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성공보다 콘셉트와 철학 우선돼야”

나만의 재능과 콘텐츠를 무기로 내로라하는 유명 브랜드에 도전하는 성공 사례는 불황에 빠진 창업 시장에도 시사점을 던져 준다. ‘나’라는 브랜드로 저만의 빛깔을 내는 보석을 만든다면 브랜드 홍수 속에서도 차별화된 매력을 갖는다. 평생 스스로를 고용할 수 있는 1인 기업을 넘어 끊임없이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파워 브랜드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브랜드 구축과 유지를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CJ그룹 마케팅 임원 출신으로 이름을 딴 컨설팅 기업을 설립해 그 자신이 개인 브랜드이기도 한 김왕기 WK마케팅그룹 대표를 찾아갔다.
[COVER STORY] 인터뷰 김왕기 WK마케팅그룹 대표
평소 컨설팅을 하면서 개인 브랜드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시나요.
몇 개 영역에서 활성화되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개인 브랜드의 인기는 업종에 따라, 소비 단계에 따라, 경기 현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패션이나 뷰티 분야는 개인 브랜드가 잘 통하는 업종입니다. 마케팅 관점에서 산업을 분류할 때 소비자의 관여도(평소 관심을 갖는 정도)가 높으면서 감성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감성 영역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게 의류와 화장품 등입니다. 샤넬이나 입생로랑을 입으면서 ‘아이 엔비 유’, 나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심리가 작동하는데 같은 맥락에서 정구호·이경민 등이 만든 브랜드가 시장에서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죠. 패션이나 뷰티 이외 영역에서는 니치 마켓이나 특화된 마켓, 또는 그 사람의 이미지가 얼리어답터일 때 개인 브랜드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득수준이나 경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건 무슨 얘깁니까.
해외 사례를 봤을 때 3만 달러를 기점으로 소비 패턴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알뜰 소비와 가치 소비인데 가치 소비는 품격 소비 혹은 사회적 소비 등으로도 부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소비는 같은 값이라면 공정거래를 하고 싶은 마음이고 하나를 얻더라도 자부심이 커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또 3만 달러 내외 지점에서 핸드메이드에 대한 수요가 강해집니다. 장인 정신을 갖고 직접 만드는 개인 브랜드, 대량생산보다 소품종의 정성 들인 제품이 인기를 끌 것이고 시대적 흐름으로 봤을 때 이러한 추세는 더 확대될 것입니다. 또 불황일 때 소비 양극화가 이뤄져 장인들이 만든 상품, 나만을 위한 맞춤형 제품에 대한 수요도 많아질 수 있죠. 경기만 뒤로 후퇴하지 않는다면 대기업이 트렌드를 독과점하는 시장에서 소비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될 것입니다.


특히 유통 업계에서 개인 브랜드 발굴에 공을 들이는 것 같습니다.
최근 유통 업계의 핫이슈는 PB(Private Bbrand)와 PL(Private Label)입니다. 예전에는 PB가 해당 마트에서 보증하는 타 브랜드였다면 요즘에는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판매합니다. 과거가 PB 1.0이었다면 이제는 PB 2.0 시대로 가고 있죠. 제대로 된 브랜드를 육성해 팬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외부에서 콘텐츠가 좋고 신선한 브랜드를 영입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죠. 각 사마다 PB 개발에 혈안이 돼 있는데 보다 쉽게 우수 브랜드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콘텐츠를 가진 개인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겠네요.
예. 그런데 브랜드를 키울 때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식품 업종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고려할 점이 많습니다. 대기업에서도 식품은 사람 이름을 잘 내걸지 않습니다. 소비자 클레임이나 이물질 사고 등이 생겼을 때 그만큼 받는 타격이 크기 때문입니다. 브랜드는 한 번 인식되면 잘 바뀌지 않기 때문에 하나에서 작은 문제가 생겨도 쉽게 망할 수 있고 회복도 어렵습니다. 그만큼 품질 경쟁력이나 위생 상태, 유통기한 등 제반 사항을 먼저 갖춰야 합니다.


섣불리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사례도 많을 것 같습니다.
브랜드는 끈기가 없으면 판촉 그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기업가 정신으로도 얘기할 수 있죠. 평소 컨설팅을 할 때도 개인 브랜드로 2년만 해보고 싶다는 사례를 만나면 시작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연예인들 중 이런 이들이 많은데요, 스타성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하겠다며 전문성이 없는 데도 뛰어들 때가 많습니다. 대개 이때 중간에 에이전시가 있고 스타는 이름만 빌려주곤 하는데 개인 브랜드가 아닌 판촉 브랜드에 그칠 때가 많고 자칫 스타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COVER STORY] 인터뷰 김왕기 WK마케팅그룹 대표
그렇다면 개인이 브랜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품질인데요, 보통 개인들을 만나보면 ‘이것만큼은 최고로 자신 있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시장에서 상품성을 따져봤을 땐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처음엔 잘 인정하지 않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실제로는 품질이 형편없을 때가 많죠. 다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겁니다. 무엇보다 인지 품질력을 갖춰야 합니다. 예전에 식물나라를 브랜딩했는데, 당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식물나라가 랑콤보다 많은 표를 받았어요.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랑콤이 이겼죠. 인지 품질력이 시장에선 진실이에요. 이것을 갖추고 나와야 합니다. ‘이 정도면 된다’는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면 백전백패입니다. 둘째는 디자인입니다. 많은 컨설팅을 하면서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바로 디자인이에요. 품질만 좋으면 누구나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은데, 소비자 관점에서 디자인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것은 기본입니다. 이걸 먼저 갖춰야 그다음으로 홍보도 하고 판로도 확보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컨설팅을 해보면 70~80%는 순서를 뒤바꿔 생각합니다.


성공하는 개인 브랜드들의 공통점이나 차별점은 무엇입니까.
제대로 된 개인 브랜드들은 ‘철학’이 살아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하는 것’이라는 진정성과 철학은 대기업이 갖지 못한 큰 강점일 수 있죠. 개인 브랜드를 하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장인정신보다 비즈니스 목적으로 뛰어드는 사례가 많습니다. 정말 장인의 이름을 걸고 100년 기업을 일구겠다는 정신으로 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스위스·독일·일본의 수많은 개인 브랜드들은 몇 대를 걸쳐 가업으로 잇고 있잖아요. 브랜드의 세계에서는 스타보다 장인이 우선입니다.


개인 브랜드가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누리면 대기업으로 인수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사업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지속적인 철학을 기반으로 백년 가업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하면 작더라도 알찬 강소기업으로 키워 나갈 수도 있습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브랜드 이름을 잘 짓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팁을 주신다면.
만약 개인의 이름을 걸 때에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는 효과는 있겠지만 위험 부담도 크겠죠. 브랜드 네이밍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브랜드 관리입니다. 또 브랜드를 만들 때 중요하지만 놓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콘셉트’입니다. 이름 짓는 데는 밤잠을 안 자고 고민하면서 콘셉트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지나가요. 만약 누군가가 이름을 가지고 어떤 게 성공할 것 같으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해도 콘셉트를 놓고 비교하면 답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같은 전문 컨설팅 업체도 콘셉트만 30일 고민할 정도입니다. 지면을 빌려 당부한다면 ‘콘셉트에 목숨을 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fotoleesj@hankyung.com