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CEO 동행 취재

‘슈렉’, ‘쿵푸팬더’ 등 애니메이션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제프리 카젠버그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의 창조 경제에 대해 훈수를 뒀다. 지난 10월 17일 CJ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포럼 참석 차 3박 4일 일정으로 내한한 카젠버그 CEO는 박근혜 대통령, 국내 애니메이션 꿈나무, 봉준호 감독,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 업계 관계자 등과 만나 창조 경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는 문화 콘텐츠를 통한 창조 경제 구현 방안에 대해 “새로운 것에 대한 리스크 감수 없이는 대작도 없다”며 창조를 위한 보다 과감한 도전을 주문했다. 한경비즈니스는 카젠버그 CEO의 방한 일정을 함께하며 현장 취재했다.
<YONHAP PHOTO-0470> 드림웍스 대표 만난 박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CEO와 영화 '쿵후팬더' 감독 제니퍼 여를 접견, 악수하고 있다. 2013.10.18

    dohh@yna.co.kr/2013-10-18 10:27:46/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드림웍스 대표 만난 박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CEO와 영화 '쿵후팬더' 감독 제니퍼 여를 접견, 악수하고 있다. 2013.10.18 dohh@yna.co.kr/2013-10-18 10:27:46/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 10월 18일 한국을 방문한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CEO의 첫 일정은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하는 것이었다. 카젠버그 CEO는 이번 내한 일정에 한국계 제니퍼 여 넬슨(한국명 여인영) ‘쿵푸팬더2’ 감독과 동행했다. 드림웍스 측을 맞은 박 대통령은 특히 여 감독을 반갑게 맞으며 “정말 자랑스럽고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여 감독님 정말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드림웍스는 사업 다각화를 위해 TV 애니메이션 사업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경험과 기술력을 갖춘 우리나라 업체들과 협력하게 되면 세계시장에 이른 시간에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카젠버그 CEO는 앞으로 제작할 작품의 제작이 한국 관련 업체들과 진행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넷플릭스(미국 비디오 스트리밍 업체)와 연계하기 위한 첫 시리즈를 한국에서 제작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이는 TV 제작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계약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의 창조 경제 추진 전략을 카젠버그 CEO에게 설명한 뒤 “컴퓨터 그래픽과 전통적인 동화 스토리 같은 것을 접목해 ‘쿵푸팬더’나 아주 기가 막힌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은 기술과 문화의 융합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창조 경제를 추진할 때 정부나 기업이 드림웍스와 협력할 수 있는 좋은 방안도 많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림사 무술이라는 동양적 소재를 글로벌 콘텐츠로 만들어 냈는데 ‘호동왕자’라든가 한국적 소재도 발굴해 드림웍스의 기획력과 함께 힘을 합해 만든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의견을 밝혔다.

카젠버그 CEO는 “(박 대통령이)우리의 제작 시설을 돌아보면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드림웍스 본사 방문을 제안하자 박 대통령도 “꼭 가보고 싶다”고 답했다.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환담을 가진 카젠버그 CEO는 국내 애니메이션 창작 꿈나무들과 봉준호 감독을 만나기 위해 세종대로 향했다.

이날 오후 세종대에서 카젠버그 CEO와 여 감독은 우선 국내 학생들의 애니메이션 작품 4편과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4편의 애니메이션에 대해 카젠버그 CEO는 스토리에 주로 집중했다. 학생들의 독특한 소재와 뭉클한 감동의 스토리에 찬사를 보내며 그와 드림웍스팀이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과 중요한 점을 설명했다.
[스페셜 인터뷰] “리스크 감수 없이는 대작도 없다 ”
“좋은 스토리를 찾는 게 가장 힘든 작업입니다. 많은 직원들과 수없이 많은 논의를 거치죠. 사실 애니메이션 한 편을 제작하는 3~5년 동안 스토리를 수없이 수정하며 작품이 나와요.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개인적인 이야기이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리고 미래 애니메이션 제작자, 더 나아가 드림웍스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젊은 학생들을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카젠버그 CEO 역시 파라마운트사에서 제작 보조로 일을 시작해 스크립트 복사 등 허드렛일을 하며 꿈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을 향해 “누구나 처음 시작할 때는 초보부터 시작한다”며 “한국에서건 할리우드에서건 재능과 열정이 있으면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제작이라는 것이 수년간 많은 작업이 투입돼야 하는 힘든 일이지만 작품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가자’
카젠버그 CEO는 CJ 크리에이티브 포럼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나 ‘창조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자유로운 토론을 가졌다. 카젠버그 CEO와 봉 감독은 모두 업계 최고 실력자로, 기존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거장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스토리텔링, 제작 기술과 콘텐츠 구성, 제작 과정 및 뒷이야기, 꿈과 신념 등에 대해 기탄없는 대화가 오고 갈 수 있었다.

월트디즈니란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드림웍스를 창업한 후 디즈니와 전혀 다른 작품을 내놓게 된 배경을 묻는 질문에 카젠버그 CEO는 이같이 말했다.

“드림웍스를 시작할 때 100% 갖고 있던 신념이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가자’였어요. 우리만의 가치, 오리지널리티와 독창성을 추구했죠. 디즈니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디즈니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다른 형태의 작품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이 아닌 세련된 코미디를 만들기로 했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연구·개발이 있었어요. ‘앤츠’, ‘치킨런’에 이어 2001년 ‘슈렉’을 만들고 나서야 우리만의 갈 길을 찾았죠.”
[스페셜 인터뷰] “리스크 감수 없이는 대작도 없다 ”
카젠버그 CEO가 찾은 유니크는 바로 이것이었다. 기존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를 주관객으로 삼고 성인들도 갖고 있는 동심을 추가로 겨냥했다. 하지만 드림웍스는 정반대였다. 주 타깃은 성인으로 삼고 어른의 세계를 알고 싶은 아이들을 덤으로 삼았다. 그래서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내세운 ‘슈렉’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거나 대화에서도 성인식 조크가 많이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에 성인의 코드를 삽입한 시도는 리스크가 아주 큰 모험일 수도 있었다. 이에 대해 카젠버그 CEO는 할리우드에서는 흥행 공식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하며 설명했다.

“이제까지 할리우드 대작들은 독특한 이야기가 특징이에요. 독창적인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물론 위험을 감수해야 하죠. 이제까지 했던 패턴이 아닐 때 리스크는 곧 실패로 이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스토리텔링의 능력과 가능성을 믿고 갔죠.”

카젠버그 CEO는 드림웍스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팀 운영 노하우도 밝혔다. 세계 최고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기 위해 애니메이션에 목숨을 건 2500명 직원들의 열정과 노고에 대해 말했다. 그에 따르면 ‘쿵푸팬더’ 한 작품은 500만 프레임으로 구성돼 있는데, 콘티·조명·스토리 등 12개 부서를 거쳐야 겨우 하나의 프레임이 완성된다. 한 프레임이 완성돼도 많게는 100번의 수정 과정을 거친다. 이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조율하고 관리하는 것이 노하우다. 그는 “드림웍스는 단순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아니라 기술 회사”라며 “스토리텔링도 기술 없이는 생동감 있게 전달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드림웍스 작품이 완벽성을 갖출 수 있는 노하우도 공개했다. 드림웍스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끊임없이 스토리를 수정한다. 우선 스케치로만 만들어진 작품을 수백 명의 직원이 본다. 성우도 임시로 목소리를 입힌다. 초본을 본 피드백을 모아 미리 관객과 상호작용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살리고 효과가 약한 장면은 과감히 버린다. 문제를 수정하고 다시 가편집본을 내부에서 상영해 의견을 모은다. 마치 연극 무대가 공연수를 반복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완성도 위해 2500명의 열정 투입
카젠버그 CEO는 유명 배우 중 성우로 누구를 섭외하느냐에 따라 작품 자체를 바꾼 사례도 밝혔다. 당시는 ‘슈렉’ 제작의 3분의 1을 마친 상태였다. 피오나 공주 목소리를 맡은 카메론 디아즈, 동키를 맡은 에디 머피가 예상외로 맛을 살린 데 비해 정작 주인공 슈렉의 목소리 연기는 밋밋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슈렉 목소리 연기를 맡은 마이크 마이어스가 재미를 더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억양을 입히기로 하고 그때까지 제작한 것을 모두 버린 후 새로 더빙 작업을 시작한 일화가 있다.

이렇게 길게는 5년간 공을 들여 만들어낸 드림웍스의 작품 19편은 거의 모두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카젠버그 CEO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북돋기 위한 기업 문화도 소개했다. 약 20년 전 실리콘밸리도 없었던 때 카젠버그 CEO는 최고의 예술가들이 마음껏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작업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이 장소에서 이야기꾼과 예술가들이 세상에 없던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녹음과 여유 있는 분수가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들었다. 실제로 드림웍스 제작 스튜디오는 한 설문 조사에서 미국 내 좋은 직장 12위에 올랐다는 점을 카젠버그 CEO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애니메이션의 장면과 음악 등 모든 요소는 누군가의 상상력·꿈·창의성의 표출로 만들어져요. 그래서 그들의 꿈을 실현해 주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이것은 우리의 자존심이죠.”

그리고 이날 객석을 가득 채운 애니메이션 학도들에게 ‘바로 지금’이 애니메이션 전성기라는 점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꿈을 쫓아갈 것을 주문했다. 그는 10년 전 전 세계 영화 순위를 보면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애니메이션은 한 편밖에 없었지만 최근 많게는 5편을 차지하고 있다며 “TV 시리즈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 엄청난 기회의 시기”라고 밝혔다. 그리고 ‘기술과 장비가 정말 좋아져 자본이 많지 않아도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시대’라고 제의했다. 그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업계가 서서히 증폭되는 장점을 갖고 있고 이미 예술의 경지에 오른 제작사가 많은 점을 높이 샀다. 디지털 강국 한국은 스토리 발굴, 강화를 통해 미래 애니메이션 강국으로서의 잠재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CEO


뉴욕대를 중퇴하고 파라마운트에서 제작 보조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파라마운트에서 제작 담당 사장으로 승진한 후 1984년 34세의 나이에 월트디즈니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월트디즈니의 강점인 스토리에 최신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입혀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언 킹’ 등을 제작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 애니메이션 흥행 신화를 써 갔다. 이후 1994년 드림웍스 SKG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게펜 레코드사의 데이비드 게펜 회장과 공동 설립해 첫 작품인 ‘슈렉’으로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뛰어넘는 대박을 기록했다. 디즈니에서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면 드림웍스에서는 자유로운 표현력과 발상의 전환으로 성인용, 가족 관객을 겨냥한 애니메이션 시대를 열었다. ‘쿵푸팬더’ 시리즈, 애니메이션 최초 3D로 ‘몬스터vs에일리언’을 제작했고 이후 모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3D로 제작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1994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게펜 레코드사의 게펜 회장과 카젠버그 CEO가 공동 창업한 ‘드림웍스 SKG’에서 2004년 분사했다. 이후 ‘슈렉’ 시리즈, ‘쿵푸팬더’ 시리즈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역대 전 세계 흥행 극장용 애니메이션 ‘톱 30’ 가운데 12편을 제작했다. 세계 최초의 풀 3D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전통적 애니메이션의 틀을 탈피해 기술(컴퓨터 그래픽)과 스토리(애니메이션)의 융합을 통해 미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재도약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