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장’테슬라 프레몬트 공장을 가다

지난 9월 22일 실리콘밸리로 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렌터카를 몰고 101번고속도로에 올라 남쪽으로길을 잡았다. 휴일이라 한적한 도로를 느긋하게 달리는데 낯선 디자인의 차가 빠르게옆을스쳐갔다.유심히보니사진으로본테슬라의 모델S였다. 차체가 생각보다 크고육중했다. 전기차라 별다른 엔진음도 없었다. 조용히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국내 최초 테슬라 독점 취재] 전기차 혁명의 메카… 상상을 현실로
팰로앨토시내에들어서면서모델S가더자주 눈에 띄었다. 현지인들 사이에선“모델S가 혼다 시빅보다 더 흔하다”는 말이 있을정도라고 했다. 작년 7월 출시 이후 미국인을 사로잡은 모델S의 인기가 실감났다.

테슬라 모델S는 기본 가격이 8만2400달러(85kWh 퍼포먼스 모델 기준, 연방 세제혜택 포함)에 달하는 최고급 차종이다. 가장 싼 모델도 6만2400달러(60kWh 모델)다. 이 비싼 차가 올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1만50대가 판매됐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BMW 7 시리즈, 렉서스 LS, 아우디 A8, 포르쉐 파나메라가 포함되는 대형럭셔리 카테고리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신기술을 선호하고 소득수준이 높은 실리콘밸리는 모델S가 특히 잘 팔리는 지역이다. 토드 브루슈웨인 테슬라 멘로파크전시장 선임 판매원은“실리콘밸리 기업가들에게 모델S가 유행”이라며“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얼마 전 구매 예약을 했다”고 말했다.

모델S의 매력은‘전기차 답지 않은’강력한성능과긴주행거리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부실한 전동 카트를 떠올리는 기존 전기차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깬 것이다. 모델S는최고 속도가 시속 209km에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97km(60mph)에 도달하는 시간도 4.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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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능 스포츠카 못지않은 성능이다. 한 번 충전해 갈수 있는 거리도 기존 전기차의 3배가 넘는427km다.이정도면중간에충전없이서울에서부산까지주파할수있다.올초까다롭기로 유명한 컨슈머리포트 품질 평가에서 100점만점에99점으로역대최고점을받고8월 미 고속도로교통안전관리국(NHTSA)충돌 시험에서 5점만점을 기록하면서 모델S의 인기는 로켓을 탄 듯 치솟았다.

테슬라 생산 기지가 있는 프레몬트는 샌프란시스코만 동쪽 연안 지역이다. 팰로앨토와 만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지만 차로20분이면 닿는 가까운 거리다. 모델S를 전량 생산하는 이 공장은 880번 니미츠 고속도로와 철로를 양쪽에 낀‘프레몬트 동부공업지역’에 자리해 있다. 테슬라는 팰로앨토에 본사 건물이 따로 있지만 핵심 부서가 대부분 공장에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이사실상 본사 역할을 한다.프레몬트 공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압도적인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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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10년째인 신생 자동차 회사의 소유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공장 넓이는 200에이커로, 미식 축구장 88개가 들어갈 수 있다. 공장 한쪽 끝에서 다른 쪽까지 거리가 1.4km나 된다. 그안에 최종 조립 라인과 도색, 강판 스탬핑,플라스틱 웰딩 등 5개 공장이 들어서 있다.이뿐만이 아니다. 내부에 자체 발전소와주행 시험장도 있다.2010년 이 놀라운 공장을 손에 넣은 것은 테슬라에큰행운이었다. 테슬라는 모델S를 만들기 위해 생산 공장이 꼭 필요한 처지였다. 교류 시스템을 발명한 크로아티아출신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따2003년창업한 테슬라는 고가 하이엔드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웠다. 저렴한대중차 개발에 비중을 둔 다른 전기차 업체들과 정반대 선택을 한 것이다.

테슬라의 첫작품은 창업5년만에 선보인2인승 스포츠카 로드스터였다. 영국 자동차 회사 로터스의 모델을 기반으로 한 이 제품은 전량 아웃소싱으로 생산했다. 최종 조립은 멘로파크 전시장 뒤쪽의 차고에서한대씩 이뤄졌다. 대당 1억원이 넘는 로드스터는 유명연예인들이 타면서 테슬라의 이름을 알리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다음 단계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와 경쟁할 수 있는모델S 생산이었다. 로드스터로 기술력은이미 입증했다. 남은 문제는 공장 확보였다. 자금이 쪼들리는 신생 업체에는 쉽지않는 과제였다.


축구장 88개 규모에‘압도’
프레몬트 공장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1960년 제너럴모터스(GM)가 처음 이곳에 공장을 지었다. 1982년 구조조정으로 공장 문을 닫았다. 2년 후 GM과 도요타가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공장을 다시 열었다. 일본 제조업이 미국을 위협하며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GM은 도요타의 제조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 도요타는 이곳을 북미 첫제조 기지로 활용했다. GM과 도요타의 합작공장은 2009년 GM이 파산 선언을 하면서 끝이 났다. 혼자 공장을 유지하던 도요타도 이듬해 대량 리콜 사태로 위기에 빠지면서 철수를 고민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CEO는 이 공장을 탐냈지만 가격이 무려10억 달러에 달했다.

2010년 3월 그는 도요타 측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사장이 머스크 CEO의 극비 공장 투어를허가했다는 소식이었다. 도요타는 테슬라No.934 2013 10 30 49가 공장을 사는 데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도요타는 리콜 사태 여파로 한 달안에 생산을 중단할 계획이었다. 200에이커에 달하는 초대형 공장에 관심이 있는사람은 많지 않았다. 언론을 피해 공장을 찾은 머스크 CEO는 우선 공장의 스케일에놀랐다. 수천 명의 직원이 북적대고 도요타코롤라 수백 대가 조립 라인에서 쏟아져나왔다. 그는 흥분을 억눌렀다.

바로 그가 꿈꾸던 공장이었다. 머스크 CEO는 동원할수 있는 최대한의 자금을 모아 4200만 달러를 제안했다. 한 달 후 놀랍게도 도요타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모델S가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이제 이넓은 공장도 포화 상태다. 테슬라는 공장확장을 준비하기 위해 인근의 땅 31에이커를 추가로 사들였다.프레몬트 공장 내부는 테슬라의 상징 색인 붉은색과 흰색으로 모던하게 꾸며져 있다. 탁 트인 공간과 끝이 보이지 않는 생산라인, 부품 운반에서 조립까지 대부분을처리하는 로봇들, 티끌 하나 없을 것 같은 깔끔한 바닥 등은 영화에나 나올법한‘미래공장’을 떠올리게 했다.

테슬라는 이 공장의 생산성을 끌어 올리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매일 늘어나는 주문을 공급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에 매주 400대에서 500대로 생산량을늘렸다. 9월에는 주당 600대 고지에 도달했다. 테슬라의 단기 목표는이수치를 800대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스스로 매주 100시간씩 일하는 일중독자라고 부르는 머스크 CEO는 직설적인 언행으로 직원들을 매섭게 몰아붙이지만 때로는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도 서슴지 않는다. 생산성 목표에 도달하면 아예 1주일간공장 문을 닫고 전 직원에게 휴가를 준다.

차를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가는 상황에서돈키호테 같은 짓으로 비칠 수도 있다. 다른 자동차 회사라면 24시간 공장을 돌려도시원치 않을 판이기 때문이다. 테슬라는주말에도 공장을 가동하지 않는다. 공장 입구 벽에는 머스크 CEO의 강한 자부심을 담은 다음 같은 글귀가 크게인쇄 돼 있다.

“모델S에서 우리의 목표는 첫 번째‘진정한’전기차를 창조하는 것이다. 여기서내가 말하는 것은 모든 부품을 근본적인기술적 변화 속에서 완전히 새롭게 검토하고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설계, 제작한 최초의 전기차다. 그 결과물은 사람들이 상상 하는 자동차의 모습을 뛰어넘는 것이다.”

조립 라인 한쪽에는 현장 사무실이 있다.
칸막이도 없이 책상 여러 개가 모여 있어얼 핏 사무실인지 잘 구분이 안 된다. 이 가운데 맨 앞쪽 책상이 머스크 CEO의 자리다. 멋지게 꾸며진 집무실은커녕 명패조차 찾아볼 수 없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전화기 한 대와 물 컵이 전부다. 사무동이 따로 있지만 머스크 CEO는 항상 엔지니어들과 어울리며이자리를지킨다.사무동모습도별 반 다르지 않다. 가로 100m, 세로 30m쯤 되는 정사각형 공간에 책상 수백 개가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재무팀·인사팀·홍보팀·구매팀·마케팅팀 등 거의 모든 부서가 이곳에 모여 있다. 간부들을 위한 특별 대우는 없다. 모든 직원이 똑같이 책상 하나, 노트북 한 대다. 부사장급들도 말단 직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스스럼없이묻고 논쟁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자주 볼수 있는 역동적인 젊은 벤처의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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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는 작년까지만 해도 전 직원에게스톡옵션을 나눠 줬다. 올 들어 주가가 급등해 모두 큰돈을 벌었다. 올 초 35달러였던테슬라주가는9월말193달러까지솟구쳤다. 스톡옵션의 가치가 5배 이상 뛴 것이다. 거의 모든 직원이 연봉과 별개로 최소수억 원대의 부를 손에 넣었다. 직원들이 각자 회사의 주인인 것처럼 일에 몰두하는이유다. 테슬라는 스톡옵션을 통해 자동차
대기업과 실리콘밸리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 모았다. 구글이나 애플 출신 직원이 적지 않다. 미국 서부 명문대인 UC버클리와 스탠퍼드대가 가깝다 보니 엔지니어도 대부분이 이곳 출신이다.


테슬라 전 직원 스톡옵션으로‘갑부’돼
테슬라는 무섭게 성장하는 신생 기업이다.
아직은 시스템이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체계화보다 실행이 우선이다. 많은자동차 회사가 도요타식 적기 생산 방식(JIT)을 도입해 부품 재고를 최소화하지만 테슬라는 모든 부품을 직접 관리한다. 그러다 보니 거대한 공장의 절반 이상이 부품창고로 쓰인다. 기존 자동차 대기업들은낮은 마진율을 채우기 위해 비용 절감과 최적화에 사활을 걸지만 테슬라는 아직 느긋하다. 모델S의 마진율이 25%에 달하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8월 말 네덜란드 남부 틸부르흐에 첫 해외 조립 공장을 준공했다. 프레몬트 공장에서 완성차를 해체해 보내면 이를 재조립해 유럽 각국에 공급한다. 틸부르흐 공장에서 조립된 모델S는 가장 먼저 노르웨이로 보내졌다. 테슬라가첫번째 해외공략지로 선택한 곳이다. 노르웨이는 국민 소득이 높고 친환경차 지원 정책이잘정비 돼 있다. 모델S는 노르웨이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9월에만 616대가 판매돼 단일 모델로는 판매량 1위를 차지 했다. 테슬라는
독일과 프랑스등다른 유럽 국가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공장 한쪽에선 틸부르흐 공장으로 내는 부품 포장 작업이 한창이다.

테슬라가 공을 들이고 있는 또 다른 곳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이다. 베이징 에 전시장을 열기 위해 막바지 작업에 박차 를 가하고 있다. 테슬라는 중국 현지에 공장 설립도 검토 중이다.
[국내 최초 테슬라 독점 취재] 전기차 혁명의 메카… 상상을 현실로
프레몬트 공장은 복층 구조로 지어졌다.
1층에 부품 가공과 조립 라인이 있고 2층은파워트레인 라인이 배치돼 있다. 모델S의
심장인 전기 모터는 매우 단순한 구조다.
1887년 니콜라 테슬라가 교류 유도 모터를 발명한 이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전동기를 장착한 자동차는 초기 가속력이 탁월하다. 연료의 폭발력으로 4행정 실린더를 움직이는 내연기관은 정지 상태에서속도를내는게쉽지않다.엔지니어들은 변속기를 사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출발 초기 엔진 파워가 약할때저단 기어를 넣어 회전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반면 전동기는 전기가 공급되는 즉시 최고의 힘으로 움직인다.모델S가4.2초만에정지상태에서시속 97km에 도달하는 비결이다.

전기차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배터리다. 전기차 기술의 모든 게 배터리에 집약돼 있다. 전기차는 워낙 구조가간단해 업체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배터리뿐이다. 모델S 바닥에는 543kg(1000파운드)에 달하는 리튬이온배터리 팩이 깔려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기존 전기차주행거리 한계를 뛰어넘은 테슬라의 배터리 기술을 궁금해 한다. 업계의 예상과 달리 테슬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범용 배터리를 사용한다. 자신만의 특별한 비밀 배터리를 숨겨둔 게 아니다. 모델S에 장착된 것은 1970년대 발명된 18650 배터리다. 직경이 18mm, 길이가 650mm인 원통 모양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트북 등 소형 전자 제품에 많이 사용되는 범용 제품이다.

테슬라 배터리 엔지니어 출신인 포레스트 노스 리카고 최고운영책임자(COO)는 “18650 배터리는 가장 저렴하고 안정성이 뛰어난 배터리”라며“대부분 전기차 업체가 고용량 폴리머형을 채택했지만 테슬라는 18650 배터리의 잠재력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모델S, 벤츠·BMW보다 못할 게 뭔가?
모델S 배터리 팩에는 원통형 18650 배터리 6000개 이상이 병렬과 직렬 방식으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여기서 400km가 넘는 주행거리가 나온다. 6000개가 넘는 배터리는 재료의 특성상 저마다 용량과 온도가 다르다. 이들의 안전성과 일치성을 유지하는 완벽한 전자 모니터링과 제어 시스템이 핵심이다. 테슬라 배터리 팩에는 혁신적인 냉각시스템도장착돼있다.수많은센서가설치돼충돌이나화재가발생하면1000분의1초 내에 배터리 연결이 분리된다.

모델S를 시승하기 위해 멘로파크에 있는 테슬라 전시장을 찾았다. 최고급 사양인 85kWh 퍼포먼스 모델을 선택했다. 운전석에 앉자 17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차량 통제, 인터넷 검색까지 가능한 만능 도우미다. 차량 서스펜션과 선루프 조작도 터치 한 번으로 가능하다. 구조가 단순하다 보니 공간에 여유가 있다. 트렁크에는 어린이용 좌석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다. 기존 자동차에선 엔진이 버티고 있어야 할 자리에 ‘트렁크’가 있다. 앞쪽에 있는 트렁크라는 의미다. 전기차의 장점을 한눈에 보여주는 영리한 전략이다.

승차감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BMW 7 시리즈와 유사하다. 대형 세단의 안락함을 갖췄다. 가속과 제어, 제동 성능은 모든 면에서 놀라운 경험이었다. 가속페달을 밟자 묵직한 차량이 총알처럼 튀어나갔다전시장에서 만난 테드 케브라니언 아바고테크놀로지 이사는 모델S의 매력으로공기 오염이 없다는 것과 뛰어난 성능을 꼽았다. 고성능 차 운전을 즐긴다는 그는“차가격은모델S나벤츠, BMW가 모두8만달러대로 비슷하다”며“하지만 벤츠와 BMW는 매년 기름값으로 2000달러, 유지비로 2000달러가 들어가지만 모델S는 그런 비용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넓은 내부 공간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마지막으로그가 덧붙인 말은 의외였다.

“엘론 머스크 CEO는 비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직한 사람입니다. 몇 년 전 테슬라는 10년 기한으로 정부에서 500만 달러를 빌렸어요. 회사 실적이 좋아지고 주가가 오르자 그는 가장 먼저 빚을 상환했어요. 미국의 많은 기업들은 정부 대출이 공짜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머스크 CEO는 10년이 되기 전에 갚았어요. 매우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일이죠.”
쇼핑몰에 들어선 테슬라 샌호세 전시장과 모델S 시승 장면. 멘로파크 전시장에 전시된 모델S 차체(위부터 시계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