수 없다.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해 리히터 규모 20.0까지의 내구성에 대비하지 않았다고 원전 건설이 잘못된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 쓰나미와 같은 리스크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리스크를 모두 보수적으로 고려할 때 아예 건설 자체가 진행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안 교수는 옳은 의사결정인지의 여부를 결과 중심으로 평가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결정은 옳았나
그리고 다시 학생들에게 “의사결정에 대해 이것이 옳았는지 언제 알 수 있다고 보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주식시장 투자는 즉각적으로 결과를 볼 수 있지만 기업이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에 맞춰 투자 결정했을 때 그 수익은 수년 후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은 오너의 의사결정 비중이 높은 특성 덕분에 장기간에 걸친 미래를 보고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 반면 전문 경영인은 재임 기간 내에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도전해야 하는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의사결정은 결정되는 동시에 그 절차와 합당성에 따라 퀄리티가 결정될 수 있을까. 또한 언제 나올지 모르는 결과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딜레마다.

경영자를 평가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할 때 그의 의사결정 능력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의사결정을 했는지, 아니면 좋은 결과를 추출해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좋은 결과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 경영자의 능력에 따른 의사결정 덕분인지, 다만 운이 좋아서였는지 말이다. 단지 결과를 기반으로 평가 작업이 이뤄진다면 혁신을 추구하는 경영자의 방향과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이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의사결정자가 (책임이라는) 총대를 메고 결정을 내린다. 잘된다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결과를 당시 알 수 없을 때도 나쁜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 의사결정을 내릴 때 모두 반대했지만 훗날 찬사를 받게 됐다.”

안 교수는 박 전 대통령 사례에 대해 “그는 미래의 인프라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고 반대자들은 나름 다른 논리에 가치를 부여했다”며 “의사결정자의 통찰력에 따라 전혀 다른 결정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경영자는 옳은 의사결정과 즉각적인 좋은 성과는 반드시 같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실행하는 게 좋다고 안 교수는 조언했다.

경영자에게는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 최종 목표다. 하지만 통제 불가능한 불확실성이 가득한 경영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옳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밖에 없다. 동전과 주사위 게임의 예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의사결정의 퀄리티를 높인 동전 게임을 선택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합당한 의사결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하지만 주사위 게임을 선택한 경영자는 운이 좋아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하더라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이성적인 결정을 했기 때문에 사장으로서 계속 의사결정을 맡길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다른 의사결정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학생이 의견을 냈다.

“배타적 관계의 인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쥐가 벽에 부딪쳤을 때 우연히 치즈를 떨어뜨려 줬다. 쥐는 벽에 부딪친 행동 때문에 치즈가 주어졌다고 착각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치즈를 위해 벽에 부딪치는 행동을 계속한다. 이런 행동은 자칫 기업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즉, 하나의 결과만으로 그 의사결정이 과연 옳았는지 평가한다면 자칫 전체 경영 의사결정 과정과 기업이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좋은 결과는 의사결정의 판단 기준으로 불명확하다는 의견도 다른 학생에게서 나왔다.

“현실 경영 환경에서 A란 결정이 내려졌을 때 그 의사결정을 평가하기 위해 결과가 아닌 다른 대안들과의 비교가 많이 이뤄진다. 다른 대안들의 명확하지 않을 때 결국 A란 결정이 옳았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에서 모두 일해 봤다. 한국 기업에서는 추진 사업의 결과에 따라 담당 본부장이 계속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 기업은 손실이 났더라도 의사결정자가 경질되지는 않았다. 의사결정의 평가 작업에 대해 기업마다 추구하는 문화와 방향이 상이하다.”

자연스럽게 의사결정자의 평가 기준에 대한 토의가 이어졌다. 의사결정 과정의 합리성, 그리고 그 결과 외에도 다른 평가 기준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었다.

“옳은 의사결정을 했지만 실적이 나오지 않을 때도 많다. 우리 회사는 좋은 실적을 낸 사람은 인센티브나 보너스를 준다. 하지만 결과를 정확히 예상한 사람은 도전적인 사업을 할 때 승진의 기회가 주어진다. 결국 좋은 실적은 운에 따라 나올 수도 있지만 자기의 목표를 잘 예상한 사람의 능력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The Hidden Traps in Decision Making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6가지 함정

잘못된 의사결정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대부분이 의사결정 방법에 기인할 때가 많다. 대안이 명확하지 않았다든지, 올바른 정보가 수집되지 않았다든지, 비용과 효과가 정확하게 산출되지 않았다든지 등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의사결정자가 갖고 있는 인간적인 한계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유도할 때도 많다. 즉 인간의 두뇌가 일하는 방법이 이성적인 결정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발견되는 6가지 유형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경영자들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1. 고정관념의 함정(anchoring trap)
의사결정에서 처음 접하는 정보에 대해 불균형적 비중을 두는데 이를 앵커링(anchoring)이라고 부른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일반적인 앵커 중 하나는 과거의 사건 혹은 추세다. 내년도 판매 예측을 하는데 과거의 데이터를 살펴본다. 과거의 데이터는 하나의 앵커가 되고 예측자는 다른 요인에 의해 수정을 가한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서 과거의 앵커는 잘못된 예측을 야기하고 결국 잘못된 선택을 내리게 한다.

2. 현상 유지의 함정(the status-quo trap)
많은 이들은 자신이 의사결정할 때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한다고 믿기 때문에 현 상태를 유지하고 위험을 가급적 회피하려는 심리가 있다. 그래서 현재 상태에서 변화하는 데 대한 노력과 비용을 과장할 수 있다. 현 상태보다 좋은 여러 대안이 있을 때 이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각하거나 현 상황을 고집하지 않는 게 좋다.

3. 손실비용의 함정(sunk cost trap)
이제 더 이상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없는 과거의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심리가 있다. 미래 의사결정에 영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투자비용 때문에 현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오류다.

4. 사실 확인의 함정(confirming-evidence trap)
평소 생각하던 것에 대한 일부 근거를 확인하면 더 이상 다른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무시하려는 심리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동등하게 모든 근거들을 조사, 확인해야 한다.

5. 구성의 함정(framing trap)
같은 사실이라도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따라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30%의 실패할 확률이라고 말할 때와 70%의 성공 확률을 말할 때 느낌과 판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6. 추정과 예측에 따른 함정(estimating & forecasting traps)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예측에서 과도하게 확신하거나 너무 신중하거나 개인의 경험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이다. 추측할 때 전문가 수준이 아니지만 그 정확도를 과신하는 경향이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카이스트 EMBA 경영의사결정 수업은…
이 과목에서는 의사결정의 원리(Principle), 과정(Process), 각종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도구(Tools), 관련 소프트웨어의 활용, 실제 사례에 대한 적용 등을 통해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영자의 핵심 능력을 학습하게 된다. 또한 인간의 인지적 한계에 따른 의사결정의 오류를 이해함으로써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술적 접근 방법도 다룬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경영자로서 중요 의사결정 문제에 대한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목적이다.



안재현 교수는
[MBA 명강의 지상 중계] ‘좋은 결과’·‘옳은 의사결정’ 분리해 평가해야
서울대 산업공학 학사, 석사를 마치고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과학 박사과정에서 의사결정론을 전공했다. 현재 카이스트 경영대학에서 ‘뉴미디어 경영 및 IT/통신’,‘하아테크 마케팅 전략’,‘경영의사결정론’,‘시선추적 리서치’등의 수업을 하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