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불경기가 바꾼 소비 트렌드
다이소부터 메가커피까지 저가 매장으로 발길 이어져

[비즈니스 포커스]
 외국인들로 붐비는 다이소 명동역점.  사진=한국경제신문
외국인들로 붐비는 다이소 명동역점. 사진=한국경제신문
3월 23일 오후 8시께 들른 옥수역 3번 출구 앞에 위치한 다이소 매장.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일요일이라 지하철역 인근은 한산했으나 이곳 분위기는 달랐다. 매장 안에 들어서자 초등학생들부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들까지 내부는 쇼핑객들로 붐볐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가득 채워 계산대 앞에서 많은 사람이 줄 서 있었다. 한 가족 쇼핑객은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키고 필요한 물건들을 살 겸 이곳을 찾았다”며 “주방세제와 같은 생활용품을 비롯해 물건을 다섯 개 정도 샀는데도 총 가격은 2만원을 넘지 않았다”며 흡족해했다.

3월 24일 점심에 찾은 중림동 인근의 한 저가 커피숍은 식사 후 커피를 즐기려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곳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1600원. 최근 5000에 육박하는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가격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이곳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아낄 건 최대한 아껴보자는 생각에 식사 후 비용이 저렴한 저가 커피숍을 찾고 있다”고 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함에 따라 한 푼이라도 절약하는 소비 트렌드가 부상하면서 일명 ‘저가 매장’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생필품부터 기호식품, 의류까지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점포와 브랜드들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모습이다. 이렇게 급변한 소비 트렌드에 맞춰 기존 유통업체들도 큰 폭의 할인과 파격적인 가격의 PB 상품을 연이어 출시하는 등 ‘초저가 마케팅’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유통업계 신흥강자 된 다이소저가 매장 중 최근 가장 인기가 많은 대표적 점포로는 다이소를 꼽을 수 있다. 일명 ‘천원 숍’으로 불리는 다이소의 경우 계속되는 경기 불황으로 백화점 및 대형마트 등 주요 유통업체들이 실적 부진을 겪는 와중에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2년 2조원대였던 다이소의 매출은 지난해 4조원대로 급증했다. 다양한 저가 상품을 앞세워 소비자를 공략한 것이 비결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매출은 5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주로 생필품을 위주로 판매해왔던 다이소는 최근에는 건강기능식품, 화장품까지 판매를 시작했다. 특히 화장품 일부 제품의 경우 발매와 동시에 품귀 현상까지 빚을 정도로 인기다.
“커피값이라도 아껴야죠”...불황이 불러온 ‘초저가’ 전성시대
다이소를 찾는 이들이 늘자 쇼핑몰이나 마트 등도 모객을 위해 ‘러브콜’을 보낸다. 이렇게 대형 쇼핑몰이나 마트와 같은 오프라인 유통매장에 입점한 다이소 점포 수는 2020년 253개였는데 현재는 약 300개에 달한다다.
소비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외식업계를 관통하는 요즘 키워드도 ‘초저가’다. 최근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거리 곳곳마다 볼 수 있는 것이 일명 ‘1900원 맥줏집’이다. 고급 이자카야나 유흥주점 대신 가격이 싼 주점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이 점포들은 싼 가격으로 손님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 수익을 내겠다는 박리다매 전략을 앞세우고 있다.

초저가 주점이 인기를 끌며 다수의 프랜차이즈도 생겼다. 생마차, 간빠이 등이 맥주 한 잔에 1900원, 안주 한 접시에 1만원가량의 부담 없는 가격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상황이다.

한국인의 가장 좋아하는 기호식품이 된 커피도 저가 커피 돌풍이 거세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매일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침에 한 잔, 점심 식후에 한 잔 커피를 즐기는 이들을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스타벅스, 커피빈과 같은 커피숍들의 경우 최근 원두 가격이 급등하면서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약 5000원에 달한다. 하루에 1만원 이상을 커피값에 쓰는 게 부담스러워지자 2000원 미만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저가 커피숍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커피 시장도 대세는 초저가이런 추세에 힘입어 저가 커피 브랜드 가맹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 메가커피는 가맹점 3500호점을 돌파했다. 2015년 첫 출발한 메가커피는 5년 후인 2020년 1000호점을 돌파했다. 이후 코로나19가 터지고 경기가 악화하며 성장세가 가팔라졌다. 2022년 2000호점을 넘긴데 이어 2년 만인 2024년 3000호점을 돌파하는 등 빠르게 매장 수를 늘려가고 있다.
컴포즈커피도 현재 전국에 약 2700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더본코리아가 운영하는 빽다방은 지난해 말 기준 약 1700개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초저가 상품이 인기를 얻자 편의점 CU, GS25, 이마트 등 기존의 유통업체들도 커피나 간식 등 다양한 초저가 PB 상품을 연이어 선보이며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GS25와 같은 편의점들도 1000원 숙주나물 등과 같은 초특가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사진=GS25
GS25와 같은 편의점들도 1000원 숙주나물 등과 같은 초특가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사진=GS25
외식 시장에서는 고물가의 영향을 받으며 한물간 취급을 받던 가성비 식당들이 부활했다. 이랜드이츠가 운영하는 패밀리레스토랑 애슐리퀸즈가 대표적인 예다.
애슐리퀸즈는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애슐리퀸즈는 한때 사라질 위기에 놓였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03개의 매장을 운영했는데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식을 꺼리는 소비자가 늘어나며 2022년에는 매장 수를 59개로 대폭 축소했다. 이랬던 애슐리퀸즈가 부활하게 된 건 고물가 현상이 주효했다.

다양한 음식들을 합리적인 값에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다시 줄 서는 식당이 됐다. 1만~2만원대에 다양한 메뉴를 마음껏 즐길 수 있어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게 이랜드이츠의 설명이다.
그 결과 애슐리퀸즈는 지난해 매출 4000억원을 돌파했다. 전년(2023년 2360억원) 대비 70% 증가한 수치이자 사상 최고 실적이다.

패션 시장에서는 한동안 외면받았던 SPA 브랜드 인기가 다시 고공행진 중이다. 경기 불황으로 씀씀이를 최소화하는 소비자들이 다시 SPA 브랜드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의류 소비 지표는 지속해서 악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의류비 지출 전망 소비자심리지수(CSI)는 92로 전년 동월 대비 4포인트 떨어졌다. 지수가 100 미만이면 의류 지출을 줄이겠다는 소비자가 늘리겠다는 소비자보다 많다는 의미다. 해당 지수는 지난해 내내 100을 밑돌았다.

그런데도 SPA 브랜드들의 실적은 고공행진 중이다. 유니클로를 전개하는 에프알엘코리아의 매출은 지난해 1조1418억원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17.6% 증가하며 매출 1조원 클럽에 재입성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294억원으로 무려 38.9% 늘었다.
무신사의 SPA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도 매출이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신사는 해당 브랜드의 매출을 별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 단,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감사보고서의 자체 브랜드 매출로 이를 유추할 수 있는데 이 수치는 매년 2배 이상 증가하는 추세다. 무신사 스탠다드가 큰 인기를 얻자 무신사도 계속해서 이 브랜드의 오프라인 매장 문을 열며 매출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올해도 물가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란 시각이 많다. 국내외 정세 불안으로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어서다. 김정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들의 특성상 원·달러 환율 급등은 가격 상승의 요인이 된다”며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초저가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계속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