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스마트폰 다음은 전기차 혁명

지난 9월 25일 낮 12시 팰로앨토 시청 광장은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로변에는 다양한 전기차 모델들이 시승을 위해 대기 중이었다. 테슬라 모델S는 물론 닛산 리프와 도요타 SUV RAV4도 눈에 띄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 팰로앨토와 샌호세로 이어지는 1주일간의 ‘EV 위크(Week) 2013’ 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국내 최초 테슬라 독점 취재] ‘전기차 중심지’ 노리는 실리콘밸리
연단에 오른 그레고리 샤프 팰로앨토 시장은 “팰로앨토에 전기차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환경보호와 기후변화를 늦추는데 팰로앨토가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샤프 시장은 시민들의 전기차 사용을 촉진해 10년 내에 탄소 배출을 60% 저감하겠다고 선언했다.

테슬라 본사가 있는 팰로앨토는 미국 내에서도 전기차 소유자가 가장 많은 지역 중하나다. 팰로앨토 의회는 며칠 전 전기 충전기 설치를 쉽게 하는 획기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전국에서 최초로 새집을 지을 때 전기차 충전기용 배선설치를 의무화한 것이다. 배선은 충전기 설치 비용을 끌어올리는 주범으로 꼽힌다. 기존 주택에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배선을 위해 콘크리트 바닥을 몇 m씩 파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되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앞으로 충전기용 배선을 미리 해 놓으면 이런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다. 팰로앨토 시의회는 현재 1000~2000달러에 달하는 충전기 설치비용을 200달러 안팎으로 대폭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와 함께 모든 호텔에 전기차 충전기 설치도 의무화했다.

실리콘밸리를 전기차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개별 지자체 차원을 넘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09년 샌프란시스코 시장과 샌호세 시장, 오클랜드 시장이 주축이 돼 창설한 베이에리어 기후협력(BACC)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영리 공공 파트너십 프로젝트인 BACC에는 이 지역 11개 지자체와 실리콘밸리 리더십 그룹, 록펠러형제재단, 솔라시티, PG&E 등 민간 기업들이 폭넓게 참여하고 있다.


지방정부, 전기차 인프라 확충에 ‘올인’
최근 이 단체는 공용차 시범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자체나 공공 기관에서 사용하는 업무용 공용차를 전기차로 대체하는 사업이다. 연방 정부 지원으로 500만 달러를 투입해 전기차 90대와 충전소 90곳을 설치하는 야심찬 사업이 진행 중이다. 클레어 바턴 BACC 프로그램 매니저는 “내년 1~2월 입찰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BACC가 공용차에 관심을 갖는 것은 파급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공용차는 지정된 관리자가 있고 업무 시간 이후에는 한곳에 모아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충전소 설치가 쉬운 환경이다. 예측 가능한 경로를 주기적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차 특성에도 잘 들어맞는다. 바턴 매니저는 “90대의 전기차가 운행되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용 절감, 연료비 절감, 온실가스 배출 저감 등 전기차 도입 효과를 수년간 세밀하게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샌호세 시는 이 프로젝트와 별개로 리스 방식으로 미쓰비시의 전기차 마이브 38대를 이미 도입했다. 바턴 매니저는 “리스 모델은 매우 주목할 만한 시도”라며 “이를 통해 초기 비용 부담과 리스크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전기차와 관련된 흥분할만한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서비스 기업들이 전기차 충전소에 점점 더 깊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이들은 200개 직류 고속 충전소와 1만 개의 레벨2 선로를 만드는 계획을 내놓았다. 바턴 매니저는 “계획대로 된다면 엄청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만 개에 달하는 충전기용 선로는 충전 인프라의 전체 지형도를 바꿔 놓을 만한 사건이라는 설명이다. 보통 1개 배선에 충전 포트 4개를 달 수 있다. 1만 개 배선이면 4만 개의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1년 반 만에 충전소 3배 급증해
바턴 매니저는 단독주택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의 전기차 접근성 개선을 다음 과제로 꼽았다. 전기차 구매 능력과 의사는 있지만 아파트나 콘도 같은 공용 주택에 살고 있다면 충전기 설치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최근 캘리포니아 주정부 차원에서 공용 주택 주차 공간의 10%에 충전소 설치가 가능한 배선을 의무화하는 법을 제정해 일단 해결의 실마리는 마련된 상황이다. 이 법안은 특히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전체 인구 3분의 2가 공용 주택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고 전기차에도 우호적이다.

전기차가 많아지고 관련 기업이 늘어나면서 인력 수급도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노동부에서 그린 일자리 산업이 다른 모든 산업을 합한 것보다 일자리가 더 빨리 증가했다는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분야는 수요와 노동자들의 기술 숙련도 사이에 상당한 갭이 있다고 지적한다. BACC는 전기차 클러스트의 인력 실태를 조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바턴 매니저는 “전기차의 성공을 위해서도 인력 육성이 필수”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 테슬라 독점 취재] ‘전기차 중심지’ 노리는 실리콘밸리
미국 내 전기차 충전소는 매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작년 초 6310개였던 충전소가 지난 5월 2만138개로 3배 이상 급증했다. 2007년 설립된 차지포인트는 전기차 충전 업계의 최대 기업이다. 2만 개가 넘는 충전소 중 65%가 차지포인트 충전소다. 이 회사는 충전기 하드웨어는 물론 결제 등 운영·관리 시스템도 함께 판매한다. 디미트리오스 파파도고나스 차지포인트 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기업 고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을 위해 회사에 충전소를 설치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주된 타깃이다. 파파도고나스 부사장은 “재능 있는 인재를 끌어들이고 이들을 유지하는데 전기차 충전소가 도움이 된다고 믿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내 무료 충전소 설치는 직원들에게 임금을 평균 5% 올려주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 더구나 전기차는 1인 탑승 시에도 고속도로 ‘다인승 차량(HOV)’ 전용 차로를 이용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면 가정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더 늘어난다. 타깃이나 세이프웨이 같은 상업 시설도 전기차 충전소 설치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 충전 고객이 가솔린차 고객보다 매장에 4배 더 오래 머무르고 4배 더 돈을 쓴다는 통계가 있다.

현재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에 대략 1만 대 정도의 전기차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지역의 전기차 충전소 설치율은 12% 안팎이다. 전기차 100대당 충전소가 12개 있다는 뜻이다. 파파도고나스 부사장은 “설치율은 평균 30~35%가 적정한 수준”이라며 “전기차 충전소를 계속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팰로앨토·샌호세·캠벨(미국)=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