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진미(山海珍味)의 역설

세계 3대 음식은 캐비아(caviar: 철갑상어 알), 푸아그라(foie gras: 거위 간), 트뤼프(tuber aestivum: 송로버섯요리)로 알려져 있다. 세계 3대 요리 국가는 중국·프랑스·터키가 꼽힌다. 중국인들은 하늘을 나는 것 가운데 비행기, 다리 네 개 달린 것 가운데 책상 빼곤 먹지 않는 게 없다는 농담조의 말을 할 만큼 엄청나게 다양한 음식을 자랑한다. 음식의 종류도 많고 먹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일상적 재료는 3000종류쯤 되고 총 재료는 무려 1만 가지 이상이라니, 가히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음식 문화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조리 방법도 다양하고 조미료 또한 거의 100여 가지에 달한다.
[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고난과 기근이 빚어낸 세계 3대 음식
독일의 음식 문화를 비웃은 프랑스인들
프랑스도 음식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하는 나라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음식점이 가장 많은 게 프랑스 음식점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불쌍하게 여기는 민족이 독일인이라는 것도 그들이 서로 앙숙으로 싸우며 지내 온 과거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나라의 음식 문화 차이에서 연유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부유한 토지와 자원, 그리고 문화도 발달해 그곳에서 음식이 발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터키 음식은 낯설었다. 그러나 최근 터키 음식점들이 점차 늘어나고 터키 여행객들이 증가하면서 터키 음식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음식을 세계 3대 주요 음식 중 하나라고 자랑한다. 무엇보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의 교량 역할을 하고 있고 이집트 등 아프리카와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 3대륙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융해된 곳이다. 이에 따라 음식 또한 세 대륙에서 발전한 것들이 집산되는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특색의 음식들이 발달했다. 오스만제국이 600여 년 동안 엄청나게 큰 영토를 통치하면서 유럽·페르시아·발칸·북부아프리카의 다양한 음식들이 터키에서 발전했다. 그래서 흔히 터키 음식은 조화와 다양성이 특징이라고 평가한다. 삼면이 바다와 접해 있어 다양한 해산물 요리를 자랑한다.

위 세 나라에서 보듯이 음식은 분명 국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 풍부한 산물이 어우러진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강력한 왕권이 일찍부터 자리 잡은 곳이어서 음식의 다양함과 풍요로움이 발전할 수 있었다.

산해진미는 산과 바다에서 나오는 온갖 재료로 만든 진기한 음식 혹은 잘 차린 풍성한 음식을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온갖 귀한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을 지칭한다.

당(唐)나라 자연파의 대표적 시인이자 특이하게도 현종(玄宗)의 경호 책임자이도 했던 위응물(韋應物, 737~804년)은 ‘장안도시(長安道詩)’에서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긴다(民以食爲天)”며 중국인들이 먹는 것을 즐기고 중시한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 가운데 하나인 식욕을 만족시킬 다양한 음식이 발달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요리 수도 많고 별난 음식이 끊임없이 등장한다고 하면서 그런 음식을 바로 ‘산해진미’라고 지칭했다. 산해진미에는 제비집요리(燕窩), 사슴 힘줄 요리(鹿筋), 뜸부기포(鳧脯)와 같은 진기한 음식(珍食)과 낙타 혹으로 만든 음식(駝峰), 특별한 버섯요리(銀耳) 등의 기이한 음식(奇食), 우리가 중국 영화나 ‘인디아나존스’ 같은 영화에서 봤던 원숭이 뇌(놀랍게도 프랑스인들도 이걸 먹는다), 곰발바닥요리 같은 잔인한 음식(殘食) 등을 모두 산해진미의 범주에 넣는다. 이 밖에 모기눈알 요리 등 기상천외한 음식들이 즐비하다.

사실 인간에게 먹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모든 생명체에게 그것은 불변의 일이지만, 특히 다른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음식에만 선택이 제한되는 것과 달리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음식의 가능성을 탐색해 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아주 오래전 조상들의 처절한 고뇌가 담겨 있는 셈이다. 앞서 말한 세계 3대 요리 국가들은 자연적 조건이나 정치·경제·사회적 환경이 좋았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을 갖게 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과 환경에 의해서만 음식 문화가 다양성을 갖게 됐을까?


기근이 들면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다양한 생물들에 대해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가져야 했다.


권력과 재력을 지닌 사람은 뭔가 새로운 음식을 추구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음식의 다양성이 배가된다. 하지만 음식의 다양성이 오로지 그런 조건들 때문에 성장한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소수의 권력 집단이 아니라 절대 다수인 민중의 삶과 환경 때문에 다양함이 증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기근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다양하고 풍성한 음식과 식문화는 넉넉한 물산과 다양한 재료, 안정된 사회와 권력 구조 등에서 발전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그건 사실이다. 풍부한 환경과 새로운 음식에 대한 권력자들의 호기심 등이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거기엔 한계가 있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기근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주기적으로 겪어야 했던 숙명과도 같았다. 늘 배를 주리며 겨우겨우 연명하던 사람들에게는 기근도 상대적으로 덜 힘들었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 겪어야 하는 기근의 공포는 훨씬 더 컸다.


척박한 토양에서 최고 당도 포도주가 나와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다양한 생물들에 대해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가져야 했다. 그것이라도 먹고살아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의 자유는 거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먹어서는 안 되는 걸 시도했다가 죽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평소에는 거의 입도 대지 않던 것을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왕이면 먹기에 낫게 하기 위해 다양한 조리법이나 조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다양한 식자재와 요리법이 축적됐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만약 기근이 다양한 음식 문화를 발전시켰다면 왜 중국·프랑스·터기 같은 나라에만 유독 그게 도드라졌을까? 문제는 새로운 레시피를 축적할 수 있는 바탕의 유무다. 기근 때 먹어 봤던 특이한 재료가 뜻밖에 별미였던 것은 다양한 조미료와 기존의 요리법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계속해 새로운 레시피에 추가되면서 위 세 나라의 음식 문화가 갈수록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산해진미가 발전하는 데 기근이 제법 큰 역할을 했다는 역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포도와 포도주의 산지는 토양이 척박하다고 한다. 경사지에서 재배하는 것도 따지자면 일부러 포도나무에 혹독한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스스로 살아날 힘을 길러 내도록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적당히 강할수록 당도도 높아진다. 과일의 입장에서 높은 당도는 자신의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삶에서도 이것은 그대로 적용된다. 처음부터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끝까지 그런 삶으로 마감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 건 약간의 역경에 부딪치기만 해도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기 때문이다. 너무 곱게 자라 성공한 사람들이 작은 역경과 비난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의 30대 기업을 거느렸던 사주들과 자손이 그것을 지키거나 키워 내지 못하고 몰락한 것도 그런 요인이 없지 않을 것이다.

역풍이 순풍보다 강하다고 했던가. 그래서 연을 날리기에는 역풍이 가장 좋다고 한다. 역경은 견뎌야 할 때는 힘들지만 그것을 통해 훨씬 강하게 성장하고 포용력도 보다 커지며 삶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산해진미에서 그저 주지육림 같은 탐미적이고 퇴폐적인 점만 생각하지 말고 그것들이 만들어진 게 정작 기근이라는 역경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